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춘모의 '선'이 묻는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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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한국신사 유람일기
대구 인당뮤지엄 남춘모 개인전 'From Lines' 리뷰
드로잉 연작에서 대형 설치 신작까지
남춘모 선생의 40여년 작품세계 총망라
"인당 유원지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 환영합니다. 이제 남춘모 월드로 떠나는 '선으로부터' 열차가 곧 출발합니다. 지정된 좌석에 앉아서 마음을 가다듬으십시오. 노약자와 임산부들도 대 환영입니다만, 예술적 감흥으로 놀라실 수 있으니 마음의 안전 벨트도 확실히 매주시기 바랍니다!"한 작가의 개인전이 이렇게 다양한 재미와 예술적 감흥을 줄 수 있다니…. 하나의 주제의식으로 변화무쌍한 변조를 창조해 온 남춘모 작가의 대구 인당뮤지엄 전시 ‘From Lines(선으로부터는)’는 밀도 높은 구성으로 지난 9월 14일 전시 개막과 함께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수년간 작가의 팬으로 특히 10점 이상의 작품을 다양하게 소장한 자칭 열혈 팬으로서 그간의 컬렉션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공고히 하게 되어 개인적으로도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 전시다. 우리가 아는 현대미술의 대가들조차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찾으면 그 것에 몰입되어 한 두 가지 방식을 계속 갈고 닦는다는 생각으로 수 없는 동어반복으로 변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내심 이번 전시에 앞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도대체 더 이상 어떤 표현 방식이 ‘선’을 주제로 하는 작품활동에서 전개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 국내와 해외에서 이어진 대형 전시에서 늘 놀라운 감동을 선사해온 작가이기에, 더불어 매우 드라마틱한 전시실을 가진 인당 뮤지엄을 어떻게 작가가 활용할 것인가가 궁금했으니 뚜렷한 관람 포인트를 호기심으로 품고 대구를 찾았었다.그렇게 ‘선으로부터’ 열차는 로비에 놓인 강렬한 붉은색의 대형 페인팅에서 출발해 마치 차원 이동을 향하는 커다란 문 같은 대형 원 조각 작품을 통과하면서 놀라운 여정을 시작한다. 제 1전시실의 한쪽 벽면을 가득 매운 드로잉 작품들은 선의 다양한 변조를 보여준다. 작은 입체의 선이 덩어리가 되었다가 또다시 자유 곡선을 그리고 컬러가 달라지면 또 다른 모습으로 선이 확장되는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간혹 뛰어난 미감으로 확고한 작품 세계를 구현하는 작가들도 이런 자유로운 드로잉에서는 놀랍도록 서툰 손 놀림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는데 남춘모 작가의 스트로크는 그 완성도가 얼마나 높던지, 그래서 드로잉만으로도 컬렉션을 가득 채우는 컬렉터가 있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고개를 돌리면 전시실 가장 끝엔 입구에서 커다란 원 조각 통해 바라보면 마치 여행의 목적지인 듯 소실점처럼 자리한 금색의 작품이 자리한다. 바로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신작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신작 ‘From Lines’는 그 간의 작품들이 작가가 초조한 무명시절부터 치열하게 미감을 발전시키며 줄곧 ‘나는 무엇을 향해 어디로 가는가?’라는 외부로 던지는 질문의 답으로서의 결과물이었다면 이번엔 자신을 향한 질문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답으로 제시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무척 신선하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가족들과 함께 비탈진 대지를 일구며 가족의 생계와 삶의 이유를 찾았던 작가는 그 기억을 떠 올리며 땅을 캐스팅 하는 작업을 선 보였다.
밭을 일구듯 자갈과 흙으로 형태를 잡고 기존의 작품들과 동일한 기초재료인 광목 천을 덮고 역시 ‘Beam’작업과 마찬가지로 방수 수지를 덧발라 고착시킨 후 견고하게 굳혀 형태를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업에 작가의 전형적인 미감인 선과 색을 더해 완성한다. 후에 이어지는 제 4전시실에서 그 진면목을 들어내는 신작들은 완전히 다른 형태와 작업 방식으로 만들어 지지만 작가가 줄곧 추구해온 일관된 소재와 미의식을 담았다는 점이 놀랍고 신선하다.이제 동선을 바꿔 길고 긴 계단을 오른다. 어떤 작품으로 감동 받게 될지 심장이 두근대는 가운데, 놀라운 재미와 스릴을 제공할 롤러코스터가 철컥철컥 경사로를 오르듯 계단을 오르고 올라 정상에 서면 제 2전시실이 활짝 반긴다. 롤로코스터가 내리막의 질주를 시작하기 직전 가장 높은 곳에서 만나는 광활한 풍경이 탁 트인 시선으로 활홀경을 제공하듯 놀라운 대작이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가 자주 사용해 온 디귿(ㄷ) 자 모듈을 크게 확대한 작품 35개가 한 쪽 벽면을 가득 메운다. 무려 25미터가 넘는 커다란 벽 한 켠을 가득 매운 작품이 장관을 이룬다.
앞으로 경험할 롤러 코스터의 내리막의 재미와는 별개로 아름다운 원경을 감상하는 듯 숨막히는 순간이다. 작가의 작업을 설명하면서 종종 보여지는 동영상 속 고향 땅의 긴 밭 이랑을 닮은 이 대형 설치 작업은 아마도 이 전시의 가장 중요한 예술적 스펙터클이다.이제 ‘선으로부터’열차는 롤로코스터의 아기자기한 재미를 선사한다. 다음 전시실로 향하는 긴 복도 끝에 위치한 알록달록한 설치 작업, 그리고 왼 켠으로 아래쪽 로비를 내려다 보면 이미 만나본 작품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제 3, 4 전시실에 위치한 기존의 작업들과 신작의 변주는 작가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맛보는 즐거움이다. 신작 ‘From Lines’의 다양한 모습은 이 신작들이 어떻게 작가의 미감을 흥미롭게 확장시킬지 기대하게 만든다.드디어 이 전시의 하일라이트 마지막 제 5전시실로 향한다. 미술관의 로비로 다시 돌아와 뒤편의 긴 내리막 끝에 위치한 5전시실에서는 어떤 재미가 우리를 기다려 줄까? 이 방에 들어선 관람자는 전시실의 채광에 따라 아주 색다른 감정을 갖게 된다고 한다. 설치된 전시물은 소셜 미디어에서 한동안 각광 받아온 #의 모습, 한자가 익숙한 이들에겐 밭 전(田), 혹은 뉴욕 양키스의 로고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그 만큼 그 형태적 표현도, 그리고 각자가 받는 감동도 다르다. 하지만 흑과 백의 명징한 대비로 가득 매워진 공간은 마치 숲을 거닐거나 눈 발이 날리는 설국의 환영을 떠올리게도 하는 등 몽환적 판타지를 제공 한다는 점에선 모종의 유사한 감흥을 남긴다.이 드라마틱한 ‘선으로부터’ 열차의 여정을 이미 5번이나 경험한 필자는 놀랍게도 매번 방문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선이라는 주제를 다양한 표현으로 담아내 관람자를 수 차례 들었다 놨다 하는 작가 남춘모의 다음 전시가 벌써 기대되는 이유다. 대구 보건대학교의 인당 뮤지엄을 찾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긴 시간을 두고 관람의 흥분과 감동을 그리고 40여년 남춘모 작가가 추구해온 ‘선’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를 마음 가득 실어오면 좋겠다. 전시는 12월 14일까지. 대구= 이헌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