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근로시간 유연화, 노동자에겐 이만한 민생 대책이 없다

고용노동부가 어제 발표한 ‘근로시간 관련 설문조사’ 결과는 현행 ‘주 52시간제’를 더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는 광범위한 공감을 확인시켰다. 국민 절반 이상(54.9%)이 경직된 주 52시간제가 ‘업종·직종별 다양한 수요 반영을 저해한다’고 응답한 것이다. 주 단위 연장근로 통제로 어려움을 겪은 기업 두 곳 중 한 곳이 수주 포기(30.6%), 법·규정 무시(17.3%) 같은 자해적 방식으로 대처한 아찔한 실태도 드러났다.

이런 결과는 지난 3월 발표된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을 ‘주 69시간제로의 퇴행’ ‘일하다 죽으라는 법’이라던 거대 노조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선동임을 보여준다. 예상대로 제조업·생산직 노동자들은 정부의 엄격한 근로시간 통제에 큰 불만을 드러냈다. 제조업 근로자의 절반 이상(55.3%)은 1주인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월·분기·반기·연으로 변경하는 데 찬성했다. 생산·설치·정비직 근로자도 3명 중 1명(32.0%)꼴로 연장근로 단위 확대에 동의했다. 사측은 물론이고 노동자도 ‘근로 선택권’을 원하는 마당에 국가가 나서서 이를 금지할 명분을 찾기 어렵다.꽤나 높은 지지가 확인됐음에도 고용부는 향후 근로시간 전면 개편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선별적으로 연장근로 관리 단위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게 전부다. 어떤 업종과 직종을 선택할지를 두고 또 거대 야당에 맥없이 끌려다니지 않을지 걱정이다. 8개월 전 악의적 왜곡에 시달린 트라우마와 총선을 앞둔 정치적 부담 때문이겠지만 더 적극적인 노동 유연화 행보를 망설여선 안 된다. 근로시간 개편은 연장근로 강제가 아니라 자율 선택권 부여인 만큼 필요성에 공감하는 노사가 자유롭게 채택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벽을 과감히 제거해야 한다.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 복귀를 선언한 마당에 야당도 달라져야 한다. 3월 근로시간 개편안 발표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노동자 삶을 통째로 갈아 넣으라는 법”으로 매도했다. 정의당도 “노동자 죽이는 개편안”이라며 폐기를 외쳤다. 하지만 그런 경직적인 태도가 정작 더 일해서 더 벌고 싶어 하는 근로자의 민생을 더 궁핍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근로시간 유연화는 그야말로 민생 차원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