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21세기 '史庫' 역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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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식 숭실대 사학과 교수·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조선의 제1대 국왕 태조(太祖)부터 제25대 철종(哲宗)까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연·월·일 순으로 정리한 조선의 공식 국가기록물이다. 이 방대한 분량의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역사적 사실을 모두 포괄하고 있어 한국학 각 분야 연구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필수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기록의 ‘공정성’ 측면에서도 중국 일본 등 다른 동아시아 국가의 실록보다 월등히 우수하다. 실록 편찬에서 가장 중요한 자료인 사관(史官)의 사초(史草)는 왕도 볼 수 없도록 엄격히 규제했는데, 이는 사관들이 공정하게 역사를 기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조선시대에는 서울과 지방에 중요 국가기록물을 보관하는 사고(史庫)를 설치하고 이곳에 실록을 보관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지방 사고를 섬이나 깊은 산중에 설치했다. 이는 임진왜란으로 전주사고본 실록을 제외한 나머지 실록이 모두 소실되는 피해를 겪으면서 실록의 ‘안전한 보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조선 후기 지방 사고의 실록 중 오대산사고본 실록은 조선왕조실록이 겪은 아픔의 역사를 온전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왜란 이후 실록을 복간할 때 재정 여력이 부족해 한 부는 정본 대신 최종 교정본을 사고에 봉안했는데 그것이 바로 오대산사고본이다. 즉 태조~명종 대 오대산사고본 실록은 왜란으로 소실된 실록의 복간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 오대산사고본 실록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대부분 소실되는 참사를 겪었다.
2006년 오대산사고본 실록이 환수위원회를 비롯한 민관의 노력에 힘입어 우리나라로 반환된 이후, 실록이 사고가 있던 원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는 지역의 의견이 꾸준히 있었다.이런 측면에서 오는 12일 오대산사고가 있었던 강원 평창에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 개관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곳은 문화재청과 국립고궁박물관의 예산과 연구 인력을 투입해 실록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연구·전시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실록 관리는 단순한 보존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실록이 지닌 역사적·문화적 의미를 밝히고 이를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 대중과도 공유하는 연구와 전시·교육 기능이 함께 수행돼야 실록의 진정한 가치를 살릴 수 있다.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 21세기에 필요한 ‘사고’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박물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