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1.3억씩 빚 갚아야" 초유의 사태…벼랑 끝 몰린 美 [글로벌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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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합중국' 美, 국채 선순환 깨져 휘청미국 정부가 '부채의 늪'에 빠졌다. 쓸 돈은 많은데 들어오는 수입이 줄면서 부채규모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최대 돈줄이던 미국 국채의 위상까지 떨어지면서 자금조달의 어려움도 겹쳤다.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국채와 달러의 힘으로 지탱하던 미국 경제가 지속가능하기 쉽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美정부부채 33조달러…10년만에 2배
금리 상승으로 국채 이자비용, 국방비 추월
中·日도 美국채투매…묻지마 국채발행도 한계
부채한도 증액도 의회에서 번번이 제동
미 정부 "재정적으로 여전히 지속 가능"
10년 만에 갑절된 미 정부 부채
미국의 재정적자는 급증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9월로 끝난 2023 회계연도에만 1조7000억달러의 빚을 졌다. 팬데믹 시기인 2020년(3조1300억달러)과 2021년에 이어 역대 세번째 규모다.코로나19 같은 특수상황을 제외하면 그동안 미국의 연간 평균 재정적자 규모는 5000억달러 수준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 대응이 끝났는데 미국의 재정적자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대규모 적자가 쌓이면 자연스레 미국의 전체 부채 규모도 눈덩이처럼 커진다. 미국의 국가부채 규모는 33조달러를 넘어섰다. 10년 만에 두배가 됐다.미국이 세계 1위 경제대국인 만큼 빚 규모로도 세계 최대다. 중국과 독일, 일본, 인도, 영국 다른 5대 경제대국의 부채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미국의 전체 국가부채를 미국인 1인당 빚으로 환산하면 10만달러다. 가구당 부채 규모로 26만달러에 달한다. 가구별로 매달 1000달러씩 갹출하면 빚을 갚는데 21년이 걸린다.
거꾸로 간 미국 확장재정
미국 정부의 부채가 늘어난 이유는 간단하다. 수입은 줄고 있는데 지출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소득세나 법인세가 감소했다. 극단적인 날씨로 인해 세수 징수도 늦어졌다. 여기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한 보조금도 세수 감소 요인이 됐다. 해당 보조금은 세액공제 형태로 지급돼 그만큼 걷히는 세금이 줄게 된다.세수가 줄면 비용을 절감해야 했지만 미국 정부의 씀씀이는 더 늘어났다. 우선 고령화로 매년 지급할 복지 및 의료비용이 급증하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시작한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미 연방대법원이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미국의 올해 재정적자는 작년의 두 배로 증가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국방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까지 겹치면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의회에 우크라이나 600억달러, 이스라엘 140억달러 등 총 1000억달러 규모의 긴급 안보 예산을 요청했다.
매수세 실종된 미 국채
고금리에 따른 이자 비용도 증가했다. 재무부에 따르면 부채에 대한 순이자가 지난해 4750억달러에서 올해 6590억달러로 증가했다. 올해 9월 말까지, 미 재무부가 국채에 대한 이자로 지급한 금액(8793억 달러)이 국방비(7759억 달러)를 넘어섰다.재정감시기관인 피터슨재단은 향후 10년간 예상되는 미국 정부의 순이자 비용만 10조6000억달러로 예상했다. 지난 20년간 미국이 이자로 지출한 비용의 두 배 이상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앞으로 30년 안에 부채에 대한 이자 비용이 미국 정부의 최대 지출 항목"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자 비용이 늘어나는 건 표면적으로 국채금리 상승 때문이다. 7월까지 연 3%대였던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달 연 5%를 넘어섰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추가 긴축 우려로 인한 발작이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미 국채 매수세가 사라진 게 핵심 요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목하고 있다. 원래 미국 국채의 자금줄 역할을 한 건 Fed와 중국, 일본 등이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이 국가들은 모두 국채 매도세에 합류했다. 미 국채 보유량 1위인 Fed는 지난해 4월부터 양적긴축(QT)을 시작했다. 만기가 된 국채에 재투자하지 않는 형태다. 그해 9월부터 매달 최대 600억달러 한도로 미 국채 보유량을 줄이고 있다.
국가별로는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이 미 국채를 팔고 있다.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이 국가들은 미 국채를 매개로 미국과 공생관계에 있었다.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무역흑자를 거둔 뒤 그 이익을 미국 국채를 비롯한 미국 자산 시장에 투자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미·중 갈등과 금리 차 축소 등 다양한 이유로 이런 재투자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도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난 10일 미국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무디스는 "미국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위험이 커졌으며 미국의 신용 강점이 이를 완전히 상쇄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3대 국제 신평사 중 유일하게 미국 신용등급을 최고로 유지하던 무디스가 미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것은 그만큼 미 부채 문제가 심각하다는 의미다. 지난 8월 국제신평사 피치도 미국의 향후 재정 악화와 국가채무 부담 증가 등을 이유로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하향 조정했다.
"미국 감당할 수준…좋은 빚도 있다"
전문가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한 행사에서 "미국의 재정 적자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간체이스 회장도 같은달 24일 "재정지출이 예년보다 훨씬 많은데 중앙은행과 정부가 모든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전지전능함을 가졌다고 느끼는 정서가 있다"면서 "내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했다.
억만장자 헤지펀드 투자자인 스탠리 드러켄밀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의 오판이 재정적자를 키웠다고 정부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코로나19로 인해 금리가 거의 제로(0)에 가까웠을 때 미 재무부가 장기 국채를 발행하지 않아 이자비용을 줄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며 "당시 옐런 장관이 근시안으로 2년 만기 국채를 대규모 발행했는데 재무부 역사상 가장 큰 실수"라고 비판했다. 반면 미국 정부는 아직 부채가 감당 가능하다며 시장 불안을 잠재우려 하고 있다.고금리로 인해 이자 비용이 급격히 불어났지만 미국 경제가 개선되면 메울 수 있다는 입장이다.
옐런 장관은 "재정적으로 (미국은) 지속 가능한 예산을 갖추고 있다"며 "재정 적자 확대에 따른 이자 비용은 계속 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루이스 샤이너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세수가 비정상적으로 감소하고 지출이 갑자기 증가해 올해 재정적자가 증가했다"며 "올해 미국 성장률이 올라가고 높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미국 연방정부의 채무 지속가능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도 지난 5월 NYT 칼럼을 통해 "개인 부채와 정부부채는 엄연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생애주기 이론에 따라 개인은 노년기에 돈을 갚을 능력이 떨어지지만 정부는 그렇지 않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정부는 빚을 다 갚지 않고 국채 만기를 연장하면 되기 때문에 부채가 늘어나는 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크루그먼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또 2차 대전 후 미국이 부채를 갚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미국이 경제성장을 통해 부채 규모를 줄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미국 부채 문제를 낙관한 크루그먼 교수 조차도 최근엔 "현재 경제 상황에서 미국도 부채 규모를 줄이는 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특단의 결정 순간 도달"
부채문제를 푸는 해법은 명확하다. 우선 세수를 늘리면 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예산감축보다 증세 쪽에 기울어 있다. 서머스 전 장관은 "과거 정권처럼 고통스러운 재정 지출 삭감 조치를 취하기 전에 세수부터 확보해야 한다"며 "전방위적 세금 인상보다는 미납된 세금을 제대로 걷는 게 더 낫다"고 강조했다.반면 공화당은 세금보다는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판단한다. 공화당이 다수당인 하원에서 예산을 감축하고 부채한도를 늘리는 것을 막고 있다.
반면 여당인 민주당은 예산을 계속 늘리려 하고 있다. 이런 정치적 역학 관계로 인해 미국에선 툭하면 셧다운(연방정부 업무중단)과 디폴트(채무 불이행) 우려가 터져나온다. 자연스레 미국 부채 문제 해결은 계속 걷돌고 있다.
크루그먼 교수는 "증세가 현실적으로 더 나은 처방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증세와 예산 감축 모두 실행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초당파정책센터(BPC)의 켄트 콘래드 수석 연구원은 "재정 문제가 완전히 궤도를 이탈했다"며 "정말 특단의 결정을 해야하는 순간에 도달했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