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개편, 노사정 합의로…노동계 반발로 총선 전 힘들듯

'빈칸' 많이 남긴 정부 근로시간 개편…'일부 업종 유연화'만 제시
노정관계 경색 속 대화 난망…"총선 전 3대 개혁 표류" 지적도

정부가 숙고 끝에 13일 발표한 근로시간 개편 방향엔 현행 주 52시간 제도가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해 상당 부분이 '빈칸'으로 남았다.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개선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만 내놓은 채 '노사정 대화' 등을 거쳐 구체화하기로 했는데, 노사정 대화 방식이나 일정 등은 제시되지 않았다.

근로시간 개편에 대한 노동계 반발이 심한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강행하기는 쉽지 않아, 내년 4월 총선 전 개편은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 어떤 업종에서, 얼마나 늘어날지 '미정'
이날 고용노동부는 근로시간에 대한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하면서 "주 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일부 업종과 직종을 대상으로 노사가 원하는 경우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보완방안을 노사와 함께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3월 구체적인 입법예고안과 함께 근로제도 개편 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는데, '주 69시간' 역풍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의 보완 지시가 있었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8개월 만에 나온 이번 추가 발표에는 세부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

전 업종의 연장근로 단위를 월·분기·반기·연으로 확대한다는 3월 개편안과 달리 '일부 업종·직종'에만 확대한다는 방향만 제시한 채 어떤 업종에 적용할지, 주 최대 근로시간은 얼마가 될지는 추후 결정하기로 했다. 3월 개편안 발표 후 '장시간 근로로의 후퇴'라는 논란이 일고,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없는 '일방적 개편'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것을 고려해 '사회적 대화'를 통한 추진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위원으로 근로시간 개편안 마련에 참여했던 박철성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전체적으로 (연장근로 단위 확대를) 허용하는 것이 맞다고 보지만, 일단은 중간 단계로 업종·직종별로 운영해보고 부작용 등을 평가해 확대하는 것도 지금에서는 최선의 방법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노총의 이지현 대변인은 "일부 업종에 주 52시간제 애로사항이 있으면 바로잡아서 전반적으로 주 52시간제를 안착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며 "애로사항이 있다고 (장시간 근로의) 길을 터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 닫혀 있는 노사정 대화의 창…총선 앞 3대 개혁 '표류'
근로시간 제도를 놓고는 경영계와 노동계의 입장이 엇갈리는 만큼 노사정 대화를 통해 합의를 이루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3월 주 52시간제 완화 방침이 발표됐을 때도 노동계는 '과로사 조장법'이라고 반발했지만, 경영계는 "생산성 향상이 기대된다"며 환영했다.

노사정이 함께 대화 테이블에 앉는 것조차 쉽지 않다.

지난 6월 한국노총이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불참을 중단한 이후 노사정 대화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근로시간이라는 민감한 제도를 건드리기보다 실태조사와 노사정 대화를 내세워 시간을 버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는 "(근로시간 개편은) 입법과제이기 때문에 행정적으로는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총선 전까지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철성 교수도 "(노사정) 대화가 필요하기는 하다"면서도 "(근로시간 개편) 속도가 많이 늦춰지는 감이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한 근로시간 개편이 방향성 제시 수준에 그치면서 총선을 앞두고 정부의 3대 개혁(노동·연금·교육)이 모두 표류한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보험료율 등 구체적인 '숫자'가 빠진 국민연금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해 '맹탕 개혁안'이란는 비판을 받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