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정점 찍었다"…美 하이일드회사채 시장으로 몰리는 자금

11월 한달간 21조 순유입…2020년 7월 이후 최대
정크본드 유입액이 투자등급 회사채의 두 배 이상
"2019, 2021년 '멜트업'(단기 과열) 재현될 우려"
사진=REUTERS
미국 회사채 펀드로 유입된 투자 자금이 3년여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인플레이션이 눈에 띄게 둔화하고, 금리가 정점을 찍었다는 판단에 따라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심리가 급격하게 개선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2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 데이터를 인용해 이달 1~17일 미 회사채 펀드에 164억달러(약 21조4000억원)가 순유입됐다고 보도했다. 월간 단위 유입액으로는 200억달러를 웃돌았던 2020년 7월 이후 최대치다.수익률이 높은 투기등급(정크) 회사채 펀드에 흘러 들어간 자금이 114억달러로, 투자등급 회사채 펀드(50억달러)를 능가했다. 지난 10월까지 하이일드(고수익‧고위험) 채권 투자 펀드에서 누적 180억달러 이상이 유출된 것과 완전히 대조되는 모습이다.

향후 금리 동결 또는 하락 전망에 힘이 실림에 따라 신용도가 낮고 부채가 많은 기업이더라도 이자 부담을 덜면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 없이 경기 둔화를 극복해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작용한 결과다.

물가, 고용 등 금리 결정에 영향을 주는 주요 경제 지표들도 우호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난달 미국의 비농업 부문 일자리 증가 폭은 시장 전망치를 밑도는 15만개에 그쳤다. 29만7000개를 기록했던 전월과 비교해서도 크게 둔화했다. 물가 상승률 역시 3.2%(전년 동월 대비)까지 낮아졌다.
자산운용사 얼라이언스번스타인의 미 하이일드 채권 담당자인 윌 스미스는 “시장 전반에 걸쳐 매우 큰 투심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미 국채 가격의 추가 상승(금리 하락)에 대한 베팅을 앞다퉈 청산하면서 나타난 ‘대규모 안도 랠리’가 회사채 시장에 반영됐다”고 말했다.

미 중앙은행(Fed)은 지난해 3월부터 긴축 페달을 밟기 시작, 0%에 가까웠던 기준금리를 5.25~5.50%까지 올려놨다. 이자 부담이 커진 탓에 투기등급 기업들의 부채 상환 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졌고, 연쇄 디폴트 우려가 만연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Fed가 지난 7월부터 금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추가 인상 기대감이 확 꺾인 분위기다. 선물 시장 트레이더들은 내년 7월까지 두 차례 금리 인하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리 전망 변화는 회사채의 투자 가치를 높였다. ICE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데이터에 따르면 투자등급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의 미 국채 금리와의 평균 수익률 격차(스프레드)는 지난 1일 1.3%포인트에서 1.17%포인트까지 하락했다. 투기등급의 경우 4.47%포인트에서 3.95%포인트로 하락 폭이 더 컸다. 국채와의 수익률 격차가 좁혀졌다는 건 그만큼 회사채에 대한 투자 위험이 줄었다는 걸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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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현재의 높은 금리 수준을 예상보다 더 오래 유지하겠다는 Fed의 의지가 구체화할 경우 이런 흐름이 다시 역전돼 회사채 가격을 낮추고 신용 스프레드 확대를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투자자문사 브랜디와인글로벌인베스트먼트의 존 매클레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투자자들은 몇 가지 측정값들만 보고 금리가 고점에 이르렀다고 판단해 채권 시장으로 달려들고 있는데, 솔직히 말해 어리석은 일”이라며 “현재의 시장 흐름은 2019년, 2021년과 매우 유사하게 보이며, 당시 나타났던 멜트업(단기 과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일수록 ‘고금리 장기화’ 시나리오에서 특히 취약할 거란 전망이다. 자산사모펀드 아폴로의 토르스텐 슬로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들은 레버리지는 더 많고, 지급 여력은 낮으며, 현금 흐름은 약하다”며 “이는 곧 부도율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는 “이달 회사채 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은 인플레이션이 개선되고 있다는 쪽으로 무게추가 확실히 기울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잘 알려진 기업이 하나라도 파산할 경우 무게추는 매우 빠른 속도로 원래의 위치를 되찾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