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원칙 벗어난 원료용 중유 개별소비세, 면세화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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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29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석유제품은 일반 재화와 달리 부가가치세에 더해 개별소비세가 과세되는 대표적 품목이다. 휘발유, 경유, 중유 등이 배출하는 탄소화합물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부작용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이다.
유류 개별소비세 운영에는 반드시 유념해야 할 기본원칙이 있다. 오염물질 배출이 수반되는 유류제품 사용 단계에서 과세가 이뤄져야 교정과세로서 순기능이 발휘된다는 점이다. 유류제품의 연소 과정에서 오염물질이 배출되기에 석유제품을 에너지원으로 이용하는 최종 소비행위에 대해 유류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뜻이다. 원유 구매에는 개별소비세가 부과되지 않는데, 이는 원유가 제조 공정상 원료로 투입될 뿐 최종 소비재로 직접 이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원유의 정제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별달리 배출되지 않는 것도 면세의 근거를 제공한다.또 다른 석유제품 중 하나인 중유 또는 벙커C유는 발열량이 많아 선박이나 보일러용 연료로 많이 이용되지만 재가공해 나프타, 윤활유, 아스팔트 등의 제조용 원료로도 쓰인다. 이 같은 이중적 특성으로 인해 중유는 다른 유종과 달리 직접 연료용으로 사용되는 경우에 한해 개별소비세가 과세되는 것이 기본이다. 실제 중유 개별소비세를 유지하는 66개국 중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는 석유제품 제조공정 원료로 쓰이는 중유에 대해 유류세를 면제하고 있다. 우리나라 세제가 사용 용도에 관계없이 중유에 개별소비세를 단순 부과하는 것은 소비세 과세의 국제표준은 물론 교정과세 원칙에 명백히 반한다. 유사 물품인 원유와 비교해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현행 세법의 유류세 조건부 면제가 석유화학산업에 이용되는 공업 원료용 석유류에만 적용되도록 못 박은 것도 편파적이고 임의적이다. 산업 간 수평적 과세 형평성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두 산업의 전후방 연관성에 의해 세부담이 전가되는 문제를 간과한 정책이다.
개별소비세 이중과세 방지나 수출품 면세 조항에 의해 개별소비세가 과세되거나 수출되는 석유제품의 제조 원료로 이용되는 중유는 세금 환급을 받기에 정유산업에도 비슷한 혜택이 주어진다는 주장이 있으나, 감면 효과가 충분하지 않다. 세금 환급이 제공되지 않는 내수용 나프타와 항공유 등이 전체 석유제품 생산의 40%에 근접하기 때문이다. 나프타의 내수 비중이 90%에 달하는 상황에서 중유 개별소비세 부담은 대부분 국내 판매 나프타 가격에 반영돼 주요 수요자인 석유화학산업에 전가되고 원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종국에는 석유화학산업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악영향마저 우려된다. 원유와 중유 혼합물을 정제해 휘발유, 경유 등의 석유류 연산품을 얻는 신기술 발전으로 저렴한 중유를 생산 공정 원료용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고유가 시기의 어려움을 헤쳐 가는 묘안인 동시에 값싼 러시아산 원유를 마음껏 수입해 쓰는 중국과의 힘겨운 대결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수단이다. 불합리한 세제가 생존을 위한 산업의 혁신 노력에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원료용 중유에도 유류세 조건부 면제를 도입하거나 적어도 2년간 한시 적용 후 일몰된 개별소비세 면세 특례를 재도입하는 제도 개선이 시급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