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싸움보다 수다가 많은 스릴러…농담 따먹기로도 극도의 긴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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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킬러'‘당신이 권태로움을 이길 수 없다면 이 일이 안 맞을 거다.’ 프랑스 파리에 숨어든 청부살인자. 그는 처리해야 할 타깃이 맞은편 건물에 나타날 때까지 하루종일 창밖을 지켜보는 게 일이다.
영화 시작된 뒤 20분동안
사건 없이 킬러의 권태감 묘사
결말은 다소 모호하고 불완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누아르 스릴러 ‘더 킬러’는 독특하다. 영화가 시작되고 20여 분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잠복 중인 킬러가 끼니를 때우거나 운동하는 등의 일상이 있을 뿐. 익명의 킬러를 이해하는 단서는 그의 다소 수다스러운 내레이션이다.‘더 킬러’에선 기발한 무기나 육탄전이 난무하지 않는다. 킬러는 한 명씩 저격하고, 흔적을 지운 후 이동한다. 가장 극적인 순간은 액션 신이 아니라 (주로 내가 죽여야 할 상대와의) 대화 장면들이다. 총을 발사할 최적의 순간이 언제인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의 총구 앞에 쭈그린 사람이 이렇게 부탁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가족이 보험금을 탈 수 있게 사고사로 위장해주세요.” 킬러 역을 맡은 마이클 패스벤더는 큰 표정 변화 없이도 내면의 흔들림을 보여준다. ‘전문가’ 역할의 틸다 스윈튼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농담 따먹기로도 극도의 긴장감을 끌어낸다.
핀처 감독은 20여 년 전부터 이 작품을 영화화하고자 했다. 2008년엔 브래드 피트에게 주인공 역을 제안했지만 “캐릭터가 너무 냉소적”이란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한다. 주인공은 모순적이고 독특한 괴짜다. 저격에 집중할 때는 1980년대 영국 록밴드 더스미스의 살랑거리는 노래를 듣는다. 1970년대 시트콤에서 당당하게 가명을 훔쳐 와 쓰는 걸 보면 어딘가 빈틈도 있다. 게다가 촌스러운 버킷햇(중절모)을 쓰고 다닌다.핀처 감독의 스릴러에선 인물의 심리가 극적 긴장을 주도한다. ‘파이트클럽’(1999) ‘세븐’(1995) ‘나를 찾아줘’(2014)가 그랬고, 이어지는 파격적인 결말은 스릴러의 쾌감을 끌어올렸다. 이에 반해 연쇄 살인마를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조디악’(2007)은 결말이 다소 모호하고 불만족스럽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그의 12번째 장편영화 ‘더 킬러’의 결말은 후자에 가까워 보인다. 킬러의 마지막 선택에 의문을 갖거나 심지어 허무함을 느끼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더 킬러’는 영화관에 1주일간 형식적으로 걸려 있다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로 넘어왔다. 벌써부터 ‘더 킬러2’가 나올 것인가 말들이 많다.
김유미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