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포기를 모르는 사람들

이형일 통계청장
감정노동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2018년 시행된 감정노동자보호법은 지난달로 5년을 맞았다. 감정노동은 콜센터 상담원처럼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해 근로자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억누르며 하는 일을 말한다. 같은 맥락으로 조사 현장 최일선에서 국민을 만나 통계조사 업무를 수행하는 2000여 명의 통계조사원도 감정노동자라고 할 수 있다.

문전박대는 조사원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일상이다. 조사 과정에서 폭언을 들으면 다음 방문조사에 나서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호소한다. 외부인이 회사에 함부로 들어온다며 경찰을 부르는 일도 있었다. 가뜩이나 장사도 안 되는데 세금 더 받으려고 조사하러 왔냐는 상인의 반응에 할 말을 잃기도 한다. 조사원들은 욕을 먹거나 위협을 당해도 조사 대상자와의 유대관계 때문에 참고 또 참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1인 가구의 증가, 사생활 보호 및 기업체의 정보 보안 의식 강화 등은 이들의 현장 조사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통계청도 과학적인 통계 조사 기법과 행정자료 활용 등으로 어려워진 조사 환경에 대응하고 응답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다소 복잡한 조사 항목에 대해 정확한 응답이 필요한 일부 국가통계는 조사원의 대면조사가 여전히 중요하다.

국가통계의 정확성과 신뢰도는 통계조사원의 손과 발 그리고 입에 달려 있다. 대부분의 조사원은 어떤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않고 불응하는 조사 대상자를 최대한 설득해 통계조사를 마무리하고 SNS로 서로 안부를 묻는 관계를 구축한다. 이들은 닫힌 문을 여는 기다림의 선수이자 설득의 달인이다. 국가에 도움이 되고 국민에게 꼭 필요한 국가통계를 만든다는 자부심과 사명감, 그리고 책임감이 이들을 달인으로 만든 원동력이다.

조사원들은 바닷물을 생수병에 얼려 사용하는 어가(漁家) 어르신을 위해 폐아이스팩을 직접 수집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진심을 담아 손편지도 쓰며, 신생아가 있는 집에 벨을 누르지 말아 달라는 에티켓 스티커를 만들어 선물하기도 한다. 통계가 가장 논리적인 숫자로 사회현상을 읽어내고 미래를 예측하는 도구임에 분명하지만, 이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정확한 통계가 나온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체득한 사람이다.

최근 국회에서 안전 확보 등 통계조사원의 처우와 업무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반가웠다. 통계청도 조사인력 처우 및 조사환경 개선에 적극 나설 것이다. 하지만 통계조사원의 사명감을 북돋게 하는 가장 큰 힘은 조사 대상자의 환대다. 조사 참여가 결국에는 자신에게 혜택으로 돌아오는 ‘자신을 위한 기부’가 되는 만큼 적극적으로 통계 조사에 참여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