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의 백송' 있던 서촌 그곳, 시간을 껴안은 건물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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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배세연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그라운드시소 서촌서촌이라는 명칭은 사람들에게 보통 한옥마을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서촌에는 한옥뿐 아니라 다양한 주거형태와 골목이 남아있으며, 이로 인해 길 하나 차이로 전혀 다른 장소 경험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새로운 건물이 많이 들어섰다고 해도 오래된 서울의 흔적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장소이다. 통의동 35-17,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 사이의 좁은 길을 지나오면 미색 벽돌로 지어진 건물을 발견할 수 있다. 현재 그라운드 시소의 전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필자가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주목했던 것은 건물에 벽돌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곳에서는 내-외부 전체에 공통적으로 사용된 하나의 벽돌을 쌓기 방식을 달리하여 다양한 벽과 천장의 표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벽돌이 촘촘하게 쌓인 곳은 벽돌이 본래 가지고 있는 단단한 인상이 더욱 강조되어 안정적인 면을 형성하고, 다양한 쌓기 방식에 의해 형성된 공백을 통해서는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작은 창들이 형성된다. 하나의 벽돌로 공간 전체에 일관성을 부여하며 동시에 다양성을 형성하는 이러한 방식은 단일한 재료라 할지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풍부한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알게 한다. 하지만 이 공간이 멋진 진짜 이유는 4층 테라스에 도착한 후 알게 된다. 건물의 1층은 필로티로 띄워져 있으며 비어진 공간에는 작은 연못을 비롯하여 갖가지 식물들이 정원을 형성하고 있다. 이로써 빽빽한 골목을 지나 건물 내부로 입장할 때 사람들은 오히려 기분 좋은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 정원은 이 건물만의 정원이 아니다. 건물의 서측에는 백송 터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은 1990년 태풍으로 스러지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백송이 있던 자리이다.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서촌의 과거를 대표하는 것으로, 현재는 원래 백송의 밑동과 새로운 백송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그라운드 시소 건물의 정원은 이 백송 터를 연장하는 장소이다. 새로운 건물에 의해 백송 터가 고립되지 않게 하고 오히려 정원과 터가 서로 확장된 관계를 이루게 된다. 이로 인해 공간을 방문한 사람들 뿐 아니라 골목을 오가는 시민들에게까지 건물의 1층 공간은 열린 정원이 된다. 정원으로 들어와 위를 올려다보면 건물 전체를 관통하는 중정 너머로 하늘이 보인다. 이 원형의 중정은 건물의 모든 층에서 1층에 위치한 정원과 외부의 경관을 볼 수 있는 시각적 통로가 된다. 2-4층에 위치한 전시공간에서 전시를 보다가도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중정과, 중정 너머 보이는 서촌의 경관에 의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환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한편 이곳을 방문했던 한 학생은 "저는 이쪽에 있는데 다른 층의 반대편에 있는 친구랑 눈이 마주쳐서 인사할 수 있었던 것이 재미있는 경험이었다"고 했다. 이처럼 이 중정하나로 방문객들에게는 다채로운 공간 경험이 형성된다. 중정에는 백색의 얇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긴 타원형의 난간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들은 존재감을 크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비어있는 곳에 부드러운 리듬감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전시공간의 마지막 층인 4층 전시실에서 연결된 테라스로 나서면 서촌의 경관과 인왕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때 서촌의 과거의 상징과 함께 건물에 입장하여 현대의 전시와 서촌의 현재 경관을 함께 보며 올라온 후 마지막으로 서촌을 감싸고 있는 인왕산을 만나는 시퀀스를 경험한 것을 알게 된다. 이는 서촌의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시간과 장소의 축을 경험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간의 시작 지점에서부터 마지막 층까지를 경험한 것만으로도 서촌이 가지고 있는 시간성의 층위를 경험하게 되는 이것이 이 공간이 가진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서촌이나 북촌과 같이 오랜 시간의 층위를 가진 장소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설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이 장소성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 장소성은 대체로 건물의 외관과 주변경관의 관계 문제로 다루어진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서 그라운드 시소 건물을 처음 봤을 때 필자는 굉장히 현대적인 건물이 백송 터 옆에 들어섰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4층 테라스에 도달하여 지금까지 지나온 과정의 의미를 상기해봤을 때, 그 경험이 서촌이라는 장소가 가진 시간성과 연계된다는 점에서 큰 감동이 있었다.
현대적인 옷을 입었지만 그 내부에서는 오래된 장소와 연계된 공간 경험을 하게 됨으로써 건물이 구현할 수 있는 장소성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서촌이라는 장소를 경험하고자 하시는 분들께 이 공간을 추천한다. 오래된 장소가 가진 이야기를 현대적인 공간을 통해 새롭게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