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에 日여행 급증…관광객 3명 중 1명이 한국인

올해 해외소비 12조 넘었다

국내 숙박·교통요금 급등하자
"그 돈이면 차라리 일본 간다"
관광지마다 한국어로 시끌

"절반만 한국서 돈 쓰게 해도
3조 소비진작 효과 있을 것"
일본을 비롯한 해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고물가·고금리로 위축된 국내 소비 회복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포국제공항 일본항공 체크인 카운터에서 승객들이 발권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한경DB
국내 경기 부진이 갈수록 심화하는 가운데 우리 국민의 해외 소비는 급증하는 추세다. 역대급 엔저에 따라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여행 수요가 폭발한 게 핵심 요인이다. 국내 여행 인프라 개선 등을 통해 해외로 나가는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지 못하면 소비 회복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폭발하는 日 여행 수요

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거주자의 국외 소비 지출’은 전년 동기(6조6605억원)보다 두 배 가까이 급증한 12조3560억원에 달했다. 이 항목은 가계가 해외에서 의식주 및 교통수단 이용 요금으로 쓴 비용이다.

2019년 상반기 이후 최대 규모로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기간에 정부가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되살리기 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한 1차 긴급재난지원금 규모(2020년 5~8월·14조2000억원)와 맞먹는 금액이다.

이 가운데 상당 금액은 일본에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관광국에 따르면 올해 1~9월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489만4800명이었다. 이 기간 일본을 방문한 전체 외국인(1737만4300명)의 28.2%를 차지해 압도적 1위였다. 7~9월 한국인 관광객은 일본에서 1인당 평균 11만686엔(약 96만원), 총 1955억엔(약 1조7000억원)을 쓴 것으로 집계됐다.최근의 일본 여행 폭증세는 국내 여행업계도 깜짝 놀랄 정도다. 여행사들은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삿포로 등 주요 관광지가 포화상태여서 지방을 중심으로 신규 여행지를 발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난처함을 호소하는 실정이다. 하나투어는 올해 동계시즌에 시즈오카, 다카마쓰, 마쓰야마, 가고시마 등 일본 소도시 상품을 확대 운영할 예정이다. 교원투어는 일본 여행상품 담당 부서에 업무량이 몰리는 점을 고려해 전담 인력을 추가 채용하고 있다.

○엔저에 벌어진 한·일 여행 경쟁력

엔저로 일본 여행 경비 부담이 줄어든 가운데 물가 급등으로 국내 여행 경비 부담은 커졌다. 제주 여행 비용이면 일본의 이국적 풍광을 즐길 수 있는데 굳이 한국에 머물 이유가 없다는 게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대체적 인식이다.통계청에 따르면 여름휴가 성수기인 지난 8월 국내 콘도 이용료와 호텔 숙박료는 전년 동월 대비 각각 8.5%, 6.9% 올랐다. 택시비(19.1%), 시외버스 요금(10.2%), 시내버스 요금(8.1%) 등 교통비도 크게 불어났다.

더욱 뼈아픈 건 정부가 내수 활성화를 위해 임시 공휴일 지정이란 ‘극약 처방’을 했는데도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KB국민카드에 따르면 올해 추석 황금연휴 기간(9월 28일~10월 9일) 해외 결제 금액은 9월 14~25일 대비 8.3% 증가했다.

국내 소비 금액은 3.0% 늘어나는 데 그쳤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현재의 원·엔 환율은 소비자가 일본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매우 매력적”이라며 “상당히 이례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소비자의 행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日 여행객 절반만 국내로 돌려도…

전문가들 사이에선 해외 여행객의 일부만 국내로 돌려도 소비 파급 효과가 클 것이란 견해가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은 4월 정부가 119만 명의 국민에게 여행비를 지원하면 연간 6조500억원의 소비 진작 효과를 낼 것이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여행업계에선 최근 성인 한 명이 일본에서 100만~150만원을 지출하는 것을 감안할 때 올해 일본으로 떠난 한국인의 절반만 국내로 돌렸어도 3조원이 넘는 소비 진작 효과가 있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