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고독하고 지독한 랠리

서유석 한국금융투자협회장
나이가 좀 있는 스포츠 팬이라면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여자 배드민턴의 방수현 선수를 기억할 것이다. 방수현에 이어 27년 만에 여자 배드민턴 단식 종목에 안세영이라는 스타가 탄생했다. 올해 3월 최고 권위의 영국오픈 우승이라는 기염을 토하더니, 얼마 전 막을 내린 항저우아시안게임 결승에서는 무릎 부상으로 온 국민의 가슴을 졸인 끝에 극적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안 선수는 정말 끈질긴 수비형 선수다. 상대 선수의 네트를 살짝 넘는 드롭샷을 다이빙을 해서 힘겹게 넘기고 계속해서 랠리를 이어 나가더니 기어이 득점을 따내는 하이라이트를 보노라면 정말이지 탄성이 절로 나온다. 무려 59회 최장 랠리를 거쳐 소중한 한 점을 올린 적도 있다. “그 오랜 랠리 동안 안 선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필자는 그런 상상을 해봤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 근육에 한계가 온다면 당장에라도 승부를 내기 위해 모험적인 스매싱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러나 안 선수는 다이빙 이후에도 벌떡 일어나 다시 중심을 잡고 평소 준비한 대로 경기를 운영해 나갔다.드롭샷, 하이클리어 등 밀고 당기는 랠리의 과정을 보다가 언뜻 ‘연금 랠리’가 떠올랐다. 한 직장인이 첫 직장에 입사해서 은퇴할 때까지 긴 시간 동안 다양한 상황이 존재한다. 몇 년간 다닌 직장을 잃기도 하고, 다른 곳으로 이직하기도 하며, 자산이 증식되는 호황기를 겪다가도 금융위기와 같은 어려운 시기를 반복해서 겪게 된다. 그런데 은퇴의 순간에 ‘풍요로운 노후자산’이라는 금메달을 손에 쥐는 사람은 누가 될까. 잠깐의 화려한 수익률을 좇는 사람보다는 자신만의 원칙을 갖고 묵묵히 분산투자를 실현하는 사람이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쉽게도 그런 사람은 주변에 많지 않다. 험난한 랠리의 과정에서 연금자산을 당겨쓰거나,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운용해 긴 노후를 대비하기에는 부족한 경우도 보게 된다.

만약 평범한 근로자가 ‘연금 랠리’에서 파이널(은퇴) 승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연금은 단기가 아니라 장기 랠리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단기 쏠림 투자 등의 유혹을 이기고, 소신과 원칙을 확립해 이를 지키는 자세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장기 자산 배분’에 입각한 분산투자가 필요하다. 미국 유럽 등 유수의 글로벌 연기금은 예외 없이 자산 배분을 통해 적정 수준의 수익률을 실현하면서도, 경기와 시장의 부침에서 오는 영향은 최소화하고 있다. 개인이 이를 벤치마크하기 위해서는 이미 잘 짜인 ‘연금용 자산 배분 상품’ 활용도 좋은 방법이다. 적고 보니 여러모로 준비할 게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연금 투자야말로 고독하고 지독한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