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최고대회 품은 코스…긴 수풀 지나니 아찔한 호수가 눈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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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시그니처 홀'2년 전 국내 여자골프 최고 권위 대회인 한국여자오픈이 새 둥지를 레인보우힐스CC에 튼다고 발표했을 때 골프업계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실망한 이들이 꼽는 이유는 딱 하나, 위치였다. 충북 음성이라니. 지난 10년간 잭니클라우스GC, 베어즈베스트 청라GC 등 수도권 명문 구장에서만 열렸는데….
(15) 레인보우힐스 CC
동코스 9번홀(파4)
2년 전부터 한국여자오픈 열려
다른 골프장보다 두 배 넘게 투자
잔디·코스·서비스 3박자 갖춰
전설적인 코스 설계가의 역작
'최고 중 최고' 코스 제작 위해
'명장' 로버트 트렌트 삼고초려
레인보우힐스CC를 잘 아는 골퍼들은 “올 게 왔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문’이 방송을 타면 사람들이 몰려 부킹이 어려워질 게 뻔하다는 이유에서였다.우려는 현실이 됐다. 레인보우힐스CC는 올해를 포함해 세 차례 한국여자오픈을 치르며 전국구 골프장이 됐다. 촘촘한 잔디와 교묘한 코스 설계, 따뜻한 서비스 등 3박자가 맞물린 결과였다. 시그니처홀인 동코스 9번홀(파4) 티잉 에어리어에 올라서니 한국여자오픈이 왜 레인보우힐스CC를 ‘찜’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세계적 설계가가 그린 골프장
54홀도 들어갈 넉넉한 땅(287만6033㎡)에 27홀만 담은 레인보우힐스CC는 유복한 집에서 태어난 ‘도련님’ 같은 골프장이다.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이 “최고 중의 최고 골프장을 만들자”며 목돈을 들인 덕분이다. 설계를 세계적인 골프코스 디자이너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RTJ)에게 맡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 일선에서 물러난 RTJ를 김 전 회장이 삼고초려 끝에 불러들였다. RTJ는 “모든 홀을 시그니처홀로 만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펜을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2008년 문을 열었다.업계에선 레인보우힐스CC를 짓는 데 들어간 비용이 3000억원에 이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통상적인 27홀 골프장 건설비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험난한 산악지형을 깎고, 다져야 했기 때문이다.하지만 ‘꽃길’을 걷지는 못했다. 충청도라는 약점 탓에 회원 유치가 신통치 않은 상황에서 동부건설 동부제철 등 동부그룹 주요 계열사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코너에 몰린 동부그룹은 레인보우힐스CC를 포기했고, 곧바로 기업회생 절차를 밟았다. 전환점이 된 건 퍼블릭 골프장으로 신분을 바꾼 2017년부터였다. 이듬해부터 흑자를 내더니 코로나19와 ‘한국여자오픈이 열리는 골프장’으로 선정된 2021년부터 수익성이 점프했다.
○그린 앞 차지하는 호수 위협적
시그니처홀은 지난 6월 열린 제37회 한국여자오픈 최종라운드에서 홍지원(23), 김민별(19), 마다솜(24)이 연장전을 벌인 무대다. 척 봐도 만만치 않은 홀이다. 파4홀인데, 화이트 티 기준 374m나 된다. 블루티(392m)와 블랙티(409m)는 말할 것도 없고, 레드티에서도 290m나 된다.이게 다가 아니다. 페어웨이에 공을 떨구려면 왼쪽을 파먹은 수풀을 건너야 한다. 세컨드 샷을 칠 때도 왼쪽을 조심해야 한다. 큼지막한 호수가 페어웨이부터 그린 앞까지 영역 표시를 해서다. 동반한 캐디는 “18번홀이 올해 대회 전체 홀 난이도 3위를 기록한 건 우연이 아니다”며 “수많은 선수가 직접 핀을 노리다가 공을 물에 빠뜨렸다”고 설명했다.잘 맞았다고 생각한 티샷은 페어웨이 우측 카트 도로 쪽으로 향했다. 왼쪽 숲과 호수가 무서워 오른쪽으로 겨냥한 탓이었다. 카트 길에서 크게 튄 공은 다행히 왼쪽 러프에 떨어졌다. 캐디는 “‘도로협찬’으로 30m 앞에 갔다”며 웃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서로 엉켜 있는 켄터키블루그래스가 발목 높이까지 자란 러프지역에 공이 떨어져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 골프장은 지난해 윤이나(20)가 러프에 있는 남의 공을 친 ‘오구 플레이’로 문제가 된 곳이었다. 레인보우힐스CC는 그린(벤트그래스)을 제외한 모든 곳의 잔디가 켄터키블루그래스여서 러프에서 공을 찾기가 어렵다. 5분을 뒤져도 안 나오자 공 찾는 걸 포기했다. 티잉 에어리어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공의 예상 낙하 지점에 공을 떨군 뒤 네 번째 샷을 했다. 이미 망친 홀이니, “빠질 테면 빠져라”는 심정으로 그린 왼쪽에 있는 핀을 직접 노렸다. 제대로 맞은 공은 홀 1m 옆에 붙었다. 이를 넣어 보기. 캐디는 “2년 전 박민지가 우승할 때 최종라운드 홀 세팅이 지금과 같았다”며 “박민지는 그린 오른쪽을 안전하게 노렸다가 ‘미스 샷’이 나와 왼쪽에 있던 핀에 붙은 건데, 만약 의도했다면 박민지보다 훨씬 정교한 샷을 친 것”이라고 말했다.
레인보우힐스CC는 대회가 열리는 동·남코스가 주력이지만 넓은 호수를 끼고 출발하는 서코스를 선호하는 골퍼도 많다. 충청도에 있지만, 서울 강남과 수도권 남동부 지역에선 새벽시간에 1시간30분 만에 갈 수 있다. 그린피는 주중 18만원, 주말 24만원.
음성=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