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계절의 정취 가득한 정읍 구절초지방정원

날씨가 바뀌면 생각나는 꽃들이 있다.

저마다 계절을 대표하고 풍기는 정취가 있다. 가을에는 이러한 꽃으로 흔히 국화과 식물을 떠올린다.

그중 하나가 구절초다.

바람에 흔들리는 흰 꽃의 무리를 찾아 정읍 구절초지방정원으로 향했다.
◇ 하천이 휘감아 도는 산언덕의 정원

서울에서 KTX(고속열차)를 타고 가는 동안 차창 밖으로 누런 들판이 스쳐 지나갔다.

농작물 수확 후 비어있는 논밭도 보였다. 1시간 40여분 후 정읍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차량으로 40여분 이동하니 나지막한 오르막길이 이어지면서 양쪽 도롯가에 키 작은 구절초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을을 맞아 꽃이 만개한 구절초지방정원에 다다랐다. 지방정원은 지방자치단체가 조성해 운영하는 곳이다.

현재까지 전국에 등록된 곳은 7곳이다.

구절초지방정원은 면적이 약 38.7㏊로, 지방정원 중에서 가장 넓다.

원래 이곳에는 산책로를 갖춘 체육공원이 있었다.
2006년 야산의 잡목을 정리하고 기존 소나무 아래에 구절초를 심어 정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식재 면적을 넓히면서 구절초정원뿐 아니라 들꽃정원, 솔숲정원, 물결정원, 참여정원도 만들었다.

구절초지방정원은 이렇게 5개의 정원으로 구성됐다.

이곳에선 구절초가 평지가 아닌 산언덕에 피어있다.

관람객은 언덕 위를 쳐다보거나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꽃을 감상하게 된다.

산 아래를 흐르는 하천인 추령천은 정원을 둥그렇게 휘감아 도는 하회(河回) 형상을 하고 있다.

정원이 소재한 산내면은 해발 200m 이상의 중산간지대다.

구절초의 생육환경과도 잘 맞고 산과 하천이 있는 지대에 정원이 조성된 것이다.

◇ 고즈넉한 풍경과 바람의 어울림

굵은 소나무 아래에는 흰 구절초꽃, 연한 핑크와 진한 핑크빛의 구절초꽃이 함께 피어 있다.

키 큰 소나무의 푸르름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 같지만 그 아래에 키 낮은 구절초꽃과 잎까지 바라보게 된다.

고즈넉함과 온화함이 느껴진다.

올해에는 추위에 강해 좀 더 늦게 개화하는 자홍 구절초도 심었다고 한다.

꽃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마치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바람이 살랑대면 약한 물결이 일듯 이웃한 무리의 꽃이 하늘거리고 은은한 향기가 퍼지는 듯하다.

구절초는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이다.

관상용으로도 좋고 한방에서 약재로도 쓰인다.

꽃말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 솔숲을 바라보고 백일홍 길을 거닐다

구절초지방정원을 구성하는 다른 정원도 볼거리가 많다.

참여정원에선 잔디광장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잠시 몸을 쉬어갈 수 있다.

이곳에서 보이는 출렁다리 건너편에는 솔숲정원이 있다.

인근 하천에는 추억의 징검다리도 놓였다.

다른 꽃길을 걸어보고 싶다면 들꽃정원으로 이동하면 된다.

이곳에는 봄, 여름, 가을마다 꽃을 심는데, 올가을에는 코스모스, 백일홍, 댑싸리를 심었다.

붉은 백일홍 꽃밭은 색감이 더욱 눈에 띄어서 매력적이다.

사잇길로 관람객을 실은 작은 꽃열차가 지나간다.

어느 곳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풍경이 달라진다.

들꽃정원이 있는 공간은 원래 주민들의 애환이 담긴 농경지였다.

넓게 펼쳐진 꽃밭 주변 돌 제방은 인근 하천 범람을 막고자 주민들이 쌓은 것이다.

물결정원에는 한반도 모양의 호수가 만들어져 있다.
◇ 물안개가 빚은 정경

구절초지방정원에선 새벽 물안개가 푸른 소나무, 하얀 구절초 사이를 휘감은 풍경이 유명하다.

이른 아침이면 이 광경을 찍으려는 사진작가와 관람객이 찾아온다.

취재팀도 정읍역 인근 숙소에서 오전 5시 30분께 길을 나섰다.

추워진 날씨가 확연해졌지만, 공기는 상쾌했다.

정원 근처에 이르자 추령천에서 인근 산까지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일교차가 큰 가을에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정원에 도착하니 안개가 은근하게 깔렸다.

바람이 잠깐씩 불 때를 제외하곤 풍경이 정지한 듯 보였다.

사진작가들이 안개 속을 조용히 움직이며 실루엣을 만들어내 풍경을 함께 이루고 있었다.

먼 곳에 있는 소나무의 형체가 더욱 희뿌옇게 보이고 그 아래 흰 꽃들은 점점이 뿌려진 것 같았다.

다른 정원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 들꽃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대가 낮다 보니 산언덕으로 해가 떠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개가 서서히 물러가며 건너편에 있던 산의 형체도 드러났다.
◇ 마을 안에 있는 무성서원

이제 정읍시 칠보면에 있는 무성서원으로 이동했다.

무성서원을 포함해 서원 9곳을 묶은 '한국의 서원'은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서원은 조선시대 지방 지식인들이 세운 성리학 교육기관이다.

무성서원은 입지를 선정하는 데 있어 풍광을 고려한 다른 서원과는 달리 주거지 인근에 있다.

안내판은 "자연경관보다는 접근성 및 서원 참여자에 주목했기 때문에 주거지 인근에 서원이 건립돼 성리학이 사림에 한정하지 않고 지역 공동체 전반으로 확대됨을 보여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무성서원은 신라말 이 지역 태산군수로 부임했던 최치원을 기리기 위해 생사당(生祠堂·생존해 있는 사람을 모시는 사당)을 세운 것에서 유래한다.

1696년 숙종 때 무성서원으로 사액 됐다.

이곳에선 국내 가사문학의 효시인 상춘곡을 지은 정극인을 포함해 총 7명을 배향한다.

서원의 형태는 간결해 보였다.

남북 방향으로 유생들의 유식 공간, 강당, 제향 공간이 배치돼 있다.

2층 누각인 현가루(絃歌樓)를 지나면 단출해 보이는 강당이 나타난다.

강당 중앙에 3칸의 마루가 앞뒤로 트여있고 좌우에 방이 있다.

이곳 마루에 앉아 유생들이 학문을 익혔을 것이다.

강당 마루에 앉아 현가루 쪽을 바라보니 건물 형태가 더욱 단정하게 느껴졌다.
◇ 쌀쌀한 날씨에 쌍화차 거리를 찾다

일교차가 큰 날씨에 따뜻한 차 한 잔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정읍 시내 쌍화차 거리를 찾았다.

정읍경찰서 인근에서부터 정읍세무서까지 350m가량 이어지는 거리다.

대략 세어보니 다른 가게들 사이에 15개 안팎의 전통찻집이 보였다.

가래떡과 조청 같은 주전부리를 곁들여 준다는 안내판을 내놓은 찻집도 있다.

거리에는 두꺼운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싼 모양의 설치물이 있어 찾기가 쉽다.

안내판에는 쌍화차 거리가 자생적으로 형성됐으며, 정읍식 쌍화차는 20여개의 재료를 달여 고명을 넣은 게 특징이라고 쓰여있다.

정읍은 쌍화차 원료인 지황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쌍화차 거리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찻집에 들어갔다.

주문한 쌍화차가 묵직한 찻잔에 담겨 나왔다.

뚜껑을 열어보니 대추, 은행, 밤이 푸짐하게 얹어져 있다.

그사이 일행 2명, 6명의 손님이 잇따라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숟가락으로 쌍화차를 한입씩 떠먹어보니 맑으면서도 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잔을 마시고 나니 쌀쌀함이 가시고 몸이 뜨끈해졌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3년 1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