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밀린 한우 대금만 수십억"…무너진 파인다이닝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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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그룹 '오픈' 유동성 위기‘도쿄등심’, ‘일판’, ‘애리아’ 등을 운영하는 국내 최대 파인다이닝 외식기업 ‘오픈’이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석 달째 직원 월급이 밀리고 식자재 공급사들에게도 대금을 치르지 못해, 수십개 식당들을 잇따라 휴업하는 처지가 됐다.
최고급 식당 수십곳 문 닫아
미쉐린 스타 '일판'도 휴업
"700명 직원 석 달째 월급 밀려"
무리한 확장·소비 위축 '직격탄'
유행했던 오마카세도 줄폐업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사옥을 건설하고 특급 셰프와 소믈리에를 싹쓸이하며 외식업계 신화로 부상했던 오픈은 무리한 확장을 하다 소비 위축의 직격탄을 맞았다는 분석이다.
○8년 만에 무너진 파인다이닝 신화
10일 외식업계에 따르면 서울 압구정 로데오(도산대로)에 위치한 파인다이닝 ‘일판’이 지난 6일부터 휴업에 들어갔다. 일판은 1++등급 한우, 랍스터, 캐비어 등 고급 식재료를 철판에서 요리하는 파인다이닝으로 올해 ‘미쉐린 별’을 받았다. 1인 코스에 29만원인 최고급 레스토랑이다.일판을 운영하는 곳은 오픈이라는 외식그룹이다. 2015년 설립돼 고급 레스토랑 브랜드 20개를 거느리고 강남과 여의도 등 핵심 상권에 매장 40여개를 운영해왔다. 오픈 소속 레스토랑이 급작스레 문을 닫은 것은 일판 만이 아니다.
광화문의 고급 고깃집인 ‘암소서울’이 오는 16일 폐업한다. 청담동의 한식 파인다이닝 ‘애리아’와 프렌치 파인다이닝 ‘명보당’은 지난달부터 휴업 상태다. 오픈의 ‘캐시카우’로 평가받는 ‘도쿄등심’마저 서울·경기 매장 8곳 중 4곳만 영업중이다. 오픈이 레스토랑 문을 줄줄이 닫고 있는 이유는 자금난 때문이다. 지난 9월부터 직원 월급을 주지못해 700여명 중 300여명이 회사를 빠져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농축수산물과 각종 식재료 대금도 제때 치르지 못해 최근 채권자협의회가 꾸려졌다. 경영진은 급하게 인수합병(M&A) 시장에 회사를 매물로 내놨지만, 매각작업이 원활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오픈이 지급하지 못한 한우 값만 수십억원으로 식재료 공급사들도 타격을 입고 있다”며 “수백명의 직원들이 한꺼번에 구직시장에 쏟아져 나오면서 외식업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소비 위축에 외식업계 ‘찬바람’
국내에선 독보적인 파인다이닝 전문 그룹으로 급성장했던 오픈이 무너지면서 외식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연내 300명 소믈리에 양성을 선언하고 강남 최고 상권에 대규모로 매장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오픈의 몰락은 무리한 부동산 투자에서 비롯됐다는 업계 평가가 나온다. 오픈은 청담동에 수백억원을 들여 사옥 ‘오픈더청담’을 올해 준공했다. 애초에 현금이 부족한 상태에서 건축을 하다보니 대출로 비용을 막아오며 경영난에 빠졌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국내 소비 증가세가 둔화되는 동시에 해외 여행이 증가한 것도 파인다이닝 사업에 악재로 작용했다. 고급 미식문화를 즐기려 파인다이닝을 찾았던 젊은 소비자들의 발길은 눈에 띄게 줄었다. 오픈 사태를 시작으로 외식업계에 본격적인 찬바람이 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대기업 관계자는 “한때 유행이었던 오마카세들이 줄줄이 문닫고 있다”며 “오픈이 버티지 못했다는 것은 다른 외식 사업장들이 이미 상당 수 위기에 처했다는 뜻일 것”이라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지표로 활용되는 소매판매액 지수가 지난 3분기에 전년동기대비 2.7% 하락했다. 2009년 1분기 이래 14년 2분기 만에 최대폭 감소다.
하수정/한경제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