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퇴사 후…'영업의 신'인 줄 알았던 내가 무너진 순간 [긱스]

많은 스타트업이 어려움을 느끼는 영역이 ‘영업’입니다. 우리의 좋은 제품을 세상이 몰라준다고 토로하는 업체가 적지 않습니다.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대기업 영업 담당자들은 바뀐 영업 환경에 당황하기 일쑤입니다. 스타트업 빅밸류의 공동창업자이자, 20년간 영업 현장을 누빈 이병욱 빅밸류 CMO가 후배 스타트업 영업맨들을 위한 노하우를 정리했습니다. 한경 긱스(Geeks)를 통해, 대기업과 스타트업 영업의 3가지 차이를 전합니다.

대기업에서 탁월한 영업 스킬로 다양한 경험을 한 수많은 영업대표들이, 스타트업 등 소규모 기업으로 이동해서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산업 전 분야에서 B2B(기업간거래) 영업 절차와 방식은 큰 맥락에서는 유사하지만, 그 산업의 특성과 제품의 생애주기상 위치에 따라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20년간 대기업과 스타트업 현장을 뛰며 겪었던 애로점들이 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영업 체계를 비교해보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논해보려는 업종은 정보기술(IT) 분야 B2B 영업이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영업활동엔 가장 주의해야 할 3가지 차이점이 있다. 영업의 시작점인 영업 기회 획득, 영업 핵심성과지표(KPI) 달성을 위한 핵심 고객 표적화 그리고 매출 실현을 위한 클로징 기술 등이다. 대기업의 제품은 시장 성숙기를, 스타트업은 새로운 분야에 시장진입기를 전제로 기술한다. 제대로 된 B2B 영업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기록을 남긴다.

내부 영업에서 답을 찾는 대기업 세일즈

대형 IT기업에서 영업 기회 획득의 핵심은 대체로 내부영업이다. 제품 수명주기는 성숙기에 도달해 있기 때문에, 이미 다양한 인바운드·파이프라인과 채널을 통해서 수많은 영업 기회가 기업 내부로 유입되고 있다. 본인의 영업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우선 다양한 채널에서 유입되는 잠재 고객을 본인에게 도달하게 만드는 체계 수립이 성공적인 영업의 시작점이다.

대다수 기업은 횡적으로는 지역이나 산업별로, 종적으로는 인바운드·프로모션·영업·컨설팅· 개발·고객관리(CS) 단계에서 유입되는 영업 기회를 각 영업센터·대표별로 배분하는 내부 규정이 있다. 하지만 이 규정들 안에는 수많은 회색 영역들이 존재한다. 체계를 명확히 이해하면 수많은 기회를 직·간접적으로 본인이 얻거나, 규정 내 할당받은 영업대표들과 공유하며 누구보다 많은 영업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신규·업셀링(상향 판매)·크로스셀링(연결 판매)등의 영업 기회는 다른 영업대표들과의 정보 교류로 쉽게 얻을 수 있다. 개인적인 친분 뿐 만 아니라 실적배분 기준을 상대방에게 유리하게 한다면, 해당 영업대표가 100% 실적을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한 수행 기회가 본인에게 주어져 높은 성과로 만들 수 있다.

또한 각 영업대표들에게 나의 명확한 브랜드를 각인시켜야 한다. 예를 들면 특정 제품에서는 최고의 PT 능력 및 설득 능력을 보유했다거나, 특정 금융·공공 고객군에 경험이 특화되어 각 영업대표들이 나와 정보를 교류할 경우 영업 진행·클로징 확률이 높아진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즉, 본인과 일하면 목표에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 각 영업대표들에게 인지시켜야 한다.

스타트업 영업 시작은 고객사 내 조력자 확보

반대로 스타트업에서는 획득되는 영업 기회들이 대기업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 스타트업 제품은 대부분 새로운 카테고리이며, 브랜드 인지도 또한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선 외부에서 신규 고객 유치를 하는 직접 영업에 주력해야 한다. 단, 영업대표 혼자서 새로운 고객을 개척하기는 상대적으로 확률이 낮기 때문에 스타트업 기업내 가용자원, 특히 C레벨의 인맥 등을 활용해서 우리 제품의 잠재 고객군의 조력자를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 많은 영업 기회가 아니라 신뢰도 높은 레퍼런스를 만들어서 향후 성장을 위한 ‘키 어카운트(핵심 고객)’ 내부 조력자를 찾는 게 B2B 영업의 시작점이다.

스타트업의 제품을 고객사에서 도입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도전에 부딪히게 된다. 유관부서의 반대, 구매부서의 ROI(투자수익률) 타진, 현업의 새로운 제품 사용에 따른 번거로움 등의 난관을 외부 영업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기 때문이다. 고객사에서 확보한 조력자들은 내부 주요 목표 및 트렌드, 핵심 영향력이 있는 주요 인물, 예산정보, 주요 실행계획 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들을 활용해 단계마다 고객사의 문제점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해야만 비로소 영업 기회가 구체화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이러한 조력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조력자의 관심사, 개인적인 친밀도, 고객사의 단기 및 중기 목표 파악 등 관계 형성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이만큼 영업 성공률이 높은 방법은 없는 듯하다. 조력자를 통해 업계 내부 사정을 깊이 이해하고, 레퍼런스 계약 수주뿐 아니라 레퍼런스를 기반으로 영업 영역 확장과 더불어 그 영역에 속하는 업종 고객군을 섭렵할 수 있게 된다. 지루하지만 확실한 지름길이다. 하지만 많은 영업대표들이 이 영업 방식을 시도하다 지쳐 포기한다. 대기업에서 진행하던 방식인 많은 영업 기회를 접하면서 ‘히트율 게임’을 하는 방식으로 회귀하게 된다. 이런 방식은 곧, 업계 내 깊은 속사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성숙기 시장과 동일한 형태의 영업으로 결국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게 된다.

명확한 영업의 '도달 목표' 수립하라

두 번째, 영업 KPI 달성을 위한 고객 표적화 방법 차이다. 대기업에서는 수년간의 실적분석에서 비롯된 영업이익 위주의 KPI가 목표가 할당되고, 그 목표 달성에 집중하면 된다. 영업이익을 높이기 위한 1순위 표적화 대상은 표준화를 통해 단기 영업이익 기여도가 높은 고객군이다. 그다음이 커스트마이제이션(개별 고객에 맞춘 제품 제공) 요구가 많더라도, 향후 그 내용이 기능 개선 포인트로 활용돼 더 많은 영업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고객들이다. 물론 그 고객이 업계 인지도가 높아서 레퍼런스 효과까지 있다면 아주 좋은 기회이다. 마지막으로는 영업을 진행하지 않는 게 더 영업이익에 도움이 되는 고객군이다. 이러한 고객군은 대부분 버리려고 하지만 매출실적 압박에 수주하는 경우가 많은 게 실제 영업대표들 현실이다.

스타트업에서는 당장 주어진 매출 위주의 영업KPI 실적보다는, 사업 초기 레퍼런스로 활용도가 높은 고객을 유치하는 영업성과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와 관련된 C레벨의 이해도가 없다면 설득을 해서라도 영업 KPI를 재설정해야 한다. 해당 레퍼런스 영업이 향후 1~2년 후에 사업 확장에 어떻게 기여되는지에 대한 로드맵으로 전사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영업대표들이 매출 KPI 내에서 ‘지인 찬스’를 활용한 단기 실적에 집중하다가, 실제 중장기 영업 기반도 다지지 못한 상황에서 아웃되는 경우가 많다.

훌륭한 레퍼런스 고객이 반드시 업계 선도기업일 필요는 없다. 선도기업이면 좋겠지만, 대부분 1위 기업은 수많은 영업대표들의 수많은 제안에 노출된다. 영업 성사로 끌고 가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우연히 해당 고객사의 키맨과 특별한 관계가 있지 않은 경우에는 그렇다. 성장성이 높은 3~5위 업체들도 좋은 레퍼런스가 될 수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성공 케이스를 만든다면, 그 영업 노하우로 1위 또는 2위 업체를 대상으로 영업을 성공시킬 수 있다. 이마저도 어렵다면, 다크호스 전략도 좋다. 업계 인지도는 아직 미약한 후발 주자가 새로운 사업전략으로 시장 확장하는데 본 제품의 기여도가 높다면, 이 또한 좋은 성공 사례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대기업 클로징 경험에 미련 갖지 마라

클로징 기술은 대기업, 스타트업 모두 유사하다. 하지만 클로징의 속도 차이를 인정하고 대응해야 한다. 대기업의 제품은 인지도, 구매명분 등이 이미 고객사 내부에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이다. 도입 금액이 큰 규모이기에 구매절차가 길지만, 대부분 예측 가능한 클로징 시점이 있다. 이 과정에서 영업 성공률을 높이기 다양한 기술이 필요할 뿐이다. 경쟁사 대비 가격 전략과 도입 후 안정성과 신뢰 제고가 클로징에 핵심 기술이 된다.

스타트업 제품은 도입 의사 결정 과정에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95% 이상으로 진행되던 영업 건이 취소·연기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아무리 좋은 조력자가 내부에 있다 해도 수많은 난관을 헤쳐 나가는데 변수가 너무 많다. 이 과정에서 영업대표는 “내가 스타트업에 왜 왔을까?” 라는 ‘사점(Death Point)’이 다시 오기 시작한다. 9부 능선을 넘었는데, 클로징 단계에서 영업 속어로 ‘뿌러지는’ 건들이 속출한다. 이전 대기업에서의 성공률·클로징 절차·속도·가격 협상력 등이 기준점이 되어, 점점 더 지치는 단계이다. 그러나 더 빨리 지치는 이유는, 대기업에서 진행했던 판매 절차와 속도에 대한 미련 때문이란 걸 깨달아야 한다.

이때 본인 스스로 ‘업종·기업·부서별 차이는 있으나, 항상 우리 회사의 혁신적인 기술은 산업 내 반드시 흡수되어 활용될 것이다’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트렌드에 부합하는 제품과 기술이라면 더욱 그렇다. 때때로 자괴감을 극복하지 못할 때면, 내가 “눈덩이를 굴리고 있다” 라고 생각하며 끈기로 이겨내는 방법밖에 없다. 나중에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결과물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스타트업에서의 B2B 영업대표는 영업활동 이전에, 우리 회사의 사업 단계·장단기 목표·자원 현황·시장 상황 등 사업 본질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 과정이 생략된 영업대표는 과거에 진행된 성공적인 영업사례의 허상을 좇는 부진한 영업대표가 될 뿐이다. 대기업 영업환경에서 뛰어난 실적을 위해 달리던 단거리 경주와 다르다. 스타트업에서는 목표는 있으나, 길이 정해지지 않고 시간도 다른 산행과 같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실패는 없다.
이병욱 빅밸류 공동창업자·사업총괄이사(CMO)

△ASU Thunderbird MBA(전략 & 마케팅 전공)
△ 더존비즈온 모바일사업부 부서장
△ 포시에스 해외 영업팀장
△ KG제로인 금융솔루션 사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