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사무관'으로 물가 잡는다?…생산 감소·꼼수 인상 우려도
입력
수정
지면A29
유승호의 경제야 놀자냉동만두가 전보다 가벼워졌다. 만두를 몇 개 뺀 모양이다. 캔맥주 용량도 줄었다. 가격은 그대로인데 양이 줄어 실질적으로는 가격이 오른 것과 같은 ‘슈링크플레이션’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직한 판매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추 부총리 말처럼 악덕 기업들의 부도덕한 행위일까. 하지만 품목별 담당 공무원까지 정해 놓은 정부의 물가 단속이 슈링크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데는 그럴 만한 경제학적 이유가 있다.
급격한 인플레 막겠다며
정부 '통제의 칼' 꺼내지만
원가부담에 생산 포기 발생
경제 전체 '후생' 줄어들어
눈속임으로 제품 용량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부작용 발생
영수 영호 광수 상철의 소금빵
우리나라에 소금빵 생산자가 네 명뿐이고, 소금빵의 시장 균형 가격은 3000원이라고 가정하자. 생산자의 이름은 영수 영호 광수 상철이다. 네 사람이 소금빵 한 개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총비용은 제각각이다. 영수는 1000원, 영호는 1500원, 광수는 2000원, 상철은 2500원이 든다.어느 날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인도에 폭우가 내렸다. 밀가루 설탕 등 재료 가격이 급등해 소금빵 생산 비용이 500원씩 높아졌다. 영수 영호 광수 상철은 각각 소금빵 가격을 3500원으로 올렸다. 그러자 소비자들이 “소금빵이 너무 비싸다”고 아우성을 쳤다. 정부는 소금빵 가격을 올리는 사람은 세무조사를 하겠다고 했다. ‘소금빵 사무관’도 지정했다.
정부의 으름장에 생산자들은 슬그머니 가격을 3000원으로 내렸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상철이다. 소금빵 생산비용이 3000원으로 높아진 상철은 3000원에 팔아서는 이윤을 낼 수 없다. 고민 끝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소금빵을 아주 살짝 작게 만드는 것이다. 상철네 가게에서 슈링크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영숙 정숙 순자 옥순의 속마음
정부가 나서서 기업이 제품 가격을 못 올리게 막고 슈링크플레이션 같은 꼼수까지 단속하면 소비자에게는 좋은 일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정말 그런지 이제 소비자 입장에서 살펴보자.소금빵을 좋아하는 네 사람이 있다. 영숙 정숙 순자 옥순이다. 네 사람이 소금빵을 좋아하는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 영숙이 가장 좋아한다. 그는 소금빵 한 개에 4500원까지 낼 의사가 있다. 정숙은 4000원, 순자는 3500원, 옥순은 3000원이면 소금빵을 사 먹을 생각이다. 이처럼 어떤 재화를 구입하기 위해 지불하고자 하는 최고 금액을 지불 용의라고 한다.
3000원이었던 소금빵이 3500원으로 오르면 옥순은 소금빵을 사 먹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물가 단속 덕분에 소금빵이 다시 3000원으로 내려가면 옥순에게 특히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앞서 언급한 소금빵 생산자 중 상철이 소금빵 크기를 줄였다. 이런 행위까지 못하게 막는다면 상철은 소금빵 사업을 접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영숙 정숙 순자 옥순 중 한 사람은 더 이상 소금빵을 먹을 수 없게 된다.
가격 통제하면 경제 전체 후생 감소
이상의 사례는 소비자 잉여와 생산자 잉여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소비자 잉여는 소비자의 지불 용의에서 실제 지불한 가격을 뺀 금액이다. 지불 용의가 4500원인 영숙이 소금빵을 3000원에 사 먹으면 소비자 잉여는 1500원이다. 생산자 잉여는 생산자가 받은 가격에서 비용을 뺀 금액이다. 소금빵 한 개를 1000원에 만드는 영수가 3000원에 팔면 생산자 잉여는 2000원이다.수요·공급 곡선에서 소비자 잉여는 수요 곡선의 아랫부분 중 가격 수준 윗부분의 면적이다. 생산자 잉여는 공급 곡선의 윗부분 중 가격 수준 아랫부분의 면적이다. 그림 1과 그림 2를 비교해 보면 정부의 가격 통제로 소비자 잉여는 삼각형 ABG에서 사각형 ACFE로 커지고, 생산자 잉여는 삼각형 BDG에서 삼각형 CDF로 작아진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 잉여와 생산자 잉여를 합친 총잉여는 삼각형 EFG만큼 줄었다. 가격을 내리면 한계 생산자가 시장을 떠나고 그로 인해 소금빵을 먹을 수 없는 소비자가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의 가격 통제는 공급 부족을 불러와 경제 전체의 후생을 떨어뜨리게 된다. 명목상 가격을 묶어 놓는 데는 성공할지 몰라도 참치캔 크기를 줄이고 김 한 장을 빼는 슈링크플레이션이 나타난다. 고대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부터 ‘MB식 물가 관리’(이명박 정부 물가 대책)까지 동서고금에 걸쳐 반복된 일이다.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