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eople] 제주 화가 이왈종의 도전 "한국 작가 작품 더 비싸게 팔려야죠"

김지선 기자 유세진 크리에이터 = "이번 전시가 꼭 성공해서 한국 작가 작품이 제값을 받고 해외에 진출하길 바랍니다"
제주를 대표하는 화가 이왈종(78) 화백이 '제2의 고향' 제주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다음 달 1일 서귀포시 성산읍 '빛의 벙커'에서 몰입형 예술 전시 '이왈종, 중도의 섬 제주' 개막을 앞두고 있다. 파리, 뉴욕, 암스테르담 등 9개 도시에서 운영 중인 '빛의 시리즈' 전시관에서 한국 화가가 주인공으로 관람객들과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9일 서울 강서구 메이필드호텔 '왈종룸'에서 만난 이 화백은 "외국에는 작품당 가격이 100억을 넘는 작가들이 흔한데, 우리나라는 김환기 화백 정도"라며 "한국 작가 그림값이 제일 저렴한 것이 현실"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높은 예술성은 조선시대 조각보, 고려시대 불화 등을 통해 이미 증명된 터. '예술은 돈 위에서 꽃을 피운다'는 지론처럼, 비싼 가격에 팔려 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아직 한국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예술품도 저평가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신보다 더 좋은 작품을 내놓고도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진 동료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내가 행복해야 하지만 최소한 처자식을 굶기는 일도 없어야 한다는 게 이 화백의 기본적인 예술철학이다.

삼성전자 최신 기종 스마트폰을 고집하는 것도 "이렇게 훌륭한 기업이 우리나라를 먹여 살려 나도 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빛의 벙커'는 지난 2018년 개관 이래 구스타프 클림트, 빈센트 반 고흐, 폴 세잔 등의 고전 명작을 재구성해 선보여왔다. 전시 주관사인 티모넷은 이 화백을 시작으로 국내 작가 작품을 재해석한 콘텐츠를 확대하고 해외 전시관에 순차적으로 소개하는 등 수출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초심자도 쉽게 접근 가능한 형식인 만큼 'K-미술'의 저변을 넓힐 수 있고, IP(지적재산권)를 확보한 상태에서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면 로열티를 받을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 1992년 전업 작가를 선언하고 서귀포로 옮겨온 이후 줄곧 화폭에 담아온 '제주 생활의 중도' 연작 중 2천년대 이후 고화질 촬영본을 빛과 음악을 통해 생동감 있게 구현해냈다. 평소 '시가 그림이고 그림이 곧 시'라고 주창해온 이 화백이 천상병 시인의 시 '막걸리'에서 영감을 얻은 신작도 포함됐다.

미디어 아티스트에게 "원본 이미지를 마음대로 해체해도 좋다"고 허용한 대신 '재미'와 '밀도'(의도)를 잘 살려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5년 전 자신을 찾아온 제작진과 꾸준히 교류하며 신뢰를 쌓아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게 이 화백의 설명.
완성본을 마주한 소감은 '아주 마음에 든다' 였지만 다른 한편으론 '죽을 쑤면 어쩌지…'하는 걱정도 있기에 "찾아온 관객들이 기분 좋게 웃고 갔으면 싶다"는 소망도 밝혔다.
이 화백은 회화를 넘어 다양한 소재와 기법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것으로도 이름나 있다.

미디어 아트 역시 과거 여러 차례 제작한 경험이 있다.

지금이야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등 도내 곳곳에 작가의 이름을 내건 미술관이 들어서 있지만 10년 전 서귀포에 '왈종미술관'을 만든 것 또한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다.

정방폭포 인근에 자리 잡은 미술관 건물은 또 하나의 설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 거장 반열에 오른 노화백이 이처럼 계속 변화를 추구하는 이유를 묻자 "한 가지에 집착하면 괴로워지고 늘 도전해야만 활기가 생긴다"는 답이 돌아왔다.

파블로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등이 그랬듯이 현실을 직시하고 혁명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현대판 풍속화'의 미덕이라고 믿는다.

예술과 과학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이끄는 요즘 세대가 "신통하다"면서도 우리 역사를 알고 '전통의 현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때 그림에 빼놓지 않고 등장할 만큼 즐겼던 골프를 3년 전 끊은 대신, 요즘 주말을 이용한 산사 기행에 푹 빠져있다.

천년고찰만 160군데 넘게 다녀왔는데 최근 들렀던 충남 부여 고란사가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다른 사찰과는 달리 누구나 범종을 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아침 식사 후 오후 5시까지 작업을 하는 틈틈이 텃밭을 일구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요가는 벌써 10년째 수행 중이다.

작품마다 '서귀포 왈종'이라고 적어 남기고, "죽어서 천당 갈래, 지옥 갈래?"라고 묻는다면 "서귀포 갈래"라고 답할 만큼 사계절 꽃과 함께 할 수 있는 지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다만 '문화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관련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빠뜨리지 않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