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당 100만달러… 전쟁 앞둔 히틀러, 장교 봉급 확 올려 [책마을]

독일 국방군

팀 리플리 지음
박영록 옮김/플래닛미디어
516쪽|2만8000원
1939년 폴란드 침공 당시 독일군 전차. 사진=플래닛 미디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영국과 프랑스는 이제 독일이 약해졌다고 생각했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은 감당하기 어려운 배상금 의무를 지게 됐다. 독일군은 10만명으로 인원이 제한됐고, 징병제 대신 모병제를 시행해야 했다. 전투기, 전차, 방공포, 대전차포, 중포, 화학무기 등을 소유할 수 없었다.

그런 독일군이 어떻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초기에 승기를 잡을 수 있었을까. 영국의 전쟁사 연구자 팀 리플리가 쓴 <독일 국방군>은 그 원인을 파헤친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어떻게 승리하고 패배했는지 객관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히틀러가 독일군을 정치적으로 장악하는 과정과 유명 독일군 장군들이 히틀러의 정권에 어떻게 영혼을 팔게 됐는지도 드러낸다. 저자는 “베르사유 조약이 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 승리의 촉진제가 됐다”고 분석한다. 독일군은 베르사유 조약이 허용한 제한된 범위 안에서 전투력과 장비들을 극대화하고, 1차 세계대전 패배를 분석해 현대적인 군으로 탈바꿈하려 노력했다. 책은 “이런 노력의 결과 독일군은 전쟁에 참여했던 그 어떤 나라의 군대보다 1차 세계대전을 광범위하게 연구했다”고 전한다.
독일군을 상징하는 ‘전격전’ 역시 이때 연구되고 도입됐다. 지정학적으로 항상 서부와 동부 전선에서 적과 대치해야 했던 독일은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했다. 이전의 전쟁을 분석한 독일은 18세기 프리드리히 대제, 19세기 몰트케, 1차 세계대전 때의 슐리펜 등이 선보였던 기동성과 대담성에서 해법을 찾았다. 저자는 “전격전은 적의 물리적 자산을 파괴하기보다는 적의 정신적인 응집력과 의지를 파괴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설명한다. 충격과 공포로 전의(戰意)를 잃게 만드는 방법이다. 1939년 폴란드 공격, 1940년 프랑스 침공 등이 그런 예다.

히틀러가 장교들의 봉급을 대폭 인상한 것은 충성심과 사기를 높이는 효과를 냈다. 독일군 원수의 연봉은 2000년 기준으로 약 20만달러에 달했다. 새로 진급한 원수는 부동산을 구입할 수 있는, 세금이 면제된 현금을 받았다.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와 빌헬름 카이텔 원수는 현재 가치로 100만 달러 상당의 첫 수당을 받았다. 그 당시 독일 산업 근로자의 한 달 평균 봉급은 140달러였다. 장군뿐 아니라 모든 계급의 장교 월급이 이전보다 올랐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보잘것없는 월급을 견뎌야 했던 장교들은 자연스레 나치 정권에 충성하게 됐다. 무엇보다 독일군의 초기 승리에는 연합군의 방심이 있었다. 1933년 집권한 히틀러는 2년 후 공식적으로 바르샤바 조약을 파기했다. 이후 독일군은 재무장의 길을 걸었다. 1936년 라인 지방을 재점령했고, 1938년 3월 오스트리아를 병합했다. 그런데도 영국과 프랑스 등은 강경 행동을 주저했다. 1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국력 소모가 컸던 탓에 다시 전쟁을 벌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 독일이 큰 전쟁을 일으킬 만큼 충분히 힘을 회복했을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책은 독일군이 치렀던 전투를 상세하고 전문적으로 다룬다. 어렵게 쓴 책은 아니지만 일반 독자들은 너무 상세한 내용을 전한다고 느낄 수 있다. 국방 및 전쟁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유익한 정보가 많이 담겼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