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딱 맞는 듯한 설렘과 웃음…영화 '싱글 인 서울'

사랑에 눈뜨는 '싱글남' 그린 로맨틱 코미디…이동욱·임수정 주연
"나랑 딱 맞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싱글이 답이다.

" "혼자인 인간이야말로 가장 진화한 인간이다.

" "인간은 혼자가 돼야 비로소 자신이 보인다. "
싱글의 삶을 즐기는 영호(이동욱 분)의 말이다.

혼자 살겠다는 생각이 거의 철학 수준이다.

이 정도면 답이 없다고 할 만하다. 박범수 감독의 신작 '싱글 인 서울'은 싱글의 삶을 고집해온 영호가 사랑에 눈을 뜨는 과정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영호는 작가를 꿈꾸는 논술 강사다.

돈을 꽤 잘 버는지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널찍한 고층 아파트에 혼자 산다. SNS에서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파워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다.

영호는 혼자 사는 게 조금도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다.

백반집에서 '혼밥'을 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혼자 고기를 구워 먹는 건 고민 끝에 포기할 법도 한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깃집에 들어가 1인분을 주문한다.

그런 영호에게 동네북이란 이름의 자그마한 출판사가 책을 한 권 내보자고 제안한다.

서울과 미국 뉴욕,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사는 세 명의 싱글이 쓴 글로 '싱글 라이프 에세이'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출판사 편집장 현진(임수정)과 영호의 만남은 그렇게 이뤄진다.

현진도 싱글이지만, 영호와는 여러모로 다르다.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잘하지만, 일상생활엔 서투르다.

현진이 가장 둔한 건 연애다.

연애 촉이 너무 없어 남자가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도 자기에 대한 '플러팅'(추파 던지기)으로 착각하고 혼자 맘속으로 소설을 쓴다.

영호의 눈에 그런 현진이 들어올 리가 없다.

영호와 같은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되는 길은 두 가지일 수 있다.

하나는 아름다운 존재에게 매혹돼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을 가로막는 마음속의 벽을 허무는 것이다.

영호는 두 번째의 길을 간다.

싱글 라이프 에세이가 첫사랑의 이야기로 발전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마음속의 벽과 마주하게 된다.
'싱글 인 서울'은 요즘 세대의 사랑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첫눈에 반해 밤잠을 설치는 것도, 이별 앞에서 울고불고하는 것도 찾아볼 수 없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은 거의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 대신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주고받는 '썸'이 이어진다.

SNS에 올려놓은 사진이나 글을 보면서 그 사람의 마음을 이리저리 짐작해보는 것도 요즘 세대의 모습일 것이다.

이 영화는 '썸'의 설렘과 함께 소소한 위트로 관객을 즐겁게 한다.

현진이 일하는 동네북 출판사의 대표 진표(장현성), 동료 직원 윤정(이미도), 병수(이상이), 예리(지이수), 현진의 친구 경아(김지영)는 시종 티키타카로 웃음을 자아낸다.

바르셀로나에 살면서 '싱글 라이프 에세이'에 기고하는 홍 작가(이솜)는 이 영화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울의 아름다운 풍광도 볼거리다.

저 멀리 남산 타워가 보이는 레스토랑, 늦가을의 그윽한 정취로 가득한 고궁, 해가 질 무렵 빌딩과 차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거리 같은 걸 보다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공간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걸 새삼스럽게 알게 된다.

설렘을 자극하는 데는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영화에선 악동뮤지션의 '오랜 날 오랜 밤'과 김현철의 '오랜만에'가 그 역할을 한다.

관객은 극장을 나서면서 자기도 모르게 '오랜 날 오랜 밤'을 흥얼거릴지도 모른다.

로맨틱 코미디 '레드카펫'(2014)으로 장편에 데뷔한 박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재치 있는 대사로 웃음을 선사한다.

이동욱과 임수정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로 빚어낸 친근한 캐릭터들은 올해 연말 극장을 찾은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만하다. 29일 개봉. 103분. 12세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