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로또' 밍크고래 혼획…법 경계 모호한 '고의 질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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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연한 '불법'이지만 부검도 무용지물…실토 않는 이상 '합법'
해경, 형사팀 동원 항적·진술 상세 분석…혼획 방지책도 병행 '1천600만원, 5천300만원, 1억원…'
어느 직장인의 연봉도, 어떤 차량이나 명품 가방 따위의 가격도 아니다. 어업인들 사이에서 이른바 '바다의 로또'로 불리는 밍크고래의 '몸값'이다.
최근 강원 동해안에서는 우연히 그물에 걸린 밍크고래가 수천만원에 달하는 비싼 값에 팔리는 사례가 잇따랐다.
현행법상 조업 중 우연히 그물에 걸려 숨진 채 발견된 밍크고래를 판매하는 일은 '합법'이지만, 일부러 포획하는 건 엄연한 '불법'이다. 문제는 혼획인지, 포획인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 합법과 불법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이에 해경은 불법 포획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혼획 사건 조사 강화에 나섰으며, 수산 당국에서는 해양생태계 균형과 보존을 위해 근본적인 혼획 방지 대책을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 비싼 몸값에 작살로 불법 포획…방조해도 처벌
15일 속초해양경찰서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현재까지 속초·고성·양양·강릉 주문진 해상에서 혼획된 고래는 총 83마리다. 올해는 참돌고래, 낫돌고래 등 해양 보호 생물로 지정된 고래 7마리, 밍크고래 9마리, 기타 고래 4마리 등 총 20마리가 혼획됐다.
지난 10월 강릉 주문진항 인근 해상에서는 어선 조업 중 길이 약 472㎝, 둘레 211㎝, 무게 약 700㎏에 이르는 밍크고래가, 같은 달 양양군 수산항 인근 해상에서도 약 527㎝, 둘레 약 240㎝, 무게 약 2천305㎏에 달하는 밍크고래가 그물에 걸렸다.
이들 고래는 각각 5천300만원과 1천600만원에 팔렸다. 고래 대부분은 '해양 보호 생물'로 지정돼있어 혼획되더라도 판매가 금지돼있으나 밍크고래는 이에 해당하지 않아 불법 포획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경우 판매가 허용된다.
해경으로부터 '고래류 처리확인서'를 발급받은 어업인은 수협 등을 통해 고래를 위탁 판매할 수 있다.
죽은 밍크고래는 상태, 무게 등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라지는데,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수억원에 이르는 값에 거래돼 어업인들 사이에서는 바다의 로또로 불린다.
이처럼 목돈이 굴러오는 행운을 잡기 위해 감시망을 피해 고래잡이를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작살을 던져 고래를 죽이는 등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고래사냥을 벌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실제 지난여름 경북 포항에서는 불법으로 고래를 잡고 유통한 일당 55명이 해경에 붙잡혔다.
이들은 불법으로 잡은 고래의 사체를 해체하기 위해 주변 어선에서 볼 수 없도록 갑판 위에 천막을 설치하는 등 교묘히 범행했다.
지난 3월에는 포항시 남구 구룡포항 인근 해상에서 고래 포획선들과 선단을 이뤄 작살 등으로 밍크고래를 포획하다 덜미가 잡힌 일당이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들과 같은 배에 올라 음식을 제공한 취사원도 범행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방조한 죄로 벌금형을 받았다.
이처럼 고래를 불법으로 포획해 유통하거나 방조할 경우 수산업법, 해양생태계법, 수산자원관리법 등 관련 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 '고의 질식사' 밝혀내기 어려워…해경, 혼획 경위 조사 강화
문제는 혼획인지 불법 포획인지 명확하게 알기 어려운 상황도 있다는 점이다.
해경은 선내에서 작살 등 불법 도구를 발견하거나 사체에 남은 혈흔 등을 유전자 감식 키트로 확인해 불법 포획 여부를 밝혀낸다.
하지만 우연히 산 채로 그물에 걸린 고래를 발견하고도 신고해 구조하지 않고, 질식사할 때까지 일부러 기다렸다가 포획한 경우 선원의 신고 또는 진술이 없다면 알아낼 길이 없다.
물 밖에서 숨을 쉬고 바다 안에서 잠수하는 고래의 특성상 그물에 걸려 수면 위로 올라가지 못하면 질식해 죽는다는 특성을 악용하는 것이다.
속초해경 관계자는 "고래를 사람처럼 부검하면 질식 여부를 알 수 있으나 실익이 없다"며 "선장이 '몰랐다'고 하거나 선원 모두 입을 맞추면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내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는 경우 영상을 확인할 수 있지만, 어선 특성상 CCTV가 설치된 선박은 거의 없다"며 "결국 외관상 사체에 상흔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에는 선원 진술에 많은 부분을 의존해 조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강원 동해안 일대에서 불법 포획이 적발된 사례는 없었으나 조업 중이던 어선에서 고래가 혼획되는 사례가 잇따르자 해경은 경위 조사를 강화했다.
밍크고래 불법 포획 사례는 고래 고기 수요가 높은 경북 동해안에서 집중해서 발생하지만, 강원 해상에서 혼획된 밍크고래가 주로 경북 동해안으로 유통된다는 점에서 불법 포획이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고래 혼획 신고가 들어오면 파출소에서 출동했지만, 지금은 형사팀이 바로 현장에 나가 승선원뿐만 아니라 주변 어선 선장으로부터 진술을 듣는 등 더 상세히 들여다본다.
선장 동의를 받아 항적도를 살펴보고 선박이 다른 장소에서 포획했는지를 확인하며 항로가 실제 진술과 일치하는지도 살핀다. ◇ 고래 쫓는 소리·탈출 가능한 그물…혼획 방지 노력
이에 고래 혼획 자체를 줄이려는 방안도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해양생태계법에 따라 해양 보호 생물로 지정된 고래류에는 대왕고래, 귀신고래, 북방긴수염고래, 참돌고래, 낫돌고래 등 15종이 있다.
밍크고래는 연안에 자주 출몰하는 고래류 중 유일하게 해양 보호 생물로 지정되어 있지 않지만,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정한 멸종위기 관심 대상 동물이다.
이에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에서는 해양 보호 생물 지정 여부와 관계 없이 모든 해양포유류를 대상으로 혼획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어구에 혼획 저감장치를 부착하거나 음향을 발생시켜 고래가 그물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다.
최근에는 안강망에 딸려 들어온 고래가 스스로 탈출이 가능한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그물에 달린 뜸줄에 의해 고래의 지느러미나 꼬리가 얽혀 질식사하지 않도록 뜸줄이 없는 어구 장치를 만들어 검증하기도 한다.
혼획 비율이 높은 자망, 통발, 정치망 어업에 대한 저감장치 개발뿐만 아니라 해양보호구역을 설정해 해양포유류의 주요 서식지 등 출몰 빈도가 높은 수역을 지정하고, 금어기·금어구를 설정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고래류는 어류와 비교해 양이나 출현 빈도가 적기 때문에 수산 당국에서 혼획 감소 효과를 검증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고래연구소에 따르면 동해안에서 혼획되거나 좌초·표류하는 고래의 수가 2017년 878마리, 2018년 602마리, 2019년 542마리, 2020년 278마리, 2021년 399마리 등으로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고래연구소 관계자는 "IUCN 등 여러 기구는 고래류를 멸종위기종으로 등록해 회원국에 멸종위기·취약종에 대한 보전 노력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며 "해양생태계 균형과 보존이라는 국제사회 흐름에 따라 국내에서도 고래류 보호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해경, 형사팀 동원 항적·진술 상세 분석…혼획 방지책도 병행 '1천600만원, 5천300만원, 1억원…'
어느 직장인의 연봉도, 어떤 차량이나 명품 가방 따위의 가격도 아니다. 어업인들 사이에서 이른바 '바다의 로또'로 불리는 밍크고래의 '몸값'이다.
최근 강원 동해안에서는 우연히 그물에 걸린 밍크고래가 수천만원에 달하는 비싼 값에 팔리는 사례가 잇따랐다.
현행법상 조업 중 우연히 그물에 걸려 숨진 채 발견된 밍크고래를 판매하는 일은 '합법'이지만, 일부러 포획하는 건 엄연한 '불법'이다. 문제는 혼획인지, 포획인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 합법과 불법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이에 해경은 불법 포획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혼획 사건 조사 강화에 나섰으며, 수산 당국에서는 해양생태계 균형과 보존을 위해 근본적인 혼획 방지 대책을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 비싼 몸값에 작살로 불법 포획…방조해도 처벌
15일 속초해양경찰서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현재까지 속초·고성·양양·강릉 주문진 해상에서 혼획된 고래는 총 83마리다. 올해는 참돌고래, 낫돌고래 등 해양 보호 생물로 지정된 고래 7마리, 밍크고래 9마리, 기타 고래 4마리 등 총 20마리가 혼획됐다.
지난 10월 강릉 주문진항 인근 해상에서는 어선 조업 중 길이 약 472㎝, 둘레 211㎝, 무게 약 700㎏에 이르는 밍크고래가, 같은 달 양양군 수산항 인근 해상에서도 약 527㎝, 둘레 약 240㎝, 무게 약 2천305㎏에 달하는 밍크고래가 그물에 걸렸다.
이들 고래는 각각 5천300만원과 1천600만원에 팔렸다. 고래 대부분은 '해양 보호 생물'로 지정돼있어 혼획되더라도 판매가 금지돼있으나 밍크고래는 이에 해당하지 않아 불법 포획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경우 판매가 허용된다.
해경으로부터 '고래류 처리확인서'를 발급받은 어업인은 수협 등을 통해 고래를 위탁 판매할 수 있다.
죽은 밍크고래는 상태, 무게 등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라지는데,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수억원에 이르는 값에 거래돼 어업인들 사이에서는 바다의 로또로 불린다.
이처럼 목돈이 굴러오는 행운을 잡기 위해 감시망을 피해 고래잡이를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작살을 던져 고래를 죽이는 등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고래사냥을 벌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실제 지난여름 경북 포항에서는 불법으로 고래를 잡고 유통한 일당 55명이 해경에 붙잡혔다.
이들은 불법으로 잡은 고래의 사체를 해체하기 위해 주변 어선에서 볼 수 없도록 갑판 위에 천막을 설치하는 등 교묘히 범행했다.
지난 3월에는 포항시 남구 구룡포항 인근 해상에서 고래 포획선들과 선단을 이뤄 작살 등으로 밍크고래를 포획하다 덜미가 잡힌 일당이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들과 같은 배에 올라 음식을 제공한 취사원도 범행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방조한 죄로 벌금형을 받았다.
이처럼 고래를 불법으로 포획해 유통하거나 방조할 경우 수산업법, 해양생태계법, 수산자원관리법 등 관련 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 '고의 질식사' 밝혀내기 어려워…해경, 혼획 경위 조사 강화
문제는 혼획인지 불법 포획인지 명확하게 알기 어려운 상황도 있다는 점이다.
해경은 선내에서 작살 등 불법 도구를 발견하거나 사체에 남은 혈흔 등을 유전자 감식 키트로 확인해 불법 포획 여부를 밝혀낸다.
하지만 우연히 산 채로 그물에 걸린 고래를 발견하고도 신고해 구조하지 않고, 질식사할 때까지 일부러 기다렸다가 포획한 경우 선원의 신고 또는 진술이 없다면 알아낼 길이 없다.
물 밖에서 숨을 쉬고 바다 안에서 잠수하는 고래의 특성상 그물에 걸려 수면 위로 올라가지 못하면 질식해 죽는다는 특성을 악용하는 것이다.
속초해경 관계자는 "고래를 사람처럼 부검하면 질식 여부를 알 수 있으나 실익이 없다"며 "선장이 '몰랐다'고 하거나 선원 모두 입을 맞추면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내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는 경우 영상을 확인할 수 있지만, 어선 특성상 CCTV가 설치된 선박은 거의 없다"며 "결국 외관상 사체에 상흔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에는 선원 진술에 많은 부분을 의존해 조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강원 동해안 일대에서 불법 포획이 적발된 사례는 없었으나 조업 중이던 어선에서 고래가 혼획되는 사례가 잇따르자 해경은 경위 조사를 강화했다.
밍크고래 불법 포획 사례는 고래 고기 수요가 높은 경북 동해안에서 집중해서 발생하지만, 강원 해상에서 혼획된 밍크고래가 주로 경북 동해안으로 유통된다는 점에서 불법 포획이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고래 혼획 신고가 들어오면 파출소에서 출동했지만, 지금은 형사팀이 바로 현장에 나가 승선원뿐만 아니라 주변 어선 선장으로부터 진술을 듣는 등 더 상세히 들여다본다.
선장 동의를 받아 항적도를 살펴보고 선박이 다른 장소에서 포획했는지를 확인하며 항로가 실제 진술과 일치하는지도 살핀다. ◇ 고래 쫓는 소리·탈출 가능한 그물…혼획 방지 노력
이에 고래 혼획 자체를 줄이려는 방안도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해양생태계법에 따라 해양 보호 생물로 지정된 고래류에는 대왕고래, 귀신고래, 북방긴수염고래, 참돌고래, 낫돌고래 등 15종이 있다.
밍크고래는 연안에 자주 출몰하는 고래류 중 유일하게 해양 보호 생물로 지정되어 있지 않지만,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정한 멸종위기 관심 대상 동물이다.
이에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에서는 해양 보호 생물 지정 여부와 관계 없이 모든 해양포유류를 대상으로 혼획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어구에 혼획 저감장치를 부착하거나 음향을 발생시켜 고래가 그물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다.
최근에는 안강망에 딸려 들어온 고래가 스스로 탈출이 가능한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그물에 달린 뜸줄에 의해 고래의 지느러미나 꼬리가 얽혀 질식사하지 않도록 뜸줄이 없는 어구 장치를 만들어 검증하기도 한다.
혼획 비율이 높은 자망, 통발, 정치망 어업에 대한 저감장치 개발뿐만 아니라 해양보호구역을 설정해 해양포유류의 주요 서식지 등 출몰 빈도가 높은 수역을 지정하고, 금어기·금어구를 설정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고래류는 어류와 비교해 양이나 출현 빈도가 적기 때문에 수산 당국에서 혼획 감소 효과를 검증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고래연구소에 따르면 동해안에서 혼획되거나 좌초·표류하는 고래의 수가 2017년 878마리, 2018년 602마리, 2019년 542마리, 2020년 278마리, 2021년 399마리 등으로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고래연구소 관계자는 "IUCN 등 여러 기구는 고래류를 멸종위기종으로 등록해 회원국에 멸종위기·취약종에 대한 보전 노력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며 "해양생태계 균형과 보존이라는 국제사회 흐름에 따라 국내에서도 고래류 보호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