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방울 '크리스털 사슴'의 日작가, 초대형 검은 성게로 서울왔다
입력
수정
한남동 페이스갤러리 코헤이 나와 개인전2018년,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정문 유리 피라미드 천장에 작품이 하나 걸렸다. 제목은 ‘Throne’. 작품은 황금색의 이집트 고대 왕관 모양으로 왕좌라는 뜻에 부합하고 있었다. 작가는 일본 조각가 코헤이 나와. 그의 작품은 1년 동안이나 루브르 박물관의 천장을 차지했다.
'코스믹 센서빌리티' 2024년 1월 6일까지
코헤이 나와는 지난해 일본에서 땅값이 가장 비싸다는 도쿄 ‘긴자 식스’ 쇼핑몰의 정중앙에 대형 조각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세계 곳곳에서 화제를 뿌리고 있는 일본의 대표 작가 나와가 초대형 신작을 들고 서울을 찾았다.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코스믹 센서빌리티’를 통해서다. 페이스갤러리는 3개층 모두를 나와의 조각과 회화, 설치 시리즈 40점을 전시하는데 할애했다. 각 층마다 작가의 다른 시리즈를 조명하기 위해서다. 나와는 전시 시작한 21일 한국을 찾았다.코헤이 나와는 모든 것으로 정보화되는 시대의 인간과 자연을 주목해 온 작가다. 그는 생명조차도 정보로 인식되는 시대에 인간의 의미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가 내놓은 연작 시리즈들은 생긴 모양은 달라도 의미는 모두 동일하다. 이번 전시에 내놓은 연작들은 우주에서 바라본 생물과 인간의 세계를 나타냈다. 2층 로비엔 나와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여겨지는 ‘픽셀’ 시리즈가 자리잡았다. 픽셀 시리즈는 나와가 20년 동안 이어 온 작업이다. 라디오와 TV 등 사물에서부터 사슴, 닭과 같은 동물까지 모든 조각들의 표면에는 투명한 원형 크리스탈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 크리스탈 구슬 때문에 관객은 조각 위에서 마치 세포가 증식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나와는 픽셀 시리즈를 통해서도 디지털 세상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조명했다. 표면이 뒤덮여있기 때문에 관람은 오직 구슬을 거쳐서만 조각 내부의 진짜 형체를 볼 수 있듯, 현대인들도 ‘렌즈’라는 디지털 물체를 거쳐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본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했다.이번에 나온 ‘픽셀’ 시리즈는 나와의 개인적 추억을 처음으로 작품에 담았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라디오 카세트 조각 ‘붐 박스’는 그가 어린 시절 쓰던 제품을 일본 중고 사이트를 뒤져 구매해 만들었다. 그가 아끼던 앤틱의자 위에 닭 한마리가 덩그러니 앉아있는 작품 ‘반탐-체어’는 구슬 밑에 실제 박제된 닭이 들어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3층 전시관엔 두 가지 작품이 전시됐다. 벽면에는 평면 작품 ‘리듬’ 시리즈가 붙었다. 이 시리즈는 코헤이 나와가 작품 위를 모두 벨벳으로 덮은 작품이다. 가까이서 보면 소재 때문에 생겨난 작은 털들을 볼 수 있다. 작품을 현미경으로 보듯 조금 더 가까이 보게 만든 작가의 의도가 담겼다.
이번 전시에 나온 ‘리듬’ 시리즈의 작품들은 나와가 흑백으로만 작업했던 방식을 처음으로 깨고 세 가지 색을 사용했다. 그는 세포 관찰을 좋아하는 평소의 취미를 작품에 옮겼다. 식물과 미생물이 자라나는 것을 벨벳 위 동그란 점들로 묘사했다. 나와는 “이 작품을 통해 먹고 먹히는 미생물 사이 ‘생명의 리듬’을 표현했다”며 “미생물의 세계와 인간세상, 경제활동의 치열함이 닮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다”고 작업 의도를 밝혔다. 3층 한가운데를 장식한 강렬한 대형 조각 ‘스파크’는 서울에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까만 조각 위에 수없이 많은 뾰족한 가시들이 솟아 있다. 그는 ‘우주에서 부유하는 조각’을 모티브로 삼아 조각을 만들었다. 이 작업도 벨벳을 사용했는데, 소재가 가진 특성 때문에 마치 까만 조각들이 주변의 빛과 소리를 잡아먹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나와는“컴퓨터로 조각 하나하나를 설계한 뒤 손으로 모든 가시를 직접 끼워맞추는 작업 방식을 택했다”며 “컴퓨터라는 ‘기술’이 만든 것도 결국 인간이 재창조한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리듬’ 시리즈와 ‘스파크’가 같은 층에 전시된 이유도 특별하다. 나와는 “리듬은 고요함, 스파크는 균열을 나타낸다”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 등을 통해 사람이 믿고 있던 것에 의문과 균열이 생기는 시대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가장 아래 층에 들어서면 깜깜한 실내에서 홀로 빛나는 직사각형이 눈에 들어온다. ‘바이오매트릭스’ 시리즈다. 이 작품은 계속해서 움직이는 설치 작업으로 수많은 기포가 표면 위로 올라왔다 사라지고, 곧바로 다시 올라오는 과정을 반복한다. 작품을 통해 나와는 인간의 탄생과 소멸을 표현했다. 그는 “무의 상태에서 세포가 생기고, 다양성을 띈 후 사라지는 우주의 질서를 나타냈다”며 “올라왔다 사라지는 기포는 ‘호흡’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바이오매트릭스’ 표면 위 기포들이 계속 올라왔다 내려갈 수 있는 비밀은 소재에 있다. 나와는 작품을 만들 때 실리콘 오일을 사용했는데, 증발하지 않기 때문에 몇 백년이 흘러도 이 작품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특성을 가졌다. 여기에 표면장력도 물과 달라 기포가 올라오면 자연스레 다시 제자리를 찾아 내려가려하고, 몇 초 뒤엔 또다시 위로 떠오르려 하는 특징이 있다.이 수없이 반복되는 상승과 하강을 통해 나와는 태어나서, 자라고, 또 다시 땅으로 사라지는 생명의 섭리를 나타냈다. 영상, VR, AR 등 디지털 작품이 넘쳐나는 현대 미술계에 ‘직접 손품을 들인’ 조각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한 전시다. 사진으로만 보던 나와의 대표작에서부터, 눈을 뗄 수 없이 움직이는 설치 신작까지 한 건물 안에서 관람할 수 있다.
페이스갤러리 전시관 옆 카페엔 나와의 드로잉 작품 두 개가 놓였다. 나와가 작업실이 있는 교토에서 아이들과 가족이 사는 도쿄까지 신칸센을 타고 왕복하며 그린 작품이다. 코로나로 인해 텅 빈 객실과 선로의 모습을 흑백의 선들로 나타냈다. 이번 개인전 공식 출품작은 아니지만, 코헤이 나와라는 유망한 아티스트 뒤의 쓸쓸한 일상을 그림 너머로 훔쳐볼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전시는 내년 1월 6일까지.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