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트럼프' 밀레이…중앙은행 없애고 달러화 도입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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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부 자본주의' 실험 시작19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자칭 ‘무정부주의적 자본주의자’ 하비에르 밀레이가 당선되며 아르헨티나가 정치·경제적 대격변을 겪을 전망이다. 표심을 얻기 위한 퍼주기식 경제정책들로 국고를 바닥낸 페론주의 정권에 반기를 든 밀레이는 경제난에 지친 청년 유권자들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국가 통화인 페소를 달러화로 교체하는 등 급진적인 선거 공약들을 단기간에 실현하긴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공공지출 15% 삭감·세금 폐지 등
반페론주의로 대격변 예고했지만
외환보유액 바닥에 부작용 우려
비현실적 공약 많고 보좌진 없어
단기간에 성과내놓기 어려울 듯
아르헨티나는 자원 부국이다. 셰일가스와 리튬 매장량이 각각 세계 2, 3위인 데다 밀, 콩, 옥수수 등 주요 식량 수출국이다. 그러나 외환보유액은 바닥을 드러냈고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4.9% 감소했다. 전체 인구 다섯 명 중 두 명은 빈곤층에 속한다.
많은 전문가는 경제난의 주원인으로 페론주의를 꼽는다. 페론주의는 후안 페론 전 대통령을 계승하는 정치 이념으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을 표방한다.
재정 적자가 심화하자 정부가 중앙은행을 통해 페소를 대량으로 찍어냈고 통화 가치는 폭락했다. 페소 유동성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네 배 커졌다. 아르헨티나 암시장에서 유통되는 페소 가치는 1년 전보다 약 90% 떨어졌다. 그러자 공산품 수입 비중이 높은 아르헨티나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지난 2월부터 세 자릿수로 뛰어올랐다. 블룸버그는 아르헨티나의 올해 CPI 상승률이 128%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고물가를 잡기 위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133%까지 올리며 경제는 역성장하기 시작했다.정부가 무상복지에 국고를 쏟아부어 국가와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가 위축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르헨티나 민간 부문의 일자리는 10년간 거의 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반페론주의’를 표방한 밀레이는 ‘작은 정부’를 넘어선 무정부 콘셉트의 공약을 내놓으며 정권 교체를 원하는 민심을 사로잡았다. 그는 공공지출을 15% 감축하고, 중앙은행을 폐지하고, 대부분의 세금을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페소는 쓰레기”라며 법정 통화를 달러화로 채택하겠다고도 밝혔다.그러나 전문가들은 밀레이의 공약들이 빠르게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달러 품귀 현상이 빚어진 아르헨티나에서 당장 법정 통화를 달러로 바꾸기가 쉽지 않아서다. 달러화가 법정 통화로 채택되면 페소 가치가 폭락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블룸버그 산하 경제연구소 블룸버그이코노믹스의 아드리아나 두피타 이코노미스트는 “페소를 달러화로 대체하는 공약에 대해 밀레이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외환보유액이 바닥난 만큼 단기간에 실현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고 평가했다. 미국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의 다니엘 커너 남미 국장은 “밀레이는 팀(보좌진)이 없고 공약 자체의 실현 가능성도 낮다”며 “정권 초기부터 조직적인 반대에 부딪힐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