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억 몸값의 산드라 블록 "좀 고쳤어도, 끝까지 사랑할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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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오동진의 여배우 열전산드라 블록은 그로테스크한 미인이다. 얼굴 성형을 너무 많이 한 것으로 보인다. 이건 많은 여성들의 한결 같은 증언이기도 한데 그게 성형의 결과인 동안(童顔) 미모가 부러워서인지 아니면 그게 미워서인지는 분간이 잘 안된다. 성형에 대해선 잘 몰라 그냥 어느 정도 당기고 잘라내고 했을거라 짐작하지만, 요즘 그녀의 얼굴 근육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수준으로 공사를 한 것 같다.
저래도 일상이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오지랖 넓은 걱정을 하게 만든다. 이게 다 오해일까? 산드라 블록은 1964년생이다. 이 코너를 통해 늘 하는 얘기지만 이 나이대 배우로 여전히 톱 스타인 인물들이 많다. 조디 포스터가 1962년생이고 톰 크루즈도 62년, 조니 뎁이 63년, 키아누 리브스가 64년이다. 아직 모두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산드라 블록이 거의 데뷔작에 해당하는 ‘데몰리션맨’에 나왔을 때만 해도 저 여배우가 이렇게 오래 갈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다. 물경 1993년 영화이고 30년전 얘기다.
지난 2021년 코로나 창궐의 기간에 나온 넷플릭스 영화 ‘언포기버블’을 보고 나서는 오래 전에 내린 오판에 대해 마음 속으로 진정한 사과를 했는데 이 늙은 여배우가 여전히, 누가 뭐래도, 자기 혼자 외롭게, 무지하게 노력하면서 연기를 위해 애를 쓰고 있고 또 그것이 충분히 성공하고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언포기버블’은 경찰 살해범으로 20년쯤을 살다 나온 여자 루스 슬레이터가 사회에 재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내용이다. 미국에서는 경찰 살해범인 경우 최고 사형까지 선고할 만큼 가장 엄중한 죄목으로 다스리고 있다. 루스는 자신의 수감 생활로 다른 가정에 입양된 어린 여동생을 만나고 싶어 한다.(영화 설정상 동생과 10살 이상 차이가 난다 하더라도 둘이 헤어질 때의 루쓰 나이가 최대 스무 살 안팎일텐데 산드라 블록은 그 역을 대역 없이 그대로 한다. 당연히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영화는 둘을 마치 모녀 관계처럼 보이도록 설정했다. 어쨌든 이게 다 성형의 성취일 수 있겠다.)
그녀가 남은 삶에서 바라는 것은 오직 그것 하나이며 역설적으로 바로 그 점이 구차하고 비루해진 삶에 있어서 유일한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전과자로 낙인 찍힌, 그것도 살인 전과의 경우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시 사회에 편입해 살아 가는 건 도통 쉬운 일이 아니다. 루스는 차라리 감옥으로 돌아 가고 싶을 만큼 고통을 받는다. 산드라 블록은 그걸 마음 속으로 꾸욱 꾸욱 눌러 가며 외롭게 살아가는 중년의 이미지를 그럴 듯하게 연기해 낸다. 영화를 거의 혼자서 끌고 나간다. 물론 빈센트 도노프리오와 존 번달이 돕기는 했지만 영화는 산드라 블록의 1인 영화나 마찬가지이다. 전형적인 신파 영화로, 그냥 ‘지나가는’ 영화이긴 해도 여성 호르몬이 많아진 남자 관객(시청자)이 혼자서 찔끔거리고 훌쩍 거리며 보기에 충분한 영화이다.조지 클루니와 함께 나왔던 2013년 영화 ‘그래비티’에서 산드라 블록은 그간의 모든 오해, 다소 인기가 과대평가돼 있고(그녀의 출연료는 편당 7000만 달러가 넘는다! 우리 돈으로 900억원대다.) 절대 연기파 배우는 될 수 없다는 식의 오명에서 벗어나는 연기를 펼친다.
라이언 스톤 박사는 자신이 탑승한 비행선이 인공위성의 잔해와 충돌하면서 우주 공간에서 완전히 고립된다. 그건 곧 홀로 죽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된 지 10여 분만에 산드라 블록은 영화 안에서 완전히 혼자가 된다. 이 고독한 연기를 산드라 블록은 말 그대로 달성해 낸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우주 비행선 선장이자 대장이었던 코왈스키(조지 클루니)가 스톤이 간신히 살아 들어 온 에어 록의 문을 바깥에서 열고 동승하는 부분이다. 그는 가쁜 숨을 내쉬며 털썩, 그녀의 옆에 앉는다. 그리고 언제 자기가 우주 공간에서 표류했냐는 듯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
“당신, 죽은 딸 아이 때문에 힘들었지? 평소에 죽고 싶어 했고 자살도 하려 했잖아. 그래서 여기도 온 거고. 다 알아. 근데 말야. 이제 그만 돌아 가. 괜찮아. 지구로 돌아가. 죽으려 하지 말고 지구로 돌아가서 다시 살아야 해. 다시 괜찮아질 거야.” 그의 그런 말에 라이언 스톤은 펑펑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에게 고맙다고 말하려는 순간 그 모든 것이 자신의 환영이었음이 드러난다. 이 장면을 연기해 내는 산드라 블록이 그렇게 빛나 보일 수가 없다. 이 영화로 산드라 블록은 그해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탄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그래비티’ 이후 산드라 블록은 그야 말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한 듯이 여기저기서 열연을 펼친다. 그중의 하나가 ‘버드 박스’이다.
이 영화는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시각 판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소리를 내면 괴생명체에게 잡아 먹히게 되는 설정인 데 반해 ‘버드 박스’는 눈을 마주치면, ‘그것’을 쳐다 보면 죽게 되는 상황이다. 극중의 말로리는 두 아이를 데리고 자신까지 셋 모두 눈을 안대로 둘둘 가린 채 ‘그것’에서 벗어나 탈출을 시도한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연기가 필요하다. 더듬더듬 헤매는 연기가 필요한데 그 와중에 여자는 두 아이를 지켜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여성들은 자신이 어떤 핸디캡을 갖고 있다 한들 무조건 아이들을 지켜 내고, 아이를 위해 자신 따위 얼마든지 내던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버드 박스’는 이 세상의 굳건한 기둥이자 절대적 모토인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이도 한 영화이다. 산드라 블록은 넷플릭스 초창기 영화 ‘버드 박스’로 명실공히 자신이 여전히 뛰어난 스타임을, 가만히 앉아서 그냥 돈만 버는 여배우가 아님을 철저하게 실증해 냈다.
이 영화에서 산드라 블록은 말 그대로 ‘개’고생을 한다. 덴마크 여성감독 수사네 비르(영어 발음은 수잔 비에르)는 자신이 만든 이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덴마크 판 시즌 드라마를 동명으로 만들기도 했다. 수사네 비르는 최근 인기를 모았던 아마존 프라임의 드라마 ‘더 나이트 매니저’를 만들었는데 이 나라 저 나라를 오가며 아주 잘 나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작품을 다 아주 잘 만들지는 않는 감독이다.사람들이 잘 모르는 산드라 블록의 수작 영화는 2015년 데이빗 고든 그린(그는 제작자 출신 감독이며 최근에 주목을 받은 연출작은 티모시 살라메 주연의 식인 영화 ‘본즈 앤 올’이다. 영화가 나왔을 때의 충격에 비하면 이 영화 비교적 금세 잊혀졌다. 영화가 너무 많아서인 탓이다.)이 만든 ‘프레지던트 메이커’이다.
원제는 ‘아워 브랜드 이즈 크라이스(Our brand is crisis)’이다. 볼리비아에서 대선이 벌어졌고 그 상황이 요즘의 여느 국가들 마냥 난장판인데 집권당 후보 카스틸로(조아큄 드 알메이다)는 경쟁력이 앞서는 도전자 후보 펫 캔디(빌리 밥 손튼)에 맞서기 위해 미국의 에이전시 출신 홍보이미지전략가 제인 보딘을 영입한다.
제인 보딘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도덕이고 나발이고 상관없이 자신의 후보를 선거에서 이기게 만든다. 제인 보딘은 아주 차가운 여자이며 못된 말만 골라서 하고 웃는 적이 없는데다 도통 인생과 세상을 무표정하게 바라 보는 사람인데 산드라 블록의 성형한 얼굴만큼 굳은 표정의 무감각한 연기를 해낼 수 있는 조건은 없었을 것이다.
산드라 블록은 영화 내내 검고 큰, 얼굴을 반은 가리는 선글라스를 쓰고 나온다. 개인적으로 놀랐던 것은 선거 분석과 관련한 대사를 친다든지 반응의 몸짓을 한다든지 할 때 정치에 대해 무지하다면 나올 수 없는 연기를 해내고 있다는 점이었고 그런 면에서 산드라 블록이 꽤나 남다른 정치적 식견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건 연기로 될 문제가 아니다. 평소 배우고 공부한 것이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관심이 남달라야 한다. 이 영화로 산드라 블록은 뒤늦은 나이에 또 한번의 연기 변신에 성공한다.
최근 채닝 테이텀과 연인 사이로 나오는 ‘로스트 시티’는 아무리 그래도 좀 너무하다 싶다. 둘 사이의 나이 차이가 16살이다. 이 영화에는 브래드 피트가 카메오처럼 나오는데 그런 우정에 답을 하려 했는지 브래드 피트의 영화 ‘블릿 트레인’에서 영화 내내 목소리만 나오다가 엔딩 장면에 잠깐 출연한다. 산드라 블록은 처음부터 사랑했던 여배우는 아니다. 그러나 끝까지 사랑하게 될 여배우이다. 젊은이들이여. 그런 사람이 좋은 법이다. 그리고 필요한 법이다. 끝까지 같이 갈 사람이. 비록 얼굴은 좀 고쳤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