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정글서 자란 소녀가 20여년 만에 원시 마을로 돌아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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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아이
문명사회를 되돌아보는 책
원시부족과 살다 도시로 간 저자
불치병 걸리자 정글 생활로 완치
선교사이면서 언어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5세 때 서파푸아 정글 오지에 들어간 퀴글러는 나무에 기어올라 거미나 애벌레를 잡아먹었고, 활과 화살을 사용해 야생 동물을 사냥했으며, 악어가 있는 강에서 함께 헤엄쳤다.어린 시절부터 정글은 전혀 낯설거나 위험한 곳이 아니라 친근하면서도 포근하고 안전한 고향 같은 장소였다. <정글 아이>는 정글이라는 낯선 세계에서 지내며 터득한 새로운 삶의 방식, 그리고 다시 문명 세계로 돌아왔을 때 겪어야만 했던 혼란과 갈등을 소개한 책이었다.
<정글 아이>를 출간하고 난 후 지난 20여 년 동안 원시사회에서 문명사회로 돌아온 그녀에게는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무엇보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내면의 투쟁이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혔다. “정글에서는 생존을 위해 투명 인간이 되는 법을 배웠지만, 문명 세계에서는 어떻게든 눈에 띄어야만 했습니다. 정글에서는 모든 감각으로 세상을 인식하도록 훈련받았지만, 도시에서는 모든 감각을 억눌러야 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퀴글러는 2012년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불치병 진단까지 받게 된다. 이런저런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아봐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그녀는 결국 자기 자신을 살리기 위해 마지막으로 필사적인 모험을 감행한다. 가족을 아버지에게 맡기고 문명사회인 독일을 떠나 자신이 가장 편안하다고 느끼는 정글로 돌아간 그녀는 그곳에서 원시 부족과 함께 5년 동안 생활하며 그들의 방식으로 삶을 재정돈했다. 놀랍게도 그곳에서 기적적인 회복과 치유를 경험한 퀴글러는 다시 문명사회로 돌아와 기업가이자 사회비평가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한때 다채롭고 마법 같은 세계에 살았습니다.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고, 끝없는 오늘만 있는 세계입니다. 내 마음은 푸른 하늘을 나는 새들처럼 자유로웠습니다. 과거에 대한 나쁜 기억도, 어떤 절망감이나 두려움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몰랐습니다. 끝없는 현재만이 매 순간 내 삶 주변을 가득 채웠습니다. 모든 호흡은 온화한 날에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과 같았습니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