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따먹기'로도 극도의 긴장감 끌어내는 킬러영화... ‘더 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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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트클럽’‘세븐’의 데이비드 핀처 감독, 넷플릭스와의 두번째 장편‘당신이 권태로움을 이길 수 없다면 이 일이 안 맞을 거다.’
- 암살자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누아르
프랑스 파리에 숨어든 킬러(마이클 패스벤더). 처리해야 할 타깃이 맞은 편 건물에 나타날 때까지, 하루종일 창 밖을 지켜보는 게 일이다. 그는 온종일 머리 속으로 독백을 이어간다. 지구상에 매초 1.8명이 죽지만 또 4.2명이 태어난다고.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세상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누아르 스릴러 ‘더 킬러’는 독특하다. 영화가 시작되고 20여분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잠복 중인 킬러가 끼니를 때우거나 운동하는 등의 일상이 있을 뿐. 이 익명의 킬러를 이해하는 단서는 그의 다소 수다스러운 내레이션이다.
드디어 타깃이 나타나지만 결과는 파국에 가깝다. 킬러의 실수엔 큰 대가가 따른다. 그 자신이 암살 대상에 오른다는 것. 그는 자신을 노리는 또 다른 익명의 킬러들을 쫓기 시작한다.
‘더 킬러’에선 기발한 무기나 육탄전이 난무하지 않는다. 킬러는 한명씩 저격하고, 흔적을 지운 후 또 이동한다. 가장 극적인 순간은 액션 씬이 아니라 (주로 내가 죽여야할 상대와의) 대화 씬들이다. 총을 발사할 최적의 순간이 언제인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예컨대 그의 총구 앞에 쭈그린 사람이 이렇게 부탁한다면 어찌 할 것인가. ‘가족들이 보험금을 탈 수 있게 사고사로 위장해주세요.’ 킬러 역을 맡은 패스벤더는 큰 표정 변화 없이도 내면의 흔들림을 보여준다. ‘전문가’ 역의 틸다 스윈튼은 특히 인상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뛰어난 배우는 '농담 따먹기'만 하면서도 최고의 긴장감을 끌어낼 수 있다.
영화의 원작은 동명의 그래픽 노블(알렉시스 놀랑 작)이다. 데이비드 핀처는 20여년 전부터 이 작품을 영화화하고자 했다. 2008년엔 브래드 피트에 주인공 역을 제안했지만, "캐릭터가 너무 냉소적"이란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한다.
주인공은 모순적이고 독특한 괴짜다. 저격에 집중할 때는 80년대 영국 록밴드 ‘더 스미스’의 살랑거리는 노래를 듣는다. 70년대 시트콤에서 당당하게 가명을 훔쳐와 쓰는 걸 보면 어딘가 빈틈도 있다. 게다가 촌스러운 버킷햇(중절모)을 쓰고 다닌다.킬러는 영화 포스터에서도 이 모자를 쓰고 있는데, 50여년 전 알랭 들롱을 떠올릴 영화 팬이 혹시 있을지도 모르겠다. 1967년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의 누아르 명작 ‘르 사무라이’(한국 제목 ‘고독’)에서 중절모를 쓴 미남 킬러였던 알랭 들롱. 이 영화 또한 킬러의 어딘가 서툴고 비틀린 일상을 놓치지 않았다. 알랭 들롱의 중절모는 모든 것을 숨겨야 하는 킬러의 스산한 내면을 나타낸다.
‘더 킬러’의 중절모는 이를 살짝 비튼다. 킬러가 버킷 모자를 쓴 것은 독일 관광객으로 위장하기 위해서다. ‘세븐’에서도 함께 했던 각본가, 앤드루 케빈 워커는 “버킷햇은 정말 멍청해보이는 작은 모자라서 딱이었다”고 설명한다. 오늘날 암살자는 낭만적이기보다는 현실적이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스릴러에선 인물의 심리가 극적 긴장을 주도한다. ‘파이트클럽’(1999) ‘세븐’(1995), ‘나를 찾아줘’(2014)가 그랬고, 이어지는 파격적인 결말은 스릴러의 쾌감을 끌어올렸다. 이에 반해 연쇄 살인마를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조디악’(2007)은 그 결말이 다소 모호했고, 불만족스럽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그의 12번째 장편 ‘더 킬러’의 결말은 후자에 가까워 보인다. 킬러의 마지막 선택에 의문을 갖거나 심지어 허무함을 느낄 관객도 있을 것이다. 해외 팬들은 벌써 여러 ‘썰’을 나누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후속작을 위한 결말이란 해석이다. 영화의 원작인 동명의 그래픽 노블(알렉시스 놀랑 작)엔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으며, 쿠바의 석유 개발 계획 등이 다음 미션이라는 것이다. 연예 매체 ‘콜리더(Collider)’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넷플릭스 측은 이번 영화의 호평에 만족하는 분위기다. 데이비드 핀처와의 다음 작업에도 적극적인 모습이다. (데이비드 핀처가 넷플릭스를 통해 내놓은 작품은 ‘맹크’(2020)에 이어 ‘더 킬러’가 두번째다) 물론 그 작업이 ‘더 킬러2’가 될 지는 알 수 없다.
만약 '더 킬러 2'가 나온다면, 마이클 패스벤더는 '존 윅'의 키아누 리브스가 될 수 있을까. 최근 후속편 제작이 결정된 ‘존 윅’ 시리즈처럼, 대중의 호응이 따를 지가 관건이다. 정통 액션 팬들에겐 '더 킬러'가 심심한 영화일 가능성이 높다. 총소리보다 내면의 독백이 더 많이 들리는 영화이긴 하니까.
김유미 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