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웨이·뵈젠도르퍼·시게루가와이…거장의 소리 뒤엔 3대 명품 피아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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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 연주자들 선택 살펴보니명품 시계에 모두가 인정하는 ‘서열’이 있는 것처럼 피아노 세계에도 암묵적인 순위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콘서트홀 무대에 오르는 피아노는 스타인웨이, 뵈젠도르퍼, 시게루가와이 등 셋 중 하나다. 연주자들이 꼽는 소리의 질감과 판매가격 등으로 보면 이들 ‘빅3’가 피아노 서열의 맨 꼭대기에 있다. 판매량은 스타인웨이가 월등하지만 평판으로만 따지면 시계의 파텍필립과 같은 압도적인 1위는 없다.
'믿고 듣는' 지메르만은 스타인웨이
예민한 시프는 뵈젠도르퍼 '원픽'
플레트네프 선택은 시게루가와이
전문가들은 “연주자마다 자신의 연주 스타일과 ‘궁합’이 맞는 피아노를 찾을 뿐 모두가 다 원하는 1위 브랜드는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찾아봤다. 올 하반기 내한했거나 내한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은 어떤 브랜드의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지, 왜 하필 그 피아노를 택했는지.
○지메르만이 사랑한 스타인웨이
다음달 27일부터 부산, 대전, 서울 등에서 내한 공연을 여는 크리스티안 지메르만(66)의 별명은 ‘믿고 듣는 지메르만’이다. 언제 어디에서나 관객을 실망하게 하는 법이 없다 보니 이런 수식어가 붙었다. 그런 그의 곁엔 언제나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 피아노가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로 스타인웨이를 꼽을 정도니 말 다했다.스타인웨이를 사랑하는 피아니스트 중에는 예브게니 키신, 미쓰다 우치코, 김선욱, 조성진도 있다. 스타인웨이를 만든 사람은 독일 출신 ‘피아노 장인’ 스타인웨이와 그의 아들들(sons)이다. 1853년 미국 뉴욕에 회사를 설립한 뒤 다양한 신기술을 앞세워 피아노 시장의 선두 주자가 됐다.
스타인웨이의 특징은 ‘높은 민감도’다. 한음 한음 전달력이 높고 연주자의 의도를 세심하게 반영한다는 것. 그래서 섬세한 연주, 절제된 연주가 특징인 지메르만은 스타인웨이의 청명한 소리와 궁합이 맞는다. 스타인웨이의 콘서트용 그랜드 피아노 모델(D-274)은 4억원에 달한다.
○‘피아노 교과서’의 원 픽, 뵈젠도르퍼
‘피아노의 교과서’로 불리는 헝가리 태생 피아니스트 언드라시 시프(70)의 ‘원 픽’은 뵈젠도르퍼다. 시프는 일반적인 연주자보다 자신이 연주하게 될 피아노의 상태에 민감한 걸로 잘 알려져 있다. 해외 공연 때마다 전속 조율사를 대동하는 ‘까다로운 남자’다.이그나츠 뵈젠도르퍼가 1828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든 이 피아노는 따뜻하고 담백한 음색이 특징이다. 누군가는 ‘시적인 사운드’로 표현한다. 반짝이는 스타인웨이와는 결이 다르다. 그래서 모차르트나 초기 베토벤 등 17~18세기 고전주의 음악에 적합하다는 평가가 많다. 시프가 바로 고전주의 레퍼토리에 강한 연주자다.
손열음도 지난 5월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투어에서 일부 곡을 뵈젠도르퍼로 연주했다. 20세기 명 피아니스트 빌헬름 바크하우스, 프리드리히 굴다와 정명훈 등이 이 피아노를 즐겨 사용했다.뵈젠도르퍼는 수제로 생산한다. 그래서 플래그십 모델인 ‘280vc’ 생산량은 많아야 1년에 300대다. 목재 선정부터 마감 디자인까지 오스트리아 장인들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온다. 판매 가격은 대략 3억원대 후반.
○거장의 은퇴 번복시킨 시게루가와이
9월 내한 공연을 한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미하일 플레트네프(66)는 일본산(産) 명품 시게루가와이를 애용하는 아티스트다. 플레트네프와 시게루가와이 사이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2006년 “현대 피아노의 음색에 한계를 느꼈다”며 활동 중단을 선언한 플레트네프를 6년 뒤 무대로 돌아오게 한 피아노가 바로 시게루가와이다.플레트네프는 9월 내한 공연에서 시게루가와이로 ‘올(all) 쇼팽’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약간 무거운 터치감과 다채로운 음색이 특징이다. 작년 6월 일본 센다이 국제콩쿠르 결선 진출자 여섯 명 모두 이 피아노를 사용했다. 콘서트용 모델 기준 2억원대 중후반이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