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 300만원' 英 명품 자전거회사…韓시장 점찍은 이유 [양지윤의 왓츠in장바구니]

英 명품 자전거 회사가 韓 회사와 손잡고 옷 만든 이유
브롬톤의 C라인 익스플로러 제품. 브롬톤 공식 홈페이지
장인이 일일이 손으로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프리미엄 자전거 회사 '브롬톤'이 의류 사업의 전초 기지로 한국 시장을 점찍었다. 브롬톤이 한국의 패션회사 '더네이쳐홀딩스'와 손잡고 만든 패션 브랜드 '브롬톤 런던'은 지난 7월 문을 연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매장을 시작으로 현재 국내에 5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한국 시장을 테스트베드로 삼아 브롬톤 런던을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윌 버틀러-애덤스 브롬톤 회장(오른쪽)과 박영준 더네이쳐홀딩스 대표가 '브롬톤 런던' 로고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더네이쳐홀딩스 제공

○브롬톤 런던의 테스트베드

윌 버틀러-애덤스 회장이 서울 용산구 더네이쳐홀딩스 사옥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더네이쳐홀딩스 제공
지난 6일 윌 버틀러-애덤스 브롬톤 회장은 서울 용산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브롬톤 런던 사업을 아시아, 더 나아가 유럽 등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브롬톤 런던이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할 수 있는지 실험을 거친 뒤에야 해외 진출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제품력과 고객 경험이 충분히 쌓이고 지속가능한 유통망이 구축되면 한국 밖의 시장으로도 나가겠지만, 아직은 한국 시장에서 할 게 많다"고 했다.

브롬톤이 패션 브랜드인 브롬톤 런던을 처음으로 선보일 국가로 한국을 선택한 건 한국이 세계적인 수준의 의류 제작 역량을 갖췄기 때문이라는 게 버틀러-애덤스 회장의 설명이다. 한국이 브롬톤 자전거의 주요 수출국 중 하나일 정도로 브롬톤 팬층이 두텁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버틀러-애덤스 회장은 "한국에는 브롬톤 자전거를 타는 고객들의 커뮤니티가 잘 자리잡은 곳"이라며 "한국은 브롬톤의 새로운 도전인 '브롬톤 런던'이 브롬톤 커뮤니티뿐 아니라 그 외의 소비자들에게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는지 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시장"이라고 말했다.
브롬톤의 C라인 익스플로러를 접은 모습. 브롬톤 공식 홈페이지
케임브리지 공대 출신의 엔지니어 앤드류 리치가 1976년 창립한 브롬톤은 세계에서 가장 작게 접히는 자전거를 만든다. 부품의 대부분을 직접 만들고, 조립도 영국 런던의 공장에서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1년에 10만대가 생산되는데, 자전거 한대 가격이 기본 200만~300만원 수준이다. 현 최고경영자(CEO)인 버틀러-애덤스 회장은 2002년 합류했다.

브롬톤 런던은 브롬톤의 라이선스를 활용한 패션 브랜드다. '내셔널지오그래픽'과 '마크곤잘레스' 등의 브랜드를 잇달아 성공시킨 더네이쳐홀딩스가 지난해 9월 브롬톤과 의류 부문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그동안 브롬톤은 겐조, 바버 등 패션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여럿 진행했지만, 공식적인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건 더네이쳐홀딩스가 처음이다. 본사가 로열티를 받고 이름만 빌려주는 데 그치는 일반적인 라이선스 브랜드와 달리 브롬톤 런던은 본사인 브롬톤이 적극적으로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브랜드 기획 단계에서부터 버틀러-애덤스 회장이 직접 참여했다. 브롬톤 런던의 올해 가을겨울(FW) 시즌 캠페인에는 영국 런던 브롬톤 본사 직원들이 제품을 착용하고 캠페인에 참여하기도 했다.

○브롬톤의 '장인정신' 구현한 옷

윌 버틀러-애덤스 브롬톤 회장이 브롬톤 런던 매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더네이쳐홀딩스 제공
브롬톤 런던은 자전거 회사에서 영감을 받은 패션 브랜드지만, 자전거 전용 의류가 아닌 캐주얼웨어를 만든다. 이는 '일상생활 속 자전거 문화'를 추구하는 브롬톤의 가치와 맞닿아있다. 버틀러-애덤스 회장은 "브롬톤 자전거는 경주(race)할 때 타는 자전거가 아닌, 편하게 타는(ride) 자전거"라며 "브롬톤 런던도 출퇴근이나 통학 등 일상 속에서 자전거를 탈 때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이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브롬톤 런던에는 브롬톤의 환경에 대한 철학도 담겨있다. 브롬톤이 자전거를 제작할 때 수작업을 고수하는 이유는 보다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다. 10년, 20년 넘게 탈 수 있는 내구성 좋은 제품을 만듦으로써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버틀러-애덤스 회장은 "브롬톤은 고객들이 신제품이 나올때마다 새 자전거를 사기보다는 한번 사서 10년 이상 사용하기를 원한다"며 "옷도 마찬가지다. 한번 사면 몇년을 입을 수 있는, 고품질의 옷을 만들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브롬톤 런던 2023 가을 룩북. 브롬톤 런던 홈페이지
이런 브롬톤의 철학을 의류로 구현해낼 수 있는 곳이 바로 더네이쳐홀딩스였다는 게 버틀러-애덤스 회장의 설명이다. 다수의 라이선스 브랜드를 성공시킨 '라이선스 강자' 더네이쳐홀딩스의 브랜드 기획 및 의류 제조 역량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그는 "브롬톤은 과거 자체적으로 의류 사업도 해봤지만, 한계를 느꼈다. 우리는 자전거를 잘 만드는 회사지, 옷을 잘 만드는 회사는 아니었다"며 "더네이쳐홀딩스는 품질이 높으면서 자전거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잡게 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더네이쳐홀딩스와 브롬톤이 환경에 대한 인식을 공유한다는 점도 파트너십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더네이쳐홀딩스의 대표 브랜드인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경우 동물의 털을 사용하지 않고 전쟁·군복이 연상되는 카모플라쥬(밀리터리) 패턴을 사용을 지양하고 있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