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500억씩 팔렸는데"…'블프' 씁쓸한 역대급 흥행
입력
수정
11월 쇼핑대전 흥행했지만이달 들어 잇따라 열리고 있는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가 역대급 매출을 올리며 흥행 중이다. 고물가로 소비심리가 한껏 위축된 가운데 대규모 할인 행사를 계기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활짝 여는 모양새지만, 패션·유통사들의 표정은 마냥 밝지만은 않다. 평소에는 지갑을 닫다가 할인 행사 때에만 쇼핑을 하는 전형적인 ‘불황형 소비’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소비심리가 완전히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전형적인 '불황형 소비'
○하루에 500억 판 무신사
23일 무신사에 따르면 지난 22일 자정에 시작된 무신사의 연중 최대할인 행사 ‘무진장 블랙프라이데이’에서 하루 만에 500억원어치가 팔렸다. 분당 3300만원 이상 판매된 셈이다. 지난해 행사 첫날 판매액이 338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무려 42% 늘어난 액수다. 일각에서 ‘일부 제품은 오히려 행사 이전 가격이 더 싸다’는 불만이 나오기도 했지만, 흥행가도에 영향을 주진 못했다.다른 패션사들의 행사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지난 13일 시작해 전날 마무리된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SSF 블랙프라이데이’의 판매액도 전년도 대비 70% 늘어났고, ‘이랜드몰’이 20일부터 진행 중인 ‘블랙 프라이스’ 행사도 전날 기준 전년 대비 매출이 70% 올랐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블랙프라이데이는 많이 파는 대신 할인율이 커 마진이 적다”면서도 “매출 증대와 함께 재고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점은 희소식”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도 마찬가지다. 신세계그룹이 지난 19일까지 일주일간 진행한 ‘쓱데이’ 행사는 총 1조7000억원의 판매고를 올렸다. 2021년 열린 직전 쓱데이 매출인 9600억원을 훨씬 상회하는 성적이다. 신세계그룹측은 “SSG닷컴이 31%, G마켓 10%, 신세계라이브쇼핑 34%, W컨셉 161% 등 그룹 내 온라인 계열사들의 매출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마트의 매출도 지난 행사 동기간 대비 22% 늘었다. 고물가에 그동안 소비를 미뤘던 TV·냉장고 등 가전을 장만하려는 고객들이 몰리면서 대형가전 매출이 25% 증가했고, 할인율이 높았던 가공식품의 경우 40% 가량 매출이 늘었다. 홈플러스도 지난 9일부터 진행하고 있는 ‘홈플 메가푸드위크’에서 식료품 매출이 크게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17~19일 진행한 랍스터 할인 행사에서 매출액은 전년 동기대비 673% 급증한 게 대표적이다.
○내년초까지 불황 이어지나
예상치를 웃도는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는 소비 위축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가뭄 속 단비’가 됐다는 분석이다. 다만 행사가 마무리되는 12월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소비 심리가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만큼 패션·유통업계의 근심이 깊어지는 중이다. 할인행사 흥행이 오히려 불황형 소비가 확산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대규모 할인 행사가 흥행했다는 건 소비자들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소비를 했다는 의미"라며 "앞으로도 물가 부담이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할인상품을 노리는 소비자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필수 소비재를 판매하는 대형마트들은 연말·연초에도 불황형 소비가 확산할 것으로 보고 할인 행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송년회·신년회로 모임이 많아지는 만큼, 신선식품·가정간편식(HMR)·와인 등의 상품을 할인 판매한다는 전략이다.수익성 개선을 위한 고민도 깊어졌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할인가에 판매하더라도 마진을 남겨야하기 때문에 행사 품목 및 가격과 관련해 주요 제조사들과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며 "미끼상품도 중요하지만 수익을 남길 수 있는 품목을 소싱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출 절반 이상이 의류에서 나오는 백화점업계는 할인행사가 끝나면서 한숨이 깊어졌다. 행사기간 할인가에 의류를 구매한 소비자들이 정상가 제품을 구매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백화점은 (상품을 직매입하는) 마트와 달리 할인 행사를 계속 진행할 수가 없다"며 "11월에 겨울의류를 장만한 소비자들은 올해 연말부터 내년 초까지 지출을 줄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양지윤/이미경/황동진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