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에 VC 자금줄 씨마른 틈타…'스타트업 사냥' 나선 이들

바이아웃 전문 신생 투자사 속속 설립
"유니콘 아닌 '스탤리언'에 투자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망 스타트업을 저렴한 가격에 사들인 뒤 되팔아 차익을 얻는 ‘바이아웃’ 전문 신생 투자사들이 늘고 있다. 고금리 장기화로 전통적 유동성 공급처였던 벤처캐피털(VC) 업계로부터의 자금줄이 말라가자 스타트업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평가다.

13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리서지그로스파트너스(Resurge Growth Partners)’는 스타트업 인수 자금 1억2000만유로(약 1698억원)를 조달할 목적으로 올해 6월 설립됐다. 이 회사를 세운 오렌 펠레그와 이얄 맬링거는 각각 헤지펀드 오크트리캐피털매니지먼트, VC 베린지아 등을 거친, 20~30년 경력의 유명 투자자들이다.기업가치가 너무 고평가됐거나 운영상 결함 등으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성장 가능성이 있는 스타트업이 이 회사의 주요 투자처다. 스타트업 한 곳당 평균 1000만~3000만유로 규모의 자금을 부어 회생 기회를 제공한 뒤 인수 가액보다 높은 가격에 되팔겠다는 전략이다.

펠레그 창립자는 “우리는 전형적인 벤처나 성장 펀드가 아니며, 유니콘(기업가치가 1조원을 넘는 비상장 기업)이 아닌 ‘스탤리언(stallion‧번식을 목적으로 기르는 말)’을 찾고 있다”며 “모두가 어려워하는, 기업을 재창조시키는 일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영국 VC 포워드파트너스의 최고투자책임자(CIO)였던 매튜 브래들리 역시 지난해 중소 규모 기술 기업 인수를 전문으로 하는 투자사 ‘틱토캐피털(Tikto Capital)’을 차렸다.2020년 설립된 미국의 ‘어라이징벤처스(Arising Ventures)’는 샌프란시스코 중심부에 “우리는 두 번째 기회에 투자합니다”라는 슬로건이 적힌 광고를 내걸었다. 셔스틴 에릭슨 최고경영자(CEO)는 “1년 새 잠재 거래 건수가 5배 폭증했다”며 “(스타트업은) 평가액보다 더 많은 투자를 받아야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들의 사업만 ‘진짜’라면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1년간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자금 조달 환경이 악화하자 VC들은 일제히 투자 자금을 회수했고, 스타트업 생태계는 고사 위기에 놓였다.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전 세계 VC들이 스타트업 시장에 공급한 자금은 730억달러(약 97조원)로, 전년 동기(1060억달러) 대비 큰 폭으로 줄었다.

경기 둔화 흐름이 지속되면서 이 같은 바이아웃 수요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거란 전망이다. 맬링거 리서지그로스파트너스 창립자는 “2024년에는 더욱 많은 기업가가 회사를 헐값에 팔거나 폐쇄할지, 아니면 대안을 제공할지를 놓고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