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래옥 앞 '헬카페 뮤직'…몸집만한 탄노이 스피커와 천국을 맛보다

[arte] 조원진의 공간의 감각
부모님께 요섭과 성은이라는 이름을 물려받은 두 사람은 함께 문을 열 공간의 이름을 ‘헬카페’로 정했다. 이름부터 두 사람의 반골 기질을 보여주는 헬카페에서, 그들은 하고 싶은 것과 좋아하는 것으로 공간을 채워나갔다. 가령, 매장에서 직접 통돌이 로스터로 볶은 커피는 기름기가 흐를 만큼 진하고 강한 맛을 냈다. 커피 업계의 최신 유행과는 사뭇 다른 진하고 쓴 커피는, 유난히도 목 넘김이 부드럽고 달콤했다. 로스팅을 할 때면 연기가 매장에 자욱하게 피어 오를 때가 있었는데, 그들만의 ‘취향의 지옥’을 드러내는 방식처럼 보이기도 했다.

남들이 하는 것에 좀처럼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두 사람은 자영업의 지옥과도 같은 서울 한복판에서 10년째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간에는 고도로 농축된 알코올을 지칭하는 단어인 ‘스피리터스’와 장인들의 공방이라는 뜻을 담은 단어 ‘보테가’의 이름을 달고 두 개의 매장을 열었다. 그곳에서는 깊어지는 커피의 맛과 어울리는 위스키와 칵테일을 팔았고, 그만한 음료를 즐기기에 마땅한 고매한 취향의 음반을 수집해 틀었다.
이태원에서 언덕 하나를 넘어야 다다르는 보광동부터, 이촌동 한강맨션의 오래된 2층 상가와 용산경찰서 앞의 주택 건물 주변은 대체로 유동 인구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취향에 공감하는 이들은 소문을 듣고 헬카페의 문을 열었다.사람들은 한 시절을 풍미했던 것을 쉽게 잊어버린다. 그것들이 시대를 풍미하기 위해 쌓아왔던 노력은 때때로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진다. 뉴트로라는 이름을 달고 등장해 또 다시 한 시절의 유행으로 무너진 장소와 상품들은 그 어려움을 대변한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모래성을 쌓는 일에 심혈을 기울인다. 음악과 커피에 대한 사랑으로, 시절을 풍미했던 것에 대한 깊은 동경으로. 10년을 버티고 다시 주교동에 ‘헬카페 뮤직’을 열기까지는 파도도 무너뜨릴 수 없는 모래성을 쌓고자 하는 두 대표의 우직함이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우래옥을 마주 본 오래된 3층 상가에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 ‘헬카페 뮤직’을 비롯해 음악 주점 ‘마이크로 바이닐 펍’, 레코드 가게인 ‘레코드 스톡’이 층별로 자리 잡았다. 무르익은 취향을 가진 이들이 연대해 서울의 가장 오래된 유행의 중심을 다시 찾은 것이다.
우래옥이 있는 을지로 4가는 전차의 종착역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유원지인 창경원에서 하루를 보낸 사람들은 가족들과 우래옥을 찾아 불고기를 굽고 냉면을 후루룩 들이켰다. 날이 좋은 봄철에는 창경원의 식물원과 동물원을 구경한 이들이 우래옥을 찾아 하루에만 냉면 2천여 그릇을 비웠다.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던 우래옥 옆에는 우리나라 아파트의 효시라 불리는 중앙아파트도 들어섰다. 뜰이 없는 집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했던 시절, 수세식 화장실과 입식 부엌을 갖춘 을지로의 새 아파트는 새 시대를 맞이하는 새로운 바람이었다. 하지만 도처에 유행이 흐르는 거대한 도시 서울은 빠르게 이곳을 잊어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우래옥에는 냉면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북적이지만, 도시에 새로운 삶의 양식을 제안했던 근사한 주거 공간은 재개발을 앞두고 있거나 세월이 힘을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늙어가고 있었다.
새로운 헬카페 매장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한 사람의 몸집만큼 거대한 ‘탄노이 웨스트민스터 로얄’ 스피커 한 쌍이 웅장한 소리를 내뿜는다. 그 소리는 벽과 바닥에 울려 퍼지지만, 천정에 잘 붙여놓은 흡음재와 목재 바닥이 과도한 울림을 막아준다. 웅장하지만 섬세한 울림에 젖어 들 때면, 기름이 배어 나올 정도로 강하게 볶은 원두로 만든 드립 커피가 빈티지 잔에 담겨 나온다. 스피커를 향해 나란히 배치된 의자에는 쉴 새 없이 사람들이 드나들며 공간의 울림을 맞이한다. 깊은 취향의 음악과 커피가 울려 퍼지는 공간은 오래 전 주교동 일대의 영광을 재현하듯 문전 성시를 이룬다.누가 봐도 안 될 것 같은 일에 그들은 여전히 몰두한다. 그 무겁고 큰 스피커를 LP 수납장 위에 올리고, 무거운 주전자에서 방울방울 물을 흘려 천천히 커피 한 잔을 만든다. 공간을 찾은 이들에게 더 좋은 영감을 주고자 권요섭 바리스타는 디제잉을 연습해, 레코드가 바뀔 때도 그 어떤 위화감 없이 음악에 젖어들 수 있도록 했다. 한쪽 구석에서 임성은 바리스타는 꽃을 다듬고 팝콘도 튀기고 샴페인을 따른다. 다 지어진 것 같은 공고한 취향의 공간에 또 무언가를 깁고 더한다. 어떤 날에는 소리를 더 좋게 만들어 줄 오디오 케이블이, 어떤 날에는 깊어진 취향에 무게를 더해줄 음반과 술이 늘어난다. 또 어떤 날에는 새벽녘 꽃 시장에서 가져온 꽃들이 뭉게뭉게 피어 오른다. 그리고 그것들은 새 바람이 불어 시대를 풍미하기를 기다린다. 아주 오래된 서울의 역사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