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 테슬라'…"그 자체로 설렘" 빈센에 투자한 이유 [그래서 투자했다]

그래서 투자했다 (18)
인포뱅크 iAccel 사업부 길창군 부대표
한경 긱스(Geeks)의 [그래서 투자했다]는 벤처캐피털(VC)이나 액셀러레이터의 투자심사역이 발굴한 스타트업과 투자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인포뱅크의 액셀러레이터 조직 아이엑셀의 길창군 부대표가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소형선박과 추진시스템 제작 전문 업체 빈센에 투자한 뒷이야기를 전합니다.

바다 위에 테슬라를 꿈꾸는 (주)빈센에 투자할 무렵에 나는 유년 시절을 회상했다. 바다와 하늘을 물들이는 저물녘 노을과 억새가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서해가 내가 자란 곳이다. 땅이 없어도 바다와 갯벌에서 나는 고기와 조개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풍요로운 곳으로 기억되어 있다. 짠 내 베인 바닷바람을 따라 바다에 나갈 일이 많았던 터라 어릴 적부터 영화에 나오는 멋진 크루즈 한 대쯤 있었으면 하는 로망이 있었다.

멋진 배 한척! 있었으면 하는 꿈이 있었던 나에게 배를 만드는 회사, 그것도 전기 배를 만드는 회사를 만난 것은 그 자체로 설렘이었다. 빈센에 대해 꿈꾸던 세상을 이뤄내는 '사심 가득한 투자'라고 말하는 이유다.
친환경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이 탑재된 레저용 선박 콘셉트 / 빈센 제공

전기동력 추진 시스템의 가능성을 보다


자동차와 선박은 ‘탈 것’이라는 점은 동일하지만, 자동차 제조사와 조선사의 노하우에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전기차의 진화 속도에 비해 전기 선박의 진화 속도는 매우 더디게 느껴진다. 적잖은 위험을 감수하고 이 시장에 도전하는 전기 선박 개발사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세계 각국의 환경 규제 영향으로 선박의 내연기관 엔진 비중이 점차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해양 레저에 대한 관심 증가와 친환경에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기가 맞물리면서 미래형 선박에 관심을 갖게 됐다.국내 친환경 선박에 대한 법률과 국제해사기구(IMO)의 해양환경 오염 방지 협약이 발표되면서 새로운 해운 비즈니스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환경규제 강화는 친환경 재생 에너지를 사용하는 선박으로 변화되기에 충분하다고 봤다. 관련 스타트업을 탐색하면서 전기 선박뿐만 아니라 전기동력 추진 시스템에 대한 가능성을 크게 봤다. 그렇게 바다 위의 테슬라를 꿈꾸는 친환경 소형선박 및 추진시스템 제작 전문 업체 빈센을 만났다.


전남 영암에서 타향살이를 자초한 창업팀


빈센을 창업한 이칠환 대표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은 2019년 실사(Due diligence) 과정에서였다. 보통 초기 창업 기업에 대한 실사는 대부분 생략된다. 초기 창업기업 특성상 재무·법률·사업·세금 등 실사에 필요한 충분한 자료가 없어 사실상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재무적 실사가 아니라 투자 의사 결정을 하기 전에 궁금한 사항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빈센은 전라남도 영암군 대불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하고 있다. 액셀러레이터 업계에 몸담은 이후 꽤 많은 창업 기업을 만나는 데 가장 오래 걸려 방문한 기업으로 기억된다.2017년 10월 설립된 빈센은 당시 국내에서 보기 드문 전기선박 개발사였다. 10미터급 친환경 전기선박을 완성단계까지 개발한 상태였으며, 전기추진 보트에 관한 지식재산권(IP) 특허를 보유했다.
이칠환 빈센 대표
이칠환 대표는 대우조선해양에서 조단위의 여객선의 해외기술 영업을 담당하던 프로젝트 매니저 출신이었다. 창업 멤버들도 대우조선해양과 협력사에서 다년간 호흡을 같이 한 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크루즈, 페리 설계의 전문성과 조선 산업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는 해운 비즈니스 전문가였다.

미래형 전기 선박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가격, 품질, 기술력 등이 검증된 국내외 협력 파트너사와의 신뢰 구축이 필수적이다. 빈센은 전기 선박 설계에 있어 최적의 조건으로 어셈블리를 할 수 있는 엔지니어링 전문가 그룹이었다.실사를 마치고 나서 창업 멤버들과 함께한 저녁 자리에선 더 중요하고도 진솔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빈센 창업팀들은 ‘우리 손으로 직접 전기 배를 만들어보겠다’는 목표 하나로 전남 영암에 모여, 주말 부부에 타향살이를 사서하고 있었다. 고생을 자초하며 주중에 함께 모여 일에 집중하는 일들에서 성공에 대한 강한 믿음과 끈끈한 팀워크를 느낄 수 있었다.


전기 추진부터 수소연료전지 선박까지


빈센은 친환경 해양 모빌리티 산업의 선두 주자로 전기 수소‧선박을 개발하는 회사다. 친환경 전기 및 수소 연료 전지 시스템을 글로벌 선사들에게 공급하면서 글로벌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빈센은 지난 7월 국내 최초의 무탄소 순수 전기추진 여객선 ‘정원드림호’를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납품하며 상용화에 성공했다. 해양수산부와 한국선급으로부터 동시에 형식 승인받은 ‘선박용 고속 충전 배터리 시스템’을 탑재한 소형선박이다.

빈센은 초기엔 내연기관 선박에 전기 배터리를 적용한 전기추진선박에 집중했지만, 운항 거리가 너무 짧다는 단점 때문에 수소연료전지로 눈을 돌렸다. 3년 전 개발에 착수한 수소 전기선박 하이드로제니아는 울산의 장생포항에서 100시간이 넘는 운항 시험을 마쳤다.

지난 9월엔 한국선급으로부터 '100kW 해상용 연료전지모듈'의 개념인증(AIP)을 획득했다. AIP는 한국선급의 신기술 적격성 평가 4단계 중 첫 번째인 타당성 및 개념 검증 단계에 속한다. 빈센은 내년까지 해당 100kW 연료전지모듈 2기를 탑재한 소형 친환경 선박을 건조해 실증을 진행할 예정이다.
전남 영암군 대불산업단지에 있는 국내 최초 수소연료전지 모듈 양산 공장 / 빈센 제공

가치 상승이 가능한 기업에 선제적 투자


액셀러레이터는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예견하는 미래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각자 관심 분야에 투자 활동을 하고 있다. 가장 기초적인 의식주부터 건강에 대한 욕구, 좀 더 복잡한 자아실현의 욕구를 해결하는 기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가장 상위의 욕구는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자아실현의 욕구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인류의, 전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혁신적인 변화에 관심이 있는 창업자를 좋아한다. 고객들에게 자아 개선 및 실현을 가능케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사심 가득한' 투자하고 있으며, 사업 성장이나 가치 상승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회사들을 찾고 있다.

초기기업 전문 투자 기관들은 투자 의사 결정 시, 창업 기업의 사업 성장이나 가치 상승(Value-add)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느냐를 매우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초기 기업일수록 성장 패턴은 순조롭게 우상향 곡선을 그리지 않고 시장 환경, 자금력, 가치 제안, 사업 전략 등을 통해서 계단식 성장 패턴을 보이기 때문이다.

보통 투자는 미래의 수익을 위한 현재의 경제적 희생을 의미한다. 희생은 현재 이루어지는 데 반해 수익은 미래에 발생하는 이득이라는 점에서, 희생은 확실하지만, 수익은 불확실하다. 투자 시점과 수익의 발생 시점 사이의 시차를 줄이고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금전적 투자와 함께 창업팀의 가치를 높이는 일을 하고 있다.

최근 들어 초기 창업기업에 투자해서 5년 만에 기업공개(IPO)에 성공한 사례를 경험한 적이 있다. 이 회사의 성장 속도는 투자 후 1년 만에 3배, 2년 만에 20배, 3년 만에 40배로 빠르게 성장했다. 기업가치는 상장 후 가치 기준으로 멀티플이 무려 120배 이상 성장했다.
인포뱅크는 올해도 30개의 창업 기업을 팁스(TIPS) 프로그램에 선정시켰다. 전체 팁스 운영사 111개 사의 평균 선정 기업이 6개 사인 것을 감안하면, 아주 독보적인 행보라 할 수 있다. 팁스 프로그램은 기술개발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에 대한 집중도가 높은 사업 전략까지 끌어내야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우리는 때로는 창업 기업의 공동창업자가 되기도 하고, CTO, CSO, CMO, CPO로 투자 기업과 원팀이 되어 좋은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었다.

좋은 회사에는 좋은 투자자가 있기 마련이다. 해당 사업 분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옆집 아저씨’가 투자하는 10억 원과 ‘스티브 잡스’가 투자하는 1억 원 중 창업자는 어떤 투자를 받길 원할까? 첫 투자를 “누구에게 받느냐"에 따라 회사의 성장 속도가 달라진다.

길창군 ㅣ 인포뱅크 iAccel 사업부 부대표
네오위즈 그룹의 초기 멤버로 약 23년간 게임, 커뮤니티, 음악, 모바일 플랫폼 등 다양한 사업을 총괄, 지휘했다. 네오위즈 그룹사 내 투자 및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인 네오플라이에서 투자 및 사후 관리를 전담했으며, 더벤처스에서 팁스(TIPS) 프로그램 총괄 운영을 담당했다. 이후 인포뱅크에서 투자 심사를 비롯해 파트너사들의 경영 기획, 지표 관리, 홍보·마케팅 전략, 비즈니스모델 고도화를 지원하고 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