김기택·현기영·이양구 등 대산문학상 수상…"자유와 해방이야 말로 문학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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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대산문학상 수상자코로나는 소통을 가로막았고, 자유로운 생활을 옥죄었다. 하지만 어떤 문인들한테는 기회가 됐다. 등단 48년 차를 맞은 원로 소설가 현기영 작가(82)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억압과 자유를 새로 성찰할 수 있었다"며 "내면의 억압을 떨쳐내고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 문학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현기영 소설가·김기택 시인·이양구 극작가
마티아스 아우구스틴·박경희 번역가
6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린 제3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가 간담회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오갔다. 수상자로 선정된 현기영 소설가, 김기택 시인, 이양구 극작가가 팬데믹 이후 문학의 역할에 대해 "위축된 자유를 다시 회복하는 일"이라며 입을 모았다. 소설 부문 수상작인 <제주도우다>는 제주4·3사건을 둘러싼 정치권력의 억압과 해방의 서사를 조명한다. 현기영 소설가는 "잔혹한 참사를 만난 민초들의 억울함을 그렸다"고 했다. 이어 "이 세 권의 소설이 내가 오랫동안 매달려온 4·3사건의 마침표가 될 것"이라며 "무거운 주제를 피하지 않고 다룬 작품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시집 <낫이라는 칼>로 시 부문을 수상한 김기택 시인은 "코로나19 기간에 겪은 외로움이 시적 자양분이 됐다"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의 새로운 단면을 발견했다"고 했다. 자신을 '사물주의자'로 정의하는 김 시인은 인간이 아닌 사물을 화자로 내세우며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을 비판한다.
표제작 격인 <낫>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팔처럼/날은 뭔가를 껴안으려는 것 같다" 시인은 근본적으로 생명을 해치는 도구인 '날'의 오목한 형태로부터 다른 대상을 포용하려는 자세를 떠올린다. 시인은 "자신의 폭력적인 본성을 잊지 않고 반성하려는 윤리적 존재를 형상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양구 극작가는 수상작 <당선자 없음>을 두고 "균형의 문제를 많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해방 직후 제헌 과정을 비추며 오늘날 검열과 통제의 문제를 되묻는 희곡이다. 이 극작가는 "사랑이든 관계든 국가든 균형을 잘 잡고 살아야 하는데, 오늘날 우리 사회가 균형을 잃어가는 것 같다"며 "국가 권력과 표현의 자유 사이 균형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싶었다"고 했다.
번역 부문 수상자로는 천명관의 <고래>를 독일어로 옮긴 마티아스 아우구스틴·박경희 번역가가 선정됐다. 심사위원회는 "번역의 충실성과 내용의 가독성을 두루 갖췄다"며 "한국 역사를 배경으로 한 서사와 토속적인 표현을 잘 소화했다"고 평가했다.
대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대산문학상은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문학상이다. 시·소설·평론·희곡·번역 5개 부문에서 시상한다. 평론과 희곡은 격년으로 번갈아 가며 상을 준다. 총상금은 2억원이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