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문항 없었지만 '더 어려웠던' 수능…사교육 부담 줄어들까

EBS강사 "난도 높지만 '풀이 기술' 필요없는 문항, 향후 학습기조 제시"
'킬러문항' 정의 모호…"새로운 고난도 문항이 新킬러" 지적도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킬러문항' 없이도 주요 영역에서 변별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면서 '수능의 변화'가 '사교육비 경감'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올해 수능 출제위원장인 정문성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16일 수능 시작 직후 브리핑에서 "교육부의 사교육 경감 대책에 따라 소위 '킬러문항'을 배제했으며,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는 내용만으로도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출제했다"고 밝혔다.

킬러문항을 뺐지만 N수생 증가 추세를 고려해 시험이 적절한 난도를 유지하도록 했다고 정 위원장은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수능 직후 영역별 출제경향 해설에 나선 EBS 현장교사단은 교육과정 밖에서 출제한 것으로 보이는 킬러문항은 없는 대신, 고난도 문항이 상당수 있어 최상위권 학생 변별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EBS 국어강사인 서울 덕수고 윤혜정 교사는 국어영역 고난도 문항에 대해 "낯선 개념이라도 지문에 개념이 충분히 설명돼 있어 특별한 전문지식 없이도 지문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라며 "전문용어, 과도하게 추상적인 용어도 사용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학원가에서도 킬러문항 배제를 위한 '교육부의 고민'이 엿보이는 출제경향이었다고 평가했고, 수험생들도 예상과 달리 상당히 난도 있는 시험이었다고는 의견이 많았다.

이 때문에 교육계에서는 이번 수능으로 문제풀이 기술을 가르치는 사교육의 영향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 EBS 수학강사인 인천 하늘고 심주석 교사는 가장 고난도로 평가된 수학 22번 문항에 대해 "문제를 빠르게 해석할 수 있고, 문제에 나온 조건이 심플(간단)하다"라며 "조건을 만족시키는 삼차함수의 그래프를 많이 그려보게 한 문제인데 풀이과정이 상당히 긴 작년 킬러문항과 달리 계산량이 많이 줄어든 특징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단답형(22번) 정답률을 9월 모의평가보다 더 강화했지만 교육과정에 위배되거나 '사교육 스킬'이 필요한 수준까지 가지 않았다"며 "수학 22번은 수학을 공부할 때 이런 기조로 연습하면 된다는 학습 시그널을 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학교 수업이 변하지 않을 경우 수능의 변화가 또 다른 형태의 사교육을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교육과정 내에서 문제가 출제되는 것과, 학생들이 학교 수업만으로 충분히 수능 고난도 문항에 대비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킬러문항'의 정의 자체가 모호하고, 교육당국이 지금까지도 모든 수능 문제는 교육과정 안에서 출제했다고 주장해 온 점 또한 학생·학부모가 우려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다.

입시업계의 한 관계자는 "(교육부는) 여러개의 핵심 개념을 한꺼번에 적용하거나 연산이 지나치게 복잡한 문제도 '킬러문항'이라고 규정했는데, 사실 기준이 상당히 모호하다"라며 "변화의 방향을 정확히 짚고 그에 맞게 준비할 수 있도록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수험생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서울지역 수험생의 학부모는 "킬러문항이 나오기 전보다 더 어려워졌다는데, 이전이 예측 가능한 고난도 문제였다면 이번엔 예측이 어려운 고난도 문항이라는 차이점밖에 없는 것 같다"며 "학교에서 대입을 제대로 준비할 수 없다면 결국 아이들은 학원에 기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수능을 본 한 수험생은 "킬러문항이 없어졌다고 해서 사교육이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며 "이번 시험에서도 까다롭고 어려운 문제가 많았는데, 이제 그러한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 알기 위해 사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현직 고등학교 교사는 "이번 수능은 킬러문항이 없어진 대신 '준킬러문항'이 많았던 것이 특징"이라며 "이제 준킬러문항에 대비하는 사교육 시장이 형성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