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등급 불명예' 간신히 피한 이탈리아 국채값 상승 랠리
입력
수정
10년물 금리 두 달 만에 최저신용등급 강등 위기를 면한 이탈리아의 국채 가격이 상승했다. 경기 부양을 위한 확장적 재정 정책을 고수해 온 조르자 멜로니 정부는 추진력을 얻게 될 전망이다.
獨 국채와의 스프레드도 하락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이탈리아 국채 10년물 금리는 20일(현지시간) 0.04%포인트 하락한 연 4.264%를 나타냈다. 지난 9월 초 이후 약 두 달 만에 최저치다.독일 국채 10년물과의 금리 스프레드는 8월 이후 최저 수준인 167bp(1bp=0.01%포인트)까지 떨어졌다. 통상 유럽 지역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독일 국채와의 격차는 해당 국가의 상대적 신용도를 판단하는 지표로 간주된다. 낮을수록 그 국가의 상환 능력이 높다는 의미다.
블룸버그통신은 독일과 이탈리아 국채 간 스프레드가 160bp까지 추가 하락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고 전했다. 씨티그룹도 “12월까지 안정적인 수준에서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수치는 지난달 이탈리아 정부가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 목표치를 기존 4.5%에서 5.3%로 상향하면서 200bp 이상으로 치솟았던 바 있다.최근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탈리아의 국가 신용등급을 ‘Baa3’으로 유지하는 동시에 등급 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상향 조정했다. 무디스는 전망 수정 배경에 대해 “이탈리아의 경제력과 은행 부문의 건전성, 정부부채 상황 등에 대한 전망이 안정화했다”고 설명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로부터 제공받은 2000억유로(약 283조원) 규모의 코로나19 회복 기금으로 중단기 성장이 보장된 상태라는 판단이다.유럽중앙은행(ECB)이 이르면 내년 봄부터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기대감이 퍼지고 있는 상황도 이탈리아 경제 전망에 긍정적 요인이다. 이탈리아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9월 5.6%(전년 동기 대비)에서 10월 1.9%로 급격히 둔화했다. 이는 2021년 7월 이후 최저치다.
애초 시장에선 무디스가 이탈리아의 신용등급을 정크(junk·투자부적격) 등급으로 낮출 거란 관측이 나왔었다. Baa3는 투자 적격 등급 중에서도 가장 낮은 단계다. 무디스는 지난 2018년 재정 적자 규모를 문제 삼아 이탈리아의 신용등급을 Baa2에서 Baa3로 강등했다. 지난해 8월에는 연립정부가 붕괴되고 마리오 드라기 전 ECB 전 총재가 총리직을 내려놓은 여파를 반영해 신용등급 전망까지 한 단계 낮췄다.
드라기 전 총재의 후임인 멜로니 총리가 취임 1년을 막 넘긴 시점에서 무디스의 결정은 희소식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우파 성향의 멜로니 총리는 재정 준칙 준수를 요구하고 있는 EU에 반기를 드는 발언을 자제하고 신중한 재정 정책을 운용하는 등 글로벌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집중해 왔다.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의 무즈타바 라만 매니징디렉터는 “정치와 경제, 모든 측면에서 멜로니 총리에게 숨 쉴 공간을 만들어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틱시스의 테오필 레그랜드 신용등급 전략가는 “무디스의 결정은 (금리) 스프레드의 판도를 바꾸는(game changer) 것”이라며 “외국인 자금의 (이탈리아로의) 신규 유입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등급 강등 우려는 털어냈지만, 이탈리아의 부채 수준에 대한 경계심은 지속될 거란 전망이다. 멜로니 정부가 설정한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5.3%)은 EU가 준칙으로 요구하고 있는 3%를 웃돈다. 이탈리아 정부는 2025년 이 수치가 3.6%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EU는 이보다 높은 4.3%를 제시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이미 GDP 대비 140%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EU 회원국 중에서는 그리스 다음으로 높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탈리아 정부는 지출을 공격적으로 늘렸다.그러나 고금리 환경에 눌려 있는 이탈리아 경제는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올해 2분기 0.4% 감소한 이탈리아 GDP는 3분기 0.0%에서 머물렀다. 기술적 경기 침체(2개 분기 연속 GDP 감소)를 간신히 피해 갔지만, 시장 예상(0.1% 증가)에는 못 미쳤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