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누피 캐럴'의 아버지, 빈스 과랄디를 아시나요

[arte] 론 브랜튼의 Jazz it UP
연말이 되면 뮤지션들은 바빠진다. 연말 파티를 음악과 함께 마무리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음악가들이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는 시기다. 특히나 인기 있는 장르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편곡한 재즈 음악이다. 루이 암스트롱의 '크리스마스 인 뉴올리언스', 엘라 피츠제럴드의 '눈사람 프로스티', 케니 버렐(기타)의 '그 어린 주 예수' 등이 재즈로 편곡되는 단골손님들이다.

루이 암스트롱의 '크리스마스 인 뉴올리언스(Christmas in New Orleans)'
엘라 피츠제럴드의 '눈사람 프로스티(Frosty the Snowman)'


케니 버렐(기타)의 '그 어린 주 예수(Away in A Manger)'


이번 글은 '재즈 버전' 크리스마스 캐럴 인기의 시초와도 같았던 재즈 피아니스트 빈스 과랄디의 이야기다.과랄리는 만화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의 원작자인 찰스 슐츠를 다룬 애니메이션 음악으로 명성을 얻었다. TV 프로듀서인 리 멘델슨은 찰스 슐츠의 4컷 만화 '피너츠'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스누피-찰리 브라운이라 불리는 소년'을 기획했다. 여기 어울리는 음악을 찾던 그는 금문교를 지나던 중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당신의 운명을 바람에 맡기세요'에 매료됐다. 원작자를 수소문하던 중 과랄디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둘의 역사적인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Vince Guaraldi 찰리 브라운 크리스마스 음악 (A Charlie Brown Christmas) CD / 예스24
멘델슨이 잔뜩 격양된 과랄디의 전화를 받게 된 것은 몇 주 뒤의 일이었다. 자신이 방금 완성한 곡을 당장, 그 자리에서 들려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멘델슨은 당시 전화기의 열악한 음질로 인해 음악에 대한 첫인상이 망가질까 봐 과랄디의 스튜디오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과랄디는 단호했다. "지금 당장 누군가를 위해 이 곡을 연주하지 않으면 폭발할 것 같소!"

과랄디는 아직은 제목 미정이었던 '라이너스와 루시'를 들려줬다. 멘델슨은 이 곡이 '피너츠'의 캐릭터들에 딱 알맞다고 단번에 느꼈다. 2008년에 벌어진 이 일을 두고 멘델슨을 이렇게 회상했다. "정말 깜짝 놀랐어요. 찰리 브라운과 다른 캐릭터들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고 완벽했죠. 그 노래가 제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것을 알았죠.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기 전부터, 그 음악에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과랄디 트리오'의 몬티 버드위그(베이스), 콜린 베일리(드럼) 등은 1964년 10월 다큐멘터리 사운드트랙 '찰리 브라운이라 불리는 소년과 재즈'를 녹음했다. 노래는 같은해 12월 이를 발매됐다.

다큐멘터리 방영은 연기됐지만, 슐츠와 멘델슨은 이듬해 크리스마스 스페셜 '찰리 브라운의 크리스마스'(1965)로 과랄디와 다시 만났다. 이번엔 제리 그라넬리(드럼)와 프레드 마샬(베이스) 등 '빈스 과랄디 트리오' 멤버들이 음악 작업에 함께했다. '크리스마스 이즈 히어', '스케이팅', '라이너스와 루시' 등 수록곡들을 전부 과랄디가 작곡했다. 이 앨범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지금도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사랑받고 있다.
빈스 과랄디 트리오 / 출처 = 나무위키
<피아노 앞의 빈스 과랄디>의 저자 데릭 방은 "'찰리 브라운이라 불리는 소년과 재즈'와 후속작 '찰리 브라운의 크리스마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엔터테인먼트 캐릭터가 음악과 이렇게 빠르고 확고하게 매칭한 사례는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 개인의 작품 전체가 음악으로 탄생한 사례는 드물다"며 "과랄디가 정의한 1960년대 '피너츠 사운드'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들 트리오의 연주는 마치 이 곡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반짝인다"고 덧붙였다. 멘델슨도 여기에 동의했다. 그는 "과랄디의 곡이 없었다면 스누피가 지금과 같은 프랜차이즈로 거듭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찰리 브라운의 크리스마스'의 관계자들은 이 프로젝트의 흥행을 일회적인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성공가도는 두 번째 공식 피너츠 텔레비전 스페셜 '찰리 브라운의 올스타!'에서도 이어졌다. 이후 슐츠와 멘델슨, 애니메이터 빌 멜렌데즈 등이 핼러윈을 겨냥해 제작한 애니메이션 '위대한 호박, 찰리 브라운'에서다.

과랄디는 1966년 여름 내내 핼러윈을 테마로 한 음악을 작곡하며 멘델슨에게 '라이너스와 루시'를 피너츠 테마 음악에 수록할 것을 권했다. 과랄디는 이 곡을 전작 '찰리 브라운의 올스타즈!'에 수록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그 실수를 바로잡고자 한 것이다.

멜렌데즈는 과랄디의 제안에 따라 대사가 없는 긴 도입부로 애니메이션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음악과 음향 효과만으로 극중 등장인물인 라이너스와 루시가 호박을 찾는 과정을 전달했다. 과랄디는 도입부를 위해 버드윅과 베일리, 트럼펫 연주자 엠마누엘 클라인, 기타리스트 존 그레이, 플루티스트 로니 랭이 협연하는 새로운 버전의 6중주 버전의 '라이너스와 루시'를 녹음했다. 랭의 플루트 연주는 신곡 전체를 관통했고, 오늘날 피너츠 프랜차이즈의 시그니처 멜로디가 됐다.

과랄디는 이후 12편의 피너츠 애니메이션 TV 스페셜과 영화 '스누피-찰리 브라운이라 불리는 소년'(1969)과 다큐멘터리 '찰리 브라운과 찰스 슐츠'(1969) 음악을 작곡했다. 과랄디가 만든 수많은 피너츠 음악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전 공식 사운드트랙으로 발매된 것은 '찰리 브라운의 크리스마스'와 '스누피-찰리 브라운이라는 이름의 소년'(미방영 다큐멘터리와 장편 영화 모두)이 전부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찰리 브라운을 만든 핵심 요소는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피너츠 음악은 모든 연령층에게 다가갈 수 있는 현대적 사운드를 선사했죠. 과랄디와 저는 둘 다 재즈를 좋아했기 때문에 함께 음악을 작업했습니다. 그는 각 장면에 대한 음악 샘플을 가져왔고, 우리는 그것을 한 장면씩 검토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음악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죠. 하지만 어떤 음악은 사용하지 않거나 다른 곳에 사용해야 할 때도 있었어요. 16개의 모든 프로그램에서 같은 과정을 거쳤죠. 항상 남은 음악이 있긴 했지만, 그가 작곡하고 연주한 대부분의 음악이 방송에 사용됐어요,"(멘델슨, 2010년의 한 인터뷰에서)

나 또한 과랄디의 음악을 들으며 자란만큼, 요즘도 크리스마스 콘서트마다 그의 음악을 플레이리스트에 넣는다.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곧 다음 세 가지를 의미한다. 가족, 영혼의 안식, 그리고 과랄디의 음악이다. 12월 22일(광림아트센터 장천홀)과 24일(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콘서트에서 독자들도 이 시간을 함께 즐기시기를 바란다.론 브랜튼 재즈피아니스트·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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