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보증금 '꿀꺽'…HN '재임대 사기' 의혹

경찰, 사기혐의로 수사 착수

보유상가 매각한 뒤 임차한 HN
중간책 통해 보증금 받고 재임대
계약 뒤 회생신청…건물 경매로
날벼락 맞은 세입자들 쫓겨날 판
중견 건설사 에이치엔아이엔씨(HN)가 ‘삼각 사기’로 상가 임차인의 보증금을 빼돌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HN은 현대가 3세인 정대선 씨가 최대주주인 건설사로 법정관리 중이다. 상가를 임차한 HN은 자영업자에게 상가를 재임대해 수억원대 보증금을 받아간 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법인회생을 신청했다. 건물은 경매에 넘어간 상태로 세입자들은 보증금과 권리금, 인테리어 비용 등을 날린 채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22일 서울 수서경찰서는 HN과 세입자 사이에서 전대계약(재임대)을 체결한 A부동산자문회사 팀장 B씨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HN이 직접 계약에 나선 게 아니고 중간책 B씨를 통한 삼각 사기를 벌인 것으로 보인다”며 “조만간 HN 관계자를 참고인으로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삼각 사기는 수익을 본 주체(HN)와 기망한 주체(A부동산자문회사)가 다른 사기를 뜻한다. HN은 2018년 서울 대치동에 지하 2층~지상 7층 규모의 현대썬앤빌 오피스텔을 준공했으나 시행사가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못하자 미분양 상가 11채를 공사비 대신 받았다.

유동성 위기에 몰린 HN은 보유 상가를 글로벌원자산운용에 261억원에 매각하면서 보증금 10억원, 월세 1억원에 임차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후 임차한 상가를 자영업자 11명에게 보증금 6억1500만원, 월세 5150만원에 재임대했다.

지난 3월 HN이 법인회생을 신청하면서 상가 세입자들은 졸지에 쫓겨날 처지가 됐다. 선순위 채권단인 하나은행은 HN이 운용사와 계약한 1억원의 월세를 납부할 수 없는 상태라고 판단해 대출 만기 연장을 거부하고 상가를 경매로 넘겼다. 낙찰자가 나타나면 후순위 채권자인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상가에서 쫓겨나게 된다. 글로벌원자산운용사는 상가 매입 당시 하나은행 등으로부터 176억원을 대출받았다. 이후 케플러자산운용에 소유권을 넘겼다.HN은 법인회생을 신청하기 직전까지도 세입자들과 전대계약을 체결하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상가 2층에 입점한 라멘가게 사장은 지난 2월 계약을 맺고 3월 입주했으나 불과 1주일 뒤 HN의 법정관리행 소식을 접했다.

보증금을 주변 시세보다 두 배 가까이 받기도 했다. 1층의 한식당 대표는 HN에 보증금 1억7500만원을 납부했다. 가게 보증금 시세는 1억원 정도지만 HN은 2억원까지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가게 사장은 “권리금 1억3000만원을 포함해 보증금과 인테리어 비용 등 총 5억원을 썼는데 빈손으로 거리에 나앉게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HN은 책임을 피하기 위해 A부동산자문회사 소속 팀장 B씨를 통해 계약을 체결했다. 팀장 B씨는 전대계약을 맺으면서 HN 관계자와 지속적으로 소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입자들이 전대계약을 불안해하자 “현대에서 하는 계약인데 걱정할 것 없다”며 계약이 성사되도록 설득하기도 했다.HN과 임대차 계약을 맺은 상가를 인수한 케플러자산운용사도 당했다는 입장이다. 케플러자산운용사는 임대차 계약서에 따라 회생절차 돌입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지난 8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위약벌 100억원 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케플러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대출 만기 연장에 실패하고 HN과 계약한 월 1억원의 수익도 끊겨 투자자들의 손해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HN 관계자는 “올해 초 일부 호실의 신규 계약을 체결할 당시 법인회생 신청 계획은 없었다”며 “법원에 임차보증금 10억원에 대해 채권 신고를 한 상태로 해당 채권을 이용해 잔여 전대보증금을 상환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세입자들이 안정적으로 영업할 수 있도록 경매 낙찰자와 적극적으로 협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강호 기자 callm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