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 조언, 멘털 케어까지... 스타트업 '밸류업' 집중하는 VC들[긱스]

벤처캐피털(VC)은 단순 투자 활동뿐 아니라 포트폴리오 회사들의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밸류업' 전략을 취하곤 합니다. 투자가 아닌 '밸류업'에 방점을 찍은 전문인력을 영입하기도 하고, 포트폴리오 회사들을 모아 세미나 같은 행사를 열기도 합니다. 창업가의 정신건강을 챙겨주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각 VC들의 밸류업 전략을 한경 긱스(Geeks)가 알아봤습니다.
국내 벤처캐피털(VC)들이 포트폴리오 회사들의 밸류업(기업가치 상승)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단순 후속투자를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기업 성장 지원 사격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벤처투자 '혹한기'에 맞서 사후관리를 통해 포트폴리오 회사의 안정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다.VC업계에 따르면 매쉬업엔젤스는 최근 밸류업 파트너로 이승국 전 퍼블리 최고제품책임자(CPO, 사진)를 영입했다. 이 신임 파트너는 부칼라팍에 매각된 동남아시아 스타트업 파이브잭 CPO출신으로 제품 개발 총괄을 주도한 인물이다. 이후 퍼블리의 CPO로 합류해 개발자 커뮤니티 서비스인 ‘커리어리’와 채용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솔루션 ‘위하이어’의 사업 기획 및 제품 개발을 주도하며 성공적으로 출시한 바 있다.

매쉬업엔젤스의 밸류업 파트너는 투자 부문 파트너와는 달리 포트폴리오사의 성장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회사 측은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사업에 필요한 모든 구성 인력을 갖추기가 어렵기 때문에 필요할 때마다 전문 인력을 연결시켜드리고 있다"며 "이번에 영입한 밸류업 파트너 역시 글로벌 사업 경험이 풍부해 포트폴리오사들의 글로벌 GTM(고 투 마켓) 전략 수립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밸류업 파트너뿐 아니라 포트폴리오사의 성장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매쉬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선배 창업가 및 전문가와의 1대 1 오피스아워 프로그램이다. HR, 마케팅, 조직문화, 투자유치, 심리 상담(멘탈 관리) 등 초기 스타트업의 성장에 필요한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박은우 매쉬업엔젤스 파트너는 "포트폴리오사와의 밀접한 소통을 위해 파트너와 심사역이 2인 1조로 한 팀을 담당하며, 이를 통해 초기 스타트업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벤처스의 패밀리데이

EIR 도입한 카카오벤처스

이처럼 후속투자가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기업의 기업가치 상승을 돕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카카오벤처스는 최근 사내창업가(EIR, Entrepreneur In Residence) 제도를 도입했다. EIR은 창업 경험이 있거나 산업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가 VC에 소속된 채 포트폴리오 회사에 조언 등 도움을 건네면서 성장을 지원하는 직책을 말한다. 미국 실리콘밸리 등 해외 유명 VC에서 종종 활용돼 왔다. 국내에서는 베이스인베스트먼트, 퓨처플레이 등도 이 직책을 활용한다.

카카오벤처스는 VAR(Venturer At Port)라는 이름으로 EIR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8월 EIR을 도입하면서 이예겸 전 칼데아 COO, 정우영 전 칼데아 엔지니어 등을 영입했다. 두 사람은 망고플레이트, 센드버드 등 초기 스타트업부터 유니콘 단계의 회사들에 몸담은 경험을 토대로 카카오벤처스의 포트폴리오사에 창업 노하우를 공유해주고 있다. 그밖에도 카카오벤처스는 밸류업 파트너 형태로 정욱 넵튠 의장, 심규섭 올스테이 CMO, 이지혜 숨고 CMO, 김효택 자라나는씨앗 대표, 곽근봉 원지랩스 대표, 임형철 블로코어 대표 등을 영입한 바 있다.그밖에 주니어 심사역, 이사진을 포트폴리오사에 파견해 특정 주제에 대한 컨설팅을 제공하고 실무에 투입하는 '에이 스페셜티'나 IT 특성화고와 협약을 맺고 유능한 개발자가 포트폴리오사에 합류하도록 돕는 채용 지원 프로그램도 갖고 있다. 또 포트폴리오사간의 유대관계를 위한 네트워킹 행사나 소모임도 정기적으로 연다.
지난해 9월 알토스벤처스가 주최한 '커뮤니케이션 인사이트콘'. 알토스 포트폴리오사만을 위해 진행된 행사다.

'멘털 케어'까지... 밀착 지원 나선 VC들

이런 흐름은 초기 단계에 집중하는 VC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례로 VC업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알토스벤처스는 창업가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2018년부터 강남, 강북 등에 위치한 정신의학과와 마음돌봄센터와 계약했다. 창업가가 ‘알토스’ 이름으로 비용부담 없이 상담을 예약하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지난해 기준 연간 약 50회 가량의 상담을 이용했고, 올해 역시 월 평균 3회 정도 창업가들이 이용하고 있다. 상담을 받은 대상은 알토스도 알 수 없다.알토스벤처스 측은 “창업가의 경우 조직운영부터 투자 유치, 매출 확보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결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피로도가 압도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며 "조금 더 건강한 '정신 근육'을 만들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정신상담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포트폴리오사를 위한 세미나도 비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또 다른 VC보다 한발 앞서 2017년부터 일찌감치 PR 전문인력을 뒀다. 주요 포트폴리오사의 소식을 전하거나 정부부처의 소식, 모니터링 및 홍보를 직접 도와준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내부인력을 고용하거나 에이전시와 계약하는 시기를 좀 더 고려할 시간을 가질 수 있어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가 지난 6월 연 '에이티넘 테크데이'
후기투자에 강점을 갖고 있는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도 최근 그로스파트너본부를 신설하고 이 조직에 인력을 대거 수혈했다. 그로스파트너본부를 키우는 건 포트폴리오 회사를 더욱 '밀착 지원'하기 위해서다. 펀드가 커지면서 기업 당 투자액이 늘어났고, 이에 따라 투자를 리드하거나 이사회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심사역들만이 포트폴리오 사후 관리를 도맡기 어려워졌다.

이 조직이 출범한 이후 회사는 '에이티넘 테크데이' '에이티넘 SaaS데이’, ‘에이티넘 콘텐츠데이’, ‘에이티넘 커머스데이’ 같은 포트폴리오 회사 간 네트워킹 행사를 지속적으로 열고 있다. 액셀러레이터가 아닌 대형 VC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행사다. 업계에서는 투자 혹한기일수록 이 같은 밸류업 전략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장승룡 카카오벤처스 이사는 "투자 혹한기에는 '살아남을 수 있는 체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며 "피투자회사가 내실을 다질 수 있는 여러 장치를 마련하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후속 투자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VC들이 EIR 같은 미국 VC 문화를 차용하는 등 유의미한 시도가 이어지면서 업계의 밸류업 전략도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