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주도권 쥘 것"…SK하이닉스, 투자 50% 확대 '초강수 베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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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설비투자 10조…시장 예상 뛰어넘어SK하이닉스가 편성한 내년 설비투자금 10조원은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다. 증권업계에서는 애초 “SK하이닉스의 내년 투자 규모는 6조~7조원 수준인 올해와 비슷할 것”으로 내다봤다. ‘살림살이’가 빠듯한 만큼 올해에 이어 내년까지 긴축 경영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락으로 SK하이닉스는 올해 8조원 넘는 적자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최첨단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제품이 품귀 현상을 보이자 내년에는 올해보다 큰 폭으로 투자를 늘리기로 했다. HBM은 내년 생산량을 비롯해 2025년 물량까지 ‘완판’(완전 판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해 투자, 12조원 이상 급감
9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올 상반기 투자한 2조7140억원을 포함해 연간 6조~7조원을 투자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투자 규모는 작년(19조6500억원)보다 12조~13조원 감소하는 수준이다. 연간 기준으로 2016년(6조2920억원) 후 7년 만에 가장 적다.올해 투자비를 대거 삭감한 것은 실적이 크게 나빠졌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올해 1~9월 누적으로 8조76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연간 영업손실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도 8조4277억원에 달한다. 주력 제품인 D램 반도체 가격이 꾸준히 하락세를 이어간 영향이 크다. 실적이 나빠지자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부터 투자를 축소하면서 반도체 감산에도 나섰다.애초 내년 투자도 크게 늘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SK하이닉스 관계자도 3분기 콘퍼런스콜에서 “내년 투자 증가 폭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HBM 등에 투자를 집중하는 동시에 엉뚱하게 새 나가는 투자비를 막겠다는 의미”라며 “투자를 줄이겠다는 뜻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투자비 상당액을 HBM 설비·기술에 쏟아부을 계획이다. HBM은 챗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용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핵심 칩이다. 이 회사는 AI 가속기를 생산하는 미국 엔비디아와 AMD에 HBM 4세대 제품인 HBM3를 공급 중이다. 내년 양산하는 5세대 제품 HBM3E도 납품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HBM 생산량 확대를 위해 실리콘관통전극(TSV) 투자를 대폭 늘린다. TSV는 HBM 생산 기술로, 수직으로 쌓은 D램에 구멍을 뚫어 연결하는 기술이다. 최첨단 D램인 10나노급 4세대(1a)·5세대(1b) 중심으로 반도체 설비도 확충한다.
○내부자금으로 투자비 감당
SK하이닉스는 내부 현금으로 충분히 투자를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사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지난 9월 말 기준 8조5310억원에 달한다. 9월 말 부채비율은 84.8%에 불과하다. 추가로 차입금을 조달할 여유도 있다.현금창출력 또한 개선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3분기에도 영업손실을 봤다. 하지만 현금흐름을 나타내는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3분기 1조5400억원이었다. 상각전영업이익은 회계상으로만 비용 처리되는 감가상각비를 제외한 실제 현금흐름을 보여주는 지표다.
D램 가격도 반등하면서 SK하이닉스는 내년에 흑자로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10월 D램 고정거래가격은 1.50달러로 전월보다 15.4% 상승했다. D램 가격이 오름세를 보인 것은 2021년 7월 이후 2년3개월 만이다. SK하이닉스의 내년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8조4416억원으로 집계됐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