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감독 "작은 마을의 작은 사건으로 인간의 단절 그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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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9일 개봉하는 '괴물' 연출“일본의 아주 작은 마을과 학교에서 일어난, 아주 작은 사건을 다루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사건이 지금도 전 세계 어디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단절을 그린 영화라고 할 수 있죠.”
22일 시사회 끝나고 화상 간담회
제76회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작은 마을서 벌어진 작은 사건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단절 그렸죠"
일본 영화계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61)은 오는 29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 ‘괴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22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시사회 직후 화상으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가 국내 개봉하는 것은 지난해 6월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아이유 주연의 ‘브로커’ 이후 1년 5개월여 만이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송강호는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고레에다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브로커’를 비롯해 칸 영화제와 인연이 많다. 2013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2018년 ‘어느 가족’은 대상인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았다.
‘괴물’도 올해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사카모토 유지)을 받았다. 다만 각본상은 일본 최고의 각본가로 꼽히는 사카모토 유지가 받았다. 고레에다 감독은 대부분 자신이 직접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어 왔지만 이번은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을 썼다. 고레에다 감독이 다른 사람의 시나리오로 연출한 영화는 데뷔작인 ‘환상의 빛’ 이후 처음이었다. 사카모토 유지는 드라마 ‘마더’ ‘최고의 이혼’,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등 수많은 히트작을 냈다. “약 5년 전인 2018년 12월에 완성형 각본이 아니라 대강의 플롯이 적힌 글을 받아서 한 장 한 장 읽어 나갔어요. 러닝타임(상영시간)으로 환산하면 한 시간이 지나도록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는데, 긴장감이 계속 지속되더라고요. 담임 선생이 나쁜가, 엄마가 나쁜가, 나도 모르게 ‘괴물 찾기’를 하고 있었죠.” 고레에다 감독은 “저는 쓸 수 없는 플롯이었다”며 “관객들도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제가 처음 읽었을 때의 긴장감이나 나도 모르게 괴물을 찾게 되는 느낌으로 끌어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일본의 한 소도시의 고층 건물에 큰 불이 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느 순간 몰라보게 바뀐 초등학생 5학년 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의 행동에서 이상함을 감지한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가 학교에 찾아간다. 영화는 한 사건을 엄마 사오리와 미나토의 담임 선생 호리(나가야마 에이타), 학생 미나토와 요리(히이라기 히나타)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감독의 의도대로 각각 엄마와 선생의 관점으로 전개되는 1장과 2장에선 같은 사건이 전혀 다르게 전개돼 관객들을 아리송하게 하다가, 두 아이의 눈길로만 펼쳐지는 3장에서야 비로소 진실과 마주하게 한다.
“1장과 2장을 거쳐 3장에 전개되는 아이들의 세계를 작가와 제작자가 제게 맡기고 싶어 이 작품을 함께하자고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게 던져준 공을 잘 받아서 (관객에게 다시) 잘 던져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2018년 12월에 받은 원본 자체도 뛰어난 이야기이긴 했지만 약 3년의 코로나 시기를 거쳐 대본이 완성되면서 인간 단절과 사회 분단의 의미가 좀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사카모토 각본의 가장 뛰어난 장면으로 3장의 ‘음악실 장면’을 꼽았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감정을 트롬본과 호른 등 관악기 소리에 담아 발산하는 장면이죠. 저 같으면 두 소년인 미나토와 요리, 또는 미나토와 담임 선생 호리를 등장시켰을 거예요. 영화에는 주요 등장인물 중 미나토와 가장 먼 존재일 수도 있는 교장이 나오죠. 둘 다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데 악기를 함께 불며 마음을 나누고 공감합니다.”
그는 “저로서는 그런 발상조차 못 했을 것”이라며 “다음에 각본가와 다시 작업하자고 했다”고 덧붙였다.3장에서 두 소년은 서로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는 사이로 묘사된다. 둘은 그저 함께하고 싶을 뿐이지만, 선생님과 부모, 동급생들은 스스로 의식도 못 한 채 이들을 폭력 속으로 밀어 넣는다.“영화 속 인물들은 '일반적인', '남자다운' 같은 표현을 많이 써요. 누군가 상처 주려는 의도는 물론 아니죠.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이런 말들이 소년들에게는 얼마나 폭력적이고 억압적으로 들리는지를 보여주려 했습니다. 이 영화는 결국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가해와 피해에 대한 얘기입니다."
‘괴물’은 지난 3월 세상을 떠난 작곡가이자 피아노 연주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마지막으로 음악을 맡은 작품이 됐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영화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고, 한국 영화 ‘남한산성’의 음악을 맡기도 했다.
“그분의 작업에 제 영화가 조금이나마 관여됐다는 게 제게는 큰 긍지입니다. 이번 영화를 위해 새로 창작한 곡도 있고 기존 곡도 있습니다. 창작곡은 밤의 호수를 비추는 장면에 흐르는 음악이 참 좋고, 기존 곡 중에는 영화의 마지막에 흐르는 ‘아쿠아’를 좋아합니다. 두 소년을 마치 축복하는 듯한 음악처럼 들리는 데 영화 장면과 기막히게 잘 어울립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