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서울의 봄' 정우성의 김성수 찬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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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주연 '서울의 봄' 22일 개봉
12.12 군사 반란 모티브…이태신 役
"김 감독, 난민 인터뷰 보내 참고하라고"
"감독님이 미쳤나 싶었다"
"'서울의 봄'처럼 감독에게 의지한 작품은 없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인간 군상을 다루면서도 다 빛이 나게 하셨죠. 그의 집요함, 식을 줄 모르는 에너지. 그 많은 캐릭터가 나올 땐 톤앤매너를 살짝만 바꿔도 좋은 협주가 완성되지 않는데 '김성수는 김성수'라는 생각이 들었죠. 김성수 훌륭하다!"
배우 정우성은 '서울의 봄'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에 대한 존경심을 아낌없이 드러내며 이같이 말했다. 두 사람은 1997년 영화 '비트'를 통해 처음 만나 '태양은 없다'(1998), '무사'(2001), '아수라'(2016)에 이어 '서울의 봄'까지 다섯 작품을 함께했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정우성은 "저라는 사람을 영화인으로 만들어주신 분"이라며 김성수 감독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영화 경력도 얼마 안 된 배우를 동료로 받아주셨고 배우 그 이상으로 작품에 참여하도록 격려, 유도해주셨다. 확장된 꿈을 가질 수 있는 용기를 준 분"이라고 덧붙였다.정우성은 김성수 감독이 아니었다면 '서울의 봄'을 거절했을 거라고. 22일 개봉한 이 영화는 1979년 서울에서 벌어진 12.12 군사 반란을 모티브로 한 최초의 영화로 신군부 세력과 그들을 막으려는 군인들의 일촉즉발 대립을 그렸다. 정우성은 황정민이 연기한 보안사령관 전두광의 대척점에 서 있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으로 분했다.
"어떤 캐릭터를 맡든 '부담'은 배우의 숙명이죠. 막연함이 가장 컸던 캐릭터입니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느낌을 받았죠. 스토리 안에서 이태신 혼자 놓이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컸습니다."
김성수 감독은 정우성이 UN 난민기구 친선대사 때 인터뷰 영상을 보내 "참고하라"고 했다고. 그는 "감독님이 미쳤나 싶었다"고 회상했다."제 영상을 제게 보내주고선 '이게 이태신이야'이러셨어요. 나보고 뭘 찾으라고 하는 거지? 싶었죠. 알고 보니 인터뷰에 임하는 태도, 자세가 극 중 이태신의 태도와 자세였으면 좋겠다는 뜻이었어요. 난민 이슈 때 제주 상황이 펼쳐지면서 엄청난 공격을 받았어요. 영상에서 제가 의연하고 꼿꼿이 서 있는 모습을 보신 것 같아요. 그 자세의 정우성을 인상 깊게 평가해주셨어요. 그걸 가져와서 이태신에 넣으면 됐었던 거죠."정우성은 이태신을 감독이 바라보는 바람직한 군인상이라고 해석했다. 이태신은 장태완 제7대 수도경비 사령부 전 사령관을 모티브로 했지만 가공된 캐릭터다.
"연기는 배우의 해석입니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상황을 재연하는 것도 아니죠. 황정민도 그 인물(전두환)의 특성을 분장으로 매치시키긴 했으나 전두광이란 인물의 표현법은 감독과 함께 논의해서 만든 것입니다. 물론 외형적 특수성 때문에 '이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여지는 있죠. 이태신은 싱크로가 없었기에 자유로웠고, 막연한 부분도 분명히 있었어요."평소 캐릭터에 대해 많은 제안을 한다는 정우성은 이번에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고 했다. "이태신을 찾아가기에 바빴다"며 "흔들리고 있는 걸 들키면 안 됐다"고 귀띔했다.
"감독님이 저를 자꾸 밀어 넣은 것 같아요. 전두광과 마주하는 장면이 별로 없는데, 복도에서 마주쳐요. 리허설할 땐 서로 본 연기를 안 하고 기운을 살폈죠. 연기를 딱 끝냈을 때 전두광의 눈빛에서 '이태신을 읽었나? 느꼈나?' 느끼려고 했죠. 그렇게 내가 이태신스러운지, 작은 확신들을 계속 쌓아갔죠."
그는 황정민의 불같은 연기를 목도하기 위해 촬영 스케줄이 없음에도 현장을 찾아가기도 했다고. "전두광 분장 딱 끝나는 순간 어마무시하다고 느꼈어요. '아수라' 때와는 또 달랐죠. 그땐 설득력 없는 폭주였다면 지금은 기가 막힌 설득력을 가진 사람이죠. 인간의 사심을 잘 간파하는데 연기를 할 때 그런 지점이 뚫고 나오는 것 같아요. 부딪히는 신이 없었지만, 굉장히 궁금했고, 찾아가서 관찰했어요. 기 싸움이요? 하기 싫어요. 힘들어요. (웃음)"김 감독과 함께 작품 하면서 정우성은 새로운 감정을 갱신하고 있다. 그는 "'아수라' 때는 감독 사무실에서 3시간 버전을 본 적 있는데 야구공으로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면서도 "'서울의 봄'은 기가 빨리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김성수 감독은 '아수라' 때부터 겉핥기식으로 인간의 본성을 표현하려 하지 않아요. 신뢰도 미움도 않고, 깊숙이 들어가려고 해요. 캐릭터를 구현하기 위한 고민들, 전체적 하모니가 만들어내는 놀라운 경험을 함께했죠."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은 정우성은 소회를 묻자 "네? 누가요? (이)정재씨가?"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젊은 시절엔 자꾸 내 확신만을 가지고 그걸 더 공고히 하려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유연해지고 규정지으려고 하지 않아요. 세상엔 답이 없지 않나요. 그런 관점에서 작업에 대한 이해와 깊이 같은 게 넓어진 것 같아요. 현장에 대한 긴장감과 신선함은 여전히 갖고 있고요."
영화 '보호자'로 감독으로 데뷔한 정우성은 "김성수 감독은 늘 가르침을 주는 바람직한 감독상"이라며 "'이게 내 마지막 작품이 될 수 있어'란 집념이 있다. 어떻게 저렇게 하지란 생각을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정우성은 김성수 감독과 '헌트'를 연출한 이정재 배우 겸 감독이 '정우성을 가장 잘 찍는 감독' 타이틀 쟁탈전에 참전한 것에 대해 "건전한 경쟁"이라며 "누가 멋지게 찍어서가 아니라 내가 잘생겼기 때문에 잘 생기게 나오는 것"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