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의 예술' 추상화와 재즈가 산골 오두막에서 만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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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남무성의 재즈와 커피 한잔경기 양평읍에 백안리라는 곳이 있다. 산자락 마을이면서 읍내 중심과 가깝고 서울로 가는 6번 국도를 접하고 있어 도시를 오가며 전원생활을 하기에 좋다. 등산객들이 찾는 백운봉과 용문산 남쪽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곳이다.
얼마 전 이곳의 한 오두막집에서 추상화가 L의 오픈 스튜디오 행사가 있었다. 화가의 작업실을 개방해서 누구나 그림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 첫날 화가부부가 지인들을 불러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근처에 사는 나도 초대를 받아 당당히(?) 합류했다. 해가 뉘엿해지는 오후, 산속마당에 모닥불을 지피고 고기를 굽고 와인을 놓았다. 재즈 타악기의 거장 류복성 선생도 4중주로 공연을 펼쳤다. 늦가을 숲속에서 듣는 재즈가 근사한 그림이다. 화가의 작업은 재즈와 닮아있었다. 그는 손가락과 팔등, 손톱을 이용해 즉흥적인 그림을 그린다. 일일이 붓을 헹궈가며 그리지 않아도 되니 거참 속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화면 속 그림은 대단히 신중하고 무겁다. 추상화라는 게 그렇듯이 그림이라기보다는 어떤 모양 같기도 하고 무슨 형상인지 한참을 보게 된다. 색의 농담으로 찰나에 긴장과 이완을 만드는데 때로 화가 스스로도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어디까지가 의도된 것이고 어디서부터가 우연한 것일까 생각해보았다. 재즈를 들을 때도 그런 식이다. 재즈감상이란 작곡되어진 부분과 즉흥연주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이다. 즉흥을 하다보면 의외성이 발현되고 예상치 못한 긴장감이 폭발한다. 이런 것이 반복되면서 전위음악으로까지 치닫는다. 1960년대 출몰했던 프리재즈(Free Jazz)는 멜로디마저 사라지고 즉흥만이 지배하는 형태다. 그쯤 되면 추상화와 비슷한 단계가 아닐까.
(추천음악) Ornette Coleman – Free Jazz
운치가 이러하니 공연을 마친 류복성 선생도 약주를 걸쳤다. 류 선생이야말로 재즈뮤지션으로 평생 즉흥연주를 해온 장본인이다. 내 생각에 그의 연주는 지금이 최고로 멋지다. 80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휘영청한 젊은 날보다 훨씬 섬세하고 깊다. 긴 세월동안 얻은 것은 소리 그 자체일지 모른다. 그저 북 하나로 오만가지 소리를 내는데 달빛의 고요함마저 담아내는 듯하다.
화가가 꺼져가는 모닥불을 되살리니 검댕이 숯이 안간힘을 쓴다. 그걸 보고 있자니 흔들리는 불씨에도 영혼이 있는 것 같다. 속세와 분리된 그곳에 뜨거운 열망이 춤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