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재의 새록새록] '감감무소식' 물수리는 다 어디로 갔나

국내 대표적 물수리 도래지 남대천…특별한 이유 없이 올해는 안 보여
단풍이 한창인 가을이면 강원 강릉시 남대천은 물고기 사냥꾼 물수리의 마당이 되는 곳이다. 포항 형산강과 더불어 가을이면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멸종위기종 맹금류 물수리의 대표적 도래지이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에서 발원한 물이 강릉 시내를 거쳐 바다로 흘러가는 남대천은 숭어와 황어, 연어 등 물수리의 먹이가 되는 물고기가 많고 주변에 숲이 있어 사냥하지 않을 때면 쉬기 좋은 여건을 갖췄다.

그래서 철새인 물수리가 찾는 매년 가을이면 전국의 생태사진가를 비롯한 탐조객 등이 일명 대포로 불리는 망원렌즈를 장착하고 자리다툼을 벌일 정도로 밀려들었다.
물수리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보호되고 있는 종이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자료집(Red List)에는 관심대상종(LC: Least Concern)으로 분류돼 있다.

한때는 동시에 3∼5마리가 남대천 상공에 나타나 사냥을 시도할 때면 어느 물수리를 찍어야 하나 혼란이 생길 정도의 대표적 물수리 도래지였다.

그런 물수리가 이번 가을에는 남대천에서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9월 초중순부터 남대천을 찾던 물수리는 이제 떠나야 할 시기인 요즘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주말과 휴일 하루 종일 죽치고 기다려도 거의 볼 수 없다.
팔뚝만 한 숭어와 황어는 여전히 많고 요즘은 연어까지 돌아왔으나 물고기 사냥꾼은 남대천에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렇게까지 남대천에 물수리가 나타나지 않는 건 올해가 거의 처음이다.

외지에서 많은 탐조객과 생태사진가가 찾았으나 모두 허탕만 쳤다.

물수리 사냥터인 남대천 하구 주변이 지난 1년간 급격한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다.

지난 8월 태풍 카눈 등의 영향으로 바다와 만나는 부분의 모래톱이 사라졌을 뿐 주변에 대형 건물이 새로 들어서거나 하는 등의 아주 급격한 변화는 없었다.

다만, 남대천 하류 주변에 크고 작은 건물이 들어서는 등 개발이 계속 이뤄지고 있으며 인근의 안목 커피거리는 더 화려해지고 이곳을 찾는 차량은 주말과 휴일은 물론 평일에도 넘쳐난다.
남대천 하구와 접한 남항진 주변의 농경지도 매년 매립되는 지역이 넓어지는 등 시나브로 변화는 이뤄지고 있으나 이런 변화가 물수리가 찾지 않는 원인과 관련 있는지는 연관을 짓기 쉽지 않다.

그동안 남대천과 비교적 가까운 전봇대 등에서 사냥한 물고기를 먹던 것에서 벗어나 작년부터는 매번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 곳까지 갔던 것이 올해 물수리가 남대천을 떠난 것의 징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은 든다.

이처럼 물수리가 남대천에서는 사라졌으나 또 다른 물수리 도래지인 포항 형산강에서는 다리가 들어서는 등 주변의 여건 변화에도 물수리가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남대천 물수리는 사라졌으나 4∼5㎞ 떨어진 경포호수에서는 1∼2마리의 물수리가 올해 꾸준히 먹이활동을 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4월 대형산불로 주변의 산림이 많이 황폐해지고 20층 가까운 숙박시설이 속속 들어서는 등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상태지만 물수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드넓은 호수를 오가며 머물고 있다.

남대천 북쪽의 석호인 주문진 향호에도 예년과 비슷한 1∼2마리의 물수리가 향호와 인근의 연곡천을 오가며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남대천 남쪽의 안인 하구에도 가끔 물수리가 목격된다. 겨울 남대천의 터줏대감이 멸종위기종 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인 흰꼬리수리이듯이 가을 이곳의 터줏대감인 물수리가 내년 가을 다시 찾아와 풍성한 생태계의 한축을 형성해 주길 기대해 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