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선수단 구성' 좀 해달라는 용택이 말에 충격 먹었죠"
입력
수정
LG 전성기·암흑기 다 거친 차명석 단장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기
단장 취임 후 코치 역량 강화→유망주 육성으로 '5년 내 우승' 목표 달성 프로야구 LG 트윈스가 13일 무려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 짓던 순간, 차명석 단장은 서울 잠실구장 본부석에서 구광모 구단주(LG 그룹 회장)와 두 팔을 번쩍 들고 환호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시계를 29년 전으로 돌려보면, LG가 구단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던 1994년 10월 23일 데뷔 3년 차 투수 차명석은 인천 숭의야구장(도원야구장) 더그아웃 한쪽에서 동료들과 조용히 우승을 자축했다.
차 단장은 LG 트윈스 구단사에 길이 남을 1994년과 2023년 우승 현장을 똑같이 지켰다.
"조금 창피한 얘기인데 1994년에는 한국시리즈 로스터에 들었지만, 후반기에 팔꿈치를 다쳐 등판하지 못했고, 조용히 우승 순간을 바라보기만 했죠. 그때는 멤버가 워낙 좋아서 언제든 우승할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인지 감격스러운 느낌이 좀 덜했는데 이번엔 다르더라고요.
'아키텍트'(architect·건축가)로 이 선수단을 내가 만들었잖아요.
그 선수들이 마침내 우승을 이루니 더욱 기뻤던 것 같아요. "
LG의 한(恨)을 푼 지금의 선수단을 설계하고 구성한 주인공이라는 뿌듯함이 차 단장의 얼굴에 그대로 쓰여 있었다. 트윈스 선수단에서 LG 신바람 야구의 전성기와 암흑기, 그리고 불굴의 도전기를 차 단장만큼 잘 아는 이는 없다.
기쁨의 축배를 드느라 우승 후 이틀간 즐겁게 취했다던 차 단장은 15일 잠실구장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그간 준비해 둔 이야기보따리를 한 아름 풀어놨다. 현역 때 차 단장은 볼은 느리지만 제구 능력이 좋아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컨트롤의 마법사로 통하는 그레그 매덕스의 이름에서 따온 '차덕스'라는 애칭으로 통했다.
속구와 슬라이더 두 구종에 투심 패스트볼을 곁들여 던졌다.
그런 차 단장이 2019년 LG 단장으로 취임해 2년 연속 던진 공은 변화구가 아닌 느리지만 묵직한 속구였다. ◇ "왜 스카우트 탓을 하나요? 좋은 코치가 없어서죠"
차 단장은 2018년 10월 방송사 해설위원으로 MLB 월드시리즈 현장 중계를 위해 미국행을 준비하던 차에 LG 단장에 선임됐다.
"LG 그룹 관계자께서 밥이나 먹자길래 나갔죠. 나중에 보니 단장 인터뷰였던 것 같은데 그걸 모르고 나갔으니 과감하게 말씀드렸죠. 뎁스(depth·선수층)를 강화하자고 하고선 그런 요인들이 하나도 없는데 뭘 강화한다는 것이냐. 만날 옆집 두산 베어스 야구 부러워하는데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팀을 이끌 건지 고민도 안 하고, 방법도 모르는 것 같다고 신랄하게 말했어요.
"
차 단장은 이 관계자에게 명확한 육성 지론도 설파했다.
그는 "다들 스카우트가 선수를 잘못 뽑았다고 얘기하는데 내가 볼 땐 코치들이 선수들을 키워내지 못했다.
좋은 지도자를 데려올 생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차 단장은 3년 임기의 LG 단장으로 부임해 매달 코치들의 회의를 주재했다.
코치가 어떤 것을 지도했는지, 어떤 결과를 냈는지, 선수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등을 발표하라고 코치들에게 주문했다.
공부하는 지도자, 원활한 의사소통으로 피드백을 선수와 주고받는 코치를 육성하는 게 주된 목표였다.
5년째 매달 열리는 코치 회의에는 김인석 LG 스포츠 대표 이사도 배석해 날카로운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장면을 지켜본다.
코치들의 입에서 '못 해 먹겠다'는 곡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차 단장은 2년간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다.
코치들의 발표 능력과 선수들에게 다가가는 능력은 크게 개선됐다.
그 결과 홍창기, 문보경, 문성주(이상 타자), 고우석, 정우영, 이정용(이상 투수) 같은 선수가 튀어나와 29년 만의 한풀이 우승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 박용택 말에 충격받고 작성한 5개년 우승 계획
"단장 되자마자 자유계약선수(FA) 협상을 바로 (박)용택이랑 했어요.
바로 물어봤죠. 우리 팀이 왜 이렇게 약한지. 그랬더니 용택이가 '단장님 제발 제 말 좀 믿어주세요.
(선수단) 구성을 잘해주십시오. 구성이 안 됩니다'라는 거예요.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선수, 코치진이 구성돼야 하는데도 18년간 뛴 용택이 눈에 그런 게 부족했나 봐요.
"
2002년 입단해 그해 LG의 마지막 한국시리즈를 뛰고 암흑기를 헤쳐 온 박용택 현 KBS 해설위원의 한 맺힌 절규를 듣고 차 단장은 충격받았다고 했다.
한 달간 고민 후 중장기 대책으로 차 단장은 코치 공부시키기, 3년간 외부 FA 계약 대신 내부 선수 육성, 매년 포스트시즌에 올라가는 팀으로 전력 유지, 5년 내 우승으로 이어지는 5개년 운영 계획을 구단 고위층에 보고했다.
계획은 착실히 실행돼 차 단장 부임 당시 8위였던 LG의 정규리그 순위는 2019·2020년 4위, 2021년 3위, 2022년 2위로 한 계단씩 우상향 그래프를 그린 끝에 올해 정규리그·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으로 열매를 맺었다.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으며 5년 내 우승 목표도 달성했다. ◇ 볼 카운트 0-2에서 3연속 변화구로 마침내 이뤄낸 우승
팀 체질을 바꾼 차 단장은 2021년부터는 볼 카운트 0볼 2스트라이크에서 속구 대신 변화구로 삼진(우승)을 노렸다.
볼은 포스트시즌 탈락, 스트라이크는 가을 야구는 즐겼지만 우승 목표는 이루지 못한 결과 정도쯤 된다.
"포스트시즌에 2년 연속 올랐으니 이제는 우승에 초점을 맞추면서 어떻게 팀을 바꿀 것인가, 외부에도 눈을 돌려가며 구단 운영에 변화를 줬죠."
차 단장은 2021년에 3년 연장 계약을 하고서 전력 보강에 초점을 맞춰 이호준 타격 코치, FA 박해민과 박동원을 영입하며 숙원인 한국시리즈 우승을 향해 속도를 냈다. 올해 1월에는 프랜차이즈 스타인 오지환에게 6년 총액 124억원의 구단 최초 다년 계약을 선물했다.
오지환에게 던진 결정구를 차 단장의 투심 패스트볼로 본다면, 오른손 타자 몸쪽에 제대로 휘어들어 갔다.
오지환은 한국시리즈 2∼4차전에서 추격의 솔로포, 극적인 역전 결승 3점포, 쐐기 3점포를 잇달아 날려 우승의 일등 공신으로 맹활약했다.
차 단장은 "지난해 한국시리즈에 오르지 못해 정말 너무나 아쉬웠다"며 "올해에는 시즌 시작 전 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도(WAR)로 본 예상 승수 수치에서 우리가 1위, kt가 2위, SSG 랜더스가 3위를 차지할 것으로 나와 정규리그 1위는 자신 있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한국시리즈 우승은 장담할 수 없었지만, 2차전에서 터진 박동원의 역전 결승 투런포가 '게임 체인저'였다고 본다.
막힌 혈이 뚫렸다고나 할까.
그 경기에서 졌다면 3차전과 같은 대역전승이 나왔을까요? 2차전 승리로 사실상 끝났다고 봐요.
박동원의 홈런이 모든 걸 다 바꿨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차 단장은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낀 오래된 1994년 우승 반지를 곧 29년 만에 새 반지로 바꾼다.
/연합뉴스
단장 취임 후 코치 역량 강화→유망주 육성으로 '5년 내 우승' 목표 달성 프로야구 LG 트윈스가 13일 무려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 짓던 순간, 차명석 단장은 서울 잠실구장 본부석에서 구광모 구단주(LG 그룹 회장)와 두 팔을 번쩍 들고 환호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시계를 29년 전으로 돌려보면, LG가 구단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던 1994년 10월 23일 데뷔 3년 차 투수 차명석은 인천 숭의야구장(도원야구장) 더그아웃 한쪽에서 동료들과 조용히 우승을 자축했다.
차 단장은 LG 트윈스 구단사에 길이 남을 1994년과 2023년 우승 현장을 똑같이 지켰다.
"조금 창피한 얘기인데 1994년에는 한국시리즈 로스터에 들었지만, 후반기에 팔꿈치를 다쳐 등판하지 못했고, 조용히 우승 순간을 바라보기만 했죠. 그때는 멤버가 워낙 좋아서 언제든 우승할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인지 감격스러운 느낌이 좀 덜했는데 이번엔 다르더라고요.
'아키텍트'(architect·건축가)로 이 선수단을 내가 만들었잖아요.
그 선수들이 마침내 우승을 이루니 더욱 기뻤던 것 같아요. "
LG의 한(恨)을 푼 지금의 선수단을 설계하고 구성한 주인공이라는 뿌듯함이 차 단장의 얼굴에 그대로 쓰여 있었다. 트윈스 선수단에서 LG 신바람 야구의 전성기와 암흑기, 그리고 불굴의 도전기를 차 단장만큼 잘 아는 이는 없다.
기쁨의 축배를 드느라 우승 후 이틀간 즐겁게 취했다던 차 단장은 15일 잠실구장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그간 준비해 둔 이야기보따리를 한 아름 풀어놨다. 현역 때 차 단장은 볼은 느리지만 제구 능력이 좋아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컨트롤의 마법사로 통하는 그레그 매덕스의 이름에서 따온 '차덕스'라는 애칭으로 통했다.
속구와 슬라이더 두 구종에 투심 패스트볼을 곁들여 던졌다.
그런 차 단장이 2019년 LG 단장으로 취임해 2년 연속 던진 공은 변화구가 아닌 느리지만 묵직한 속구였다. ◇ "왜 스카우트 탓을 하나요? 좋은 코치가 없어서죠"
차 단장은 2018년 10월 방송사 해설위원으로 MLB 월드시리즈 현장 중계를 위해 미국행을 준비하던 차에 LG 단장에 선임됐다.
"LG 그룹 관계자께서 밥이나 먹자길래 나갔죠. 나중에 보니 단장 인터뷰였던 것 같은데 그걸 모르고 나갔으니 과감하게 말씀드렸죠. 뎁스(depth·선수층)를 강화하자고 하고선 그런 요인들이 하나도 없는데 뭘 강화한다는 것이냐. 만날 옆집 두산 베어스 야구 부러워하는데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팀을 이끌 건지 고민도 안 하고, 방법도 모르는 것 같다고 신랄하게 말했어요.
"
차 단장은 이 관계자에게 명확한 육성 지론도 설파했다.
그는 "다들 스카우트가 선수를 잘못 뽑았다고 얘기하는데 내가 볼 땐 코치들이 선수들을 키워내지 못했다.
좋은 지도자를 데려올 생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차 단장은 3년 임기의 LG 단장으로 부임해 매달 코치들의 회의를 주재했다.
코치가 어떤 것을 지도했는지, 어떤 결과를 냈는지, 선수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등을 발표하라고 코치들에게 주문했다.
공부하는 지도자, 원활한 의사소통으로 피드백을 선수와 주고받는 코치를 육성하는 게 주된 목표였다.
5년째 매달 열리는 코치 회의에는 김인석 LG 스포츠 대표 이사도 배석해 날카로운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장면을 지켜본다.
코치들의 입에서 '못 해 먹겠다'는 곡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차 단장은 2년간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다.
코치들의 발표 능력과 선수들에게 다가가는 능력은 크게 개선됐다.
그 결과 홍창기, 문보경, 문성주(이상 타자), 고우석, 정우영, 이정용(이상 투수) 같은 선수가 튀어나와 29년 만의 한풀이 우승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 박용택 말에 충격받고 작성한 5개년 우승 계획
"단장 되자마자 자유계약선수(FA) 협상을 바로 (박)용택이랑 했어요.
바로 물어봤죠. 우리 팀이 왜 이렇게 약한지. 그랬더니 용택이가 '단장님 제발 제 말 좀 믿어주세요.
(선수단) 구성을 잘해주십시오. 구성이 안 됩니다'라는 거예요.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선수, 코치진이 구성돼야 하는데도 18년간 뛴 용택이 눈에 그런 게 부족했나 봐요.
"
2002년 입단해 그해 LG의 마지막 한국시리즈를 뛰고 암흑기를 헤쳐 온 박용택 현 KBS 해설위원의 한 맺힌 절규를 듣고 차 단장은 충격받았다고 했다.
한 달간 고민 후 중장기 대책으로 차 단장은 코치 공부시키기, 3년간 외부 FA 계약 대신 내부 선수 육성, 매년 포스트시즌에 올라가는 팀으로 전력 유지, 5년 내 우승으로 이어지는 5개년 운영 계획을 구단 고위층에 보고했다.
계획은 착실히 실행돼 차 단장 부임 당시 8위였던 LG의 정규리그 순위는 2019·2020년 4위, 2021년 3위, 2022년 2위로 한 계단씩 우상향 그래프를 그린 끝에 올해 정규리그·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으로 열매를 맺었다.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으며 5년 내 우승 목표도 달성했다. ◇ 볼 카운트 0-2에서 3연속 변화구로 마침내 이뤄낸 우승
팀 체질을 바꾼 차 단장은 2021년부터는 볼 카운트 0볼 2스트라이크에서 속구 대신 변화구로 삼진(우승)을 노렸다.
볼은 포스트시즌 탈락, 스트라이크는 가을 야구는 즐겼지만 우승 목표는 이루지 못한 결과 정도쯤 된다.
"포스트시즌에 2년 연속 올랐으니 이제는 우승에 초점을 맞추면서 어떻게 팀을 바꿀 것인가, 외부에도 눈을 돌려가며 구단 운영에 변화를 줬죠."
차 단장은 2021년에 3년 연장 계약을 하고서 전력 보강에 초점을 맞춰 이호준 타격 코치, FA 박해민과 박동원을 영입하며 숙원인 한국시리즈 우승을 향해 속도를 냈다. 올해 1월에는 프랜차이즈 스타인 오지환에게 6년 총액 124억원의 구단 최초 다년 계약을 선물했다.
오지환에게 던진 결정구를 차 단장의 투심 패스트볼로 본다면, 오른손 타자 몸쪽에 제대로 휘어들어 갔다.
오지환은 한국시리즈 2∼4차전에서 추격의 솔로포, 극적인 역전 결승 3점포, 쐐기 3점포를 잇달아 날려 우승의 일등 공신으로 맹활약했다.
차 단장은 "지난해 한국시리즈에 오르지 못해 정말 너무나 아쉬웠다"며 "올해에는 시즌 시작 전 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도(WAR)로 본 예상 승수 수치에서 우리가 1위, kt가 2위, SSG 랜더스가 3위를 차지할 것으로 나와 정규리그 1위는 자신 있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한국시리즈 우승은 장담할 수 없었지만, 2차전에서 터진 박동원의 역전 결승 투런포가 '게임 체인저'였다고 본다.
막힌 혈이 뚫렸다고나 할까.
그 경기에서 졌다면 3차전과 같은 대역전승이 나왔을까요? 2차전 승리로 사실상 끝났다고 봐요.
박동원의 홈런이 모든 걸 다 바꿨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차 단장은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낀 오래된 1994년 우승 반지를 곧 29년 만에 새 반지로 바꾼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