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존엄 중 선택? 모르겠다, 그게 인생"… 조정래 신간 '황금종이'

조정래 작가가 새 장편소설 <황금종이> 집필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해냄출판사 제공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 욕망을 '오욕'이라 합니다. 첫 번째가 재물욕이고 그 다음이 성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이지요. 왜 국어사전은 재물욕을 첫 번째로 썼을까요."

조정래 작가는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황금종이>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를 갖고 "돈이 인간을 어떻게 지배하는가, 인간은 왜 돈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가 하는 문제를 소설로 쓰려 했다"고 말했다. 조 작가는 1970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대하소설 3부작을 비롯해 <풀꽃도 꽃이다> <정글만리> 등을 발표했다. 이번 작품은 <천년의 질문> 이후 4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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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종이>는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집중 조명했다. 돈의 위력과 인간의 존엄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살아가야 하는가를 되묻는다. 운동권 출신 변호사 이태하를 중심으로 여러 의뢰인들의 사연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되며 "돈은 인간의 실존이자 동시에 부조리"라고 말하는 작품이다. 그 과정에서 검찰과 불법상속 등 세태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동체를 형성해야 하고, 물물교환하는 시대를 지나 돈을 만들어냈습니다. 돈의 역사가 대략 5000~7000년이 됐고 지폐가 나온 게 대략 3000년이 됐습니다. 우리 삶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이고, 삶의 갈등과 법정 소송의 80~90%가 돈 때문에 야기되지요." '돈'은 저명한 작가인 그에게도 수십년을 고민했던 소재였다. 조 작가는 "돈의 문제는 가난했던 대학생 시절부터 계속 생각했다"며 "돈이 삶을 괴롭힐 때마다 '왜 이렇지?'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지?' 골백번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과 돈의 힘을 조화시킬 지혜는 그에게도 숙제다. 때문에 조 작가는 소설을 이태하 변호사가 돈을 둘러싸고 갈등하는 장면에서 마쳤다. 명쾌한 정답이나 결론은 없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고 독자에게 질문한 셈이다. 그 답에 대해서는 자신도 "모르겠다"며 "그게 인생"이라고 털어놨다.

주인공을 운동권 출신으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 묻자 "현실 속 운동권들이 민주화운동 시절 순수성을 지켰다면 하는 게 저의 정치적 기대지만, 여러 방식으로 변질돼 그들의 존재가 희미해져버렸다"고 말했다. 소설과 다른 현실 속 운동권의 모습이 돈의 속성과 인간의 비애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조정래 작가가 새 장편소설 <황금종이> 집필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해냄출판사 제공
소설을 통해 엄혹한 현실을 그렸지만 조 작가는 "저는 인간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긍정한다"고 말했다. "과학 발전, 예술 분야까지 얼마나 다양하게 인간이 창조, 발명해왔느냐"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만큼만 바라고 주어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자족'이 곧 성공한 삶"이라고 강조했다.

여든이 넘은 그는 여전히 하루 평균 원고지 15~20매를 집필한다. 휴대폰조차 쓰지 않는 그는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아 아직도 손글씨로 소설을 쓴다.

"<태백산맥>을 쓸 때 매일매일 하루에 원고지 35매씩을 썼어요.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하루 5매씩만 쓰자고 생각했는데, 점점 속도가 붙어서 15~20매씩 쓰게 됐습니다. 결국 계획했던 것보다 3개월 앞서 소설을 완성했습니다." 조 작가는 <황금종이>를 "작품활동 제3기를 여는 작품"이라고 스스로 정의했다.

그는 "1기인 전반기 작품들은 초창기 단편과 중편부터 <아리랑> 이전 썼던 작품들, 2기인 중반기는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을 포함한다"며 "이번 작품과 다음 작품까지를 3기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1, 2기는 민족 수난에 대해 썼다면 3기는 인간의 실존과 현실, 인간의 본성과 욕구 같은 것들을 탐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조 작가는 다음 작품이 작가로서 마지막 작품이 될 거라 예고했다. "제가 올해 81살입니다. 인생 정리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제 인생 마지막 작품으로 생각하는 게 우리 영혼의 문제와 내세, 불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그 작품을 쓰면서 제 문학 인생을 마칠까 하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