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최저가보다 더 싸게 팔아라"…카카오, 또 '갑질'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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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 내걸며 만든 패션 커머스에 불공정 거래 정황공정 거래와 관련해 고강도 정부 조사를 받고 있는 카카오가 갑질 논란에 또 휘말렸다. 패션 커머스 자회사인 카카오스타일이 입점 판매자들의 경쟁사 행사 참여를 막자 일부 판매자들이 “갑질”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카카오스타일이 앞서 최저가로 내걸었던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에 자사 행사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행사 참여 여부에 따라 판매자를 차등 대우하겠다는 메일도 보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카카오스타일은 “행사 참여는 판매자 자율”이라고 밝혔다.
할인 행사 앞둔 카카오 자회사 카카오스타일
‘지그재그’ 입점 판매자에 행사 참여 압박
“앞선 최저가보다 최소 5% 할인 권장”
참여 안 하면 매출 늘릴 기회 줄여
운송 지연 패널티도 차등 적용
카카오스타일 “참여는 자율...강제 아냐”
최저가보다 더 싸게 팔라는데...타 행사 참여는 막아
10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카카오스타일은 이달 말 블랙프라이데이 기간에 맞춰 패션 커머스 플랫폼인 ‘지그재그’에서 벌일 할인 행사에 대한 내용을 입점 판매자들에게 최근 공지했다. 카카오스타일은 “이번 행사에서 직전 3개월 내 최저가보다 최소 5% 할인할 것을 권장한다”며 “가격이 더 비싸면 참여가 불가능하다”고 알렸다. 권장이란 표현을 썼지만 행사 배제를 내세워 이전에 아무리 싸게 팔았더라도 가격을 낮춰야 한다고 사실상 엄포를 놓은 것이다.타사 행사 참여를 막기도 했다. 카카오스타일은 이 공지에서 “행사 기간 동안 자사몰 행사 외에는 타사 행사 중복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알렸다. “지그재그 단독 할인 상품을 준수하라”는 내용의 문구도 삽입했다. 자사 플랫폼에서만 더 싸게 팔아야 할 뿐 아니라 외부 행사에 참여하지 말란 뜻을 드러낸 것이다.미참여 판매자들을 압박하는 정황도 나왔다. 카카오스타일은 판매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미참여 셀러들은 오는 13~19일 이외에는 매출 증대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다”며 “참여 셀러에겐 배송 지연 시 패널티를 유예하고 선대응 해주겠지만 미참여 셀러는 즉시 페널티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이 소식을 접한 판매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8일 커머스앱 관련 네이버 카페에선 “최근 3개월간 최저가보다 더 낮은 가격에 팔라는 건 갑질”이라며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판매자 랭킹 유지도 힘들어 남는 게 없을 것”이란 게시글이 올라왔다. 앱 시장 분석 업체인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지그재그는 국내 2위 규모 여성 패션 커머스 플랫폼이다. 지난 8월 기준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가 333만명으로 1위인 에이블리(370만명)과 엇비슷하다. 입점 매장 수는 약 1만곳이다.
법조계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 커”
법조계에선 카카오스타일의 이번 공지가 불공정 거래에 해당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공정거래법은 거래 상대방에게 불이익이 되도록 거래 조건을 설정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거래상지위남용’으로 판단하고 있다. 참여 여부에 따라 배송 지연 패널티를 다르게 적용하면서 참여 업체에 기존 최저가보다 낮은 최저가로 제품을 팔도록 한 경우가 이에 해당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경쟁사 할인 행사 참여를 막은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거래 내용을 제한해 경영 활동을 간섭하는 경우도 거래상지위남용에 들어가서다.2020년 배달 앱인 요기요도 가입 음식점에 최저가 보장을 강요했다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시정명령과 과징금 4억6800만원을 부과 받은 전례가 있다. 심건섭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는 “대규모유통업법 제11조는 매출액 1000억원 이상인 유통업자가 판매촉진행사를 하기 전에 약정 없이 납품업자에게 비용 부담을 시키는 걸 막고 있다”며 “행사 기간 동안 타사 행사와 중복 진행을 금지하는 것도 이 법 제13조나 공정거래법을 위반했을 위험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번 논란은 카카오스타일이 그간 상생 경영으로 주목 받아왔다는 점 대비된다. 카카오는 2012년 “중소업자들과 ‘윈윈’하는 새로운 상생 모델을 선보이겠다”며 패션 플랫폼인 카카오스타일을 선보였다. 지난 2월엔 소상공인의 온라인 진출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카카오스타일은 행사 참여가 판매자 자유로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는 소비자 혜택뿐 아니라 판매자들에게 큰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것”이라며 “참여를 강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참여를 고민 중인 판매자들에겐 개별 연락을 해 세부 조건을 논의했는데, 이 과정에서 강제 요소는 없었다”며 “배송지연 패널티와 관련해서도 참여 판매자가 평소보다 재고를 최소 1.3배 이상 준비한 데 따라 패널티를 유예해준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로그인했더니 다른 이용자 정보가 나오기도
카카오스타일은 최근 개인정보 노출 사고도 일으켰다. 이 업체는 “지그재그 고객 1198명의 이름, 휴대폰번호, 이메일, 배송주소, 공동 현관번호, 패션·뷰티 맞춤 정보 등 최대 11개 항목이 노출됐다”고 지난 9일 알렸다. 지난 6일 로그인 정보 저장 과정에서 계정이 잘못 연결되는 오류가 생기면서 로그인 이용자에게 엉뚱한 이용자 정보가 노출된 데 따른 대응이었다. 이 오류는 발생 후 9시간 뒤 정상화됐다.사업 분위기도 좋지 않다. 카카오스타일은 지그재그를 운영하던 크로키닷컴을 카카오가 인수하면서 2021년 7월 탄생했다. 당시 지그재그가 카카오의 다른 계열사들과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란 시장 기대가 있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진 못했다. 카카오스타일의 지난해 실적은 매출 1018억원, 영업손실 518억원이었다. 매출은 전년보다 56% 늘었지만 영업손실도 36% 증가하며 적자 폭이 커졌다.카카오는 다른 사업에서도 플랫폼 갑질 논란에 휘말린 상태다. 공정위는 카카오모빌리티의 가맹 택시 수수료가 과다하다는 논란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다. 가맹 계약으로 운임의 20%를 수수료로 받은 뒤 업무 제휴 계약으로 16% 분을 돌려주는 식으로 매출을 부풀렸는지를 살펴 보는 중이다. 공정위는 카카오모빌리티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여부,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카카오가 시세 조종을 했는지 여부도 검토하고 있다.준법 위기가 잇따르자 카카오는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을 위원장으로 한 경영쇄신위원회를 출범하기로 지난 6일 결정했다. 위기가 해소되기 전까지 매주 계열사 경영진들과 함께 비상 경영 회의도 진행하기로 했다. 오는 13일엔 카카오모빌리티 경영진이 택시 단체들과 만나 가맹 구조와 수수료 체계 개편을 위한 회의를 진행한다.
이주현/이시은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