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이 떠받드는 인플루언서…기관도 기업도 눈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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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 인플루언서 명암개인투자자 정의정 씨는 최근 ‘공매도 전격 금지’ 조치 관련 논의에서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만큼이나 이름이 자주 오르내린다. 회원 수 5만6000명 규모 네이버 카페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를 운영하면서 몇 년 전부터 공매도 반대 의견 여론을 집결해 왔다. SNS를 통해 청원을 홍보하고, 현장 시위와 언론 인터뷰 등에 적극 나서 의견을 개진했다. 지난달 정치권에서 공매도 일시 중단 압박이 거세지고 이달 들어 금융당국이 이를 받아들이게 된 데는 정씨가 운영하는 카페가 큰 몫을 했다는 평가가 많다.
개미 영웅? 가짜뉴스 확성기?
투자의견 다양화 등 긍정적이나
공매도 중단 정책에 영향 미치고
상장기업·증권사와 갈등 빚기도
박순혁 vs 한미반도체 '거품논쟁'
잘못된 사실 퍼나르는 부작용도
정책 여론 쥐락펴락…‘개미들의 수장’
최근 증권투자업계에선 정씨처럼 유튜브와 인터넷 카페 등에서 많은 추종자를 보유한 ‘핀플루언서’(파이낸셜 인플루언서)가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다양한 투자 의견을 가감없이 제시하고 콘텐츠 소비자들과 양방향 소통에 적극 나서면서다. 코로나19 이후 작년까지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가 급증하면서 이들의 세는 한층 커졌다. 전문 용어만 나열하거나 ‘매수 의견 일색’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증권사 리포트의 대안 역할로도 인기를 쌓았다.요즘 들어 핀플루언서들은 한 단계 더 진화했다. 단순히 특정 종목·분야 지식을 나누는 단계를 넘어섰다. 추종자 등 세력을 모아 증시 제도 개편에도 개인투자자 의견을 반영한다.
금융감독당국도 핀플루언서의 동향을 주시하는 모양새다. 금융감독원은 이달 들어 상장지수펀드(ETF) 유동성 공급자 역할에 대한 6개 증권사 현장 점검에 들어갔다. 정례 점검도, 내부 제보나 외부 단서를 잡아 벌이는 점검도 아니다. ‘여의도슈퍼개미’ 등 구독자 수가 수만 명 이상인 일부 유튜브 채널에서 ‘유동성 공급자가 불법 공매도를 일삼고 있다’는 미확인 정보가 돌자 실태를 확인해 오해를 풀겠다는 취지다.입김이 커진 핀플루언서와 기업 간 갈등도 빚어지고 있다. 온라인에서 ‘밧데리아저씨’로 알려진 박순혁 전 금양 이사 사례가 대표적이다. 박 전 이사의 팬카페 ‘박지모’(박순혁 지키는 모임)는 회원 수가 1만6000여 명에 달한다.
반도체 후공정 장비기업 한미반도체는 최근 박 전 이사를 명예훼손과 모욕 등 혐의로 고소했다. 박 전 이사가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한미반도체에 대해 ‘거품주’라며 ‘금감원과 한국거래소 등은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한미반도체는 박 전 이사가 반도체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채 업황 등을 고려하지 않고 사실과 전혀 다른 주장을 했다고 보고 있다.
증권사들도 핀플루언서를 의식하고 있다. 이들의 의견에 따라 개인투자자가 증권사 옮기기 운동, 금감원 ‘민원 폭탄’ 등에 나서고 있어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구독자가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인 핀플루언서들이 ‘이 증권사가 특정 세력과 결탁한 것 같다’고 지목하면 곧바로 항의 전화와 메일이 빗발친다”고 했다.
“전부 맞는 것 아냐…옥석 잘 가려야”
핀플루언서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구독자가 수만 명인 일부 핀플루언서 유튜브 채널은 전화, 연락처 등을 공개해놓은 채 사실상 ‘리딩방 영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규정에 따르면 핀플루언서에 대한 윤리 책임 조항이나 법적 제재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투자 실패 사례가 나와도 투자를 강요한 적이 없다며 발뺌하면 그만이다. 전문가들은 핀플루언서의 의견을 무작정 믿는 대신 시청자 각자가 사실 검증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올 들어선 영향력을 이용해 시장 교란행위를 한 핀플루언서 적발 사례도 나오고 있다. 구독자 50만 명의 주식 유튜버였던 개인투자자 김정환 씨는 최근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특정 종목을 몰래 사놓은 뒤 영상에서 홍보하는 식으로 주가를 띄워 총 58억원 규모의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선한결/김세민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