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뚱이가 필요없는 시대에 日 여성 작가 7명이 빚어낸 '몸'

가나아트 '바디, 러브, 젠더'

日 모리미술관 큐레이터 공동기획
"신체성이 사라지는 AI 시대 속
몸의 중요성을 조명하고 싶었다"
모리 유코, 'Decomposition'(2022) /가나아트 제공
'신체성이 소멸되는 시대.'

일본의 대표 미술관 중 하나인 모리미술관의 큐레이터 츠바키 레이코는 우리가 사는 시대를 이렇게 진단한다. 그럴 만하다. 기술의 발달로 서로 직접 마주하지 않고도 일은 물론, 연애까지 하는 시대가 됐으니까.예술도 예외는 아니다. 예술가는 아이디어만 내고 실제 작품은 스튜디오 직원들이 만드는 '개념미술'은 이미 흔해졌고, 컴퓨터와 인공지능(AI)의 힘을 빌려 만드는 작품도 늘고 있다.
요코야마 나미, 'Shape of Your Words'(2023) /가나아트 제공
레이코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기획한 전시 주제를 '신체성'으로 정한 건 그래서다. 전시 제목은 '바디, 러브, 젠더'. 국내 대표 갤러리 가나아트와 함께 공동 기획한 전시다. 최근 전시 개막식에서 만난 레이코는 "인간의 신체성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신체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장에 있는 100점의 작품은 지금 일본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성 작가 7명이 직접 손으로 만들어낸 것들이다. 말 그대로 '신체성'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네온사인 화가' 요코야마 나미가 대표적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LOVE'를 손으로 써보라고 한 뒤, 그 손글씨를 네온사인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걸 다시 자신의 손으로 그려낸다. 나미는 "같은 단어라도 저마다 손글씨가 다른 것처럼,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유일한 사랑의 의미를 나타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가와우치 리카코, 'Grapefruit'(2023) /가나아트 제공
사람의 신체를 과일에 빗댄 신선한 작품들도 있다. '우웅' 하는 소리를 내는 사과, 바나나, 파인애플 설치작품이 그렇다. 파리 퐁피두센터, 홍콩 엠플러스 등 유수 기관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모리 유코의 '디컴포지션(Decomposition)'이다. 과일에 전극을 꽂고, 그 안에 있는 수분을 신호기, 앰프, 스피커를 통해 소리로 전환했다.

소리는 과일의 수분이 빠져나갈수록 점차 바뀐다.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신체의 수분 비율이 점점 낮아지는 것에서 착안해 이를 청각적으로 보여줬다. 그 옆에 놓인 가와우치 리카코의 작품도 사람의 몸을 자몽의 단면과 겹쳐 그렸다. 먹고 먹힘으로써 생명을 유지해주는 인간과 음식의 관계를 표현했다.
쇼지 아사미, '23810'(2023) /가나아트 제공
어렸을 적 병을 앓았던 쇼지 아사미는 삶과 죽음을 한 작품 안에 담아냈다. 그는 "빛과 어둠,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상반된 가치를 한 폭에 그릴 수 있다는 게 회화의 매력이고, 이는 내 신체를 기점으로 그려진다"고 말한다. 예컨대 그림 속에서 손이 뻗어나가는 장면은 실제로 그가 물감과 천을 사용해 팔을 쭉 뻗어 그린 것이다. 자신의 움직임을 그림 속 흔적으로 남긴 것이다.
가시키 토모코 'Come With Me'(2019) /가나아트 제공
인간과 배경 간 경계를 흐리게 해 '풍경에 녹아내린 인물'을 그리는 가시키 토모코, 딸이 직접 입었던 옷 등 물건에 담긴 사람의 추억을 전시하는 아오키 료코,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별을 구분을 무너뜨린 무라세 교코 등 색다른 아이디어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아오키 료코, 'Heavy Rotation Item'(2020) /가나아트 제공
전시는 12월 10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