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개인의 시대'가 아니라 '팬덤의 시대'다" [책마을]

[arte] 책 리뷰


마이클 본드 지음
강동혁 옮김
어크로스
312쪽 / 1만8000원
GettyImagesBank.
집단의 시대는 끝났다고들 말한다. <이제 개인의 시대다> <개인의 시대가 온다> 그리고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까지, 최근 몇년간 "21세기는 개인의 시대"를 선언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요즘 사람들에겐 학연, 지연과 같은 어느 집단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이 흐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흐름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게 이들 책이 공통적으로 내놓는 예언이다.

최근 국내 출간된 <팬덤의 시대>는 이런 주장에 정면 반박한다. 책은 21세기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로 '팬덤'과 '소속감'을 제시한다. '해리포터' 시리즈와 테일러 스위프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까지. 팬덤은 이미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저자는 영국왕립학회 수석연구원을 지낸 저널리스트 마이클 본드다. 책은 팬덤의 기원부터 살펴본다. 과거엔 기껏해야 자기 동네의 팬 말고는 만나기 힘들었지만, 1926년 미국 SF 전문 월간지 '어메이징 스토리'에서 구독자 주소를 잡지에 인쇄해 독자들끼리 편지를 주고 받도록 하면서 대규모 팬덤이 움텄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팬덤은 어떻게 소속감으로 연결될까. 책은 "팬심은 집단적 충동"이라고 말한다. "고독한 팬이 되어 멀리서 숭앙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대다수는 언젠가 남들과 함께 열정을 발산하고 동료 애호가들과 함께 경의를 표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사회적 관계에 서툰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일, 즉 누군가의 팬이 되는 일은 유사 유대관계를 제공한다. 아직도 영국 셜록 홈스 박물관에는 허구의 인물인 셜록 홈스에게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달라고 요청하는 팬들의 사건 의뢰서가 날아든다. 이 같은 경험은 고립감을 씻어주고 위안을 준다.
1960년대 이뤄진 사회심리학자 앙리 타지펠의 실험은 '소속감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타지펠은 무엇이 인간을 가르고 또 뭉치게 하는지 알고 싶었다.

실험을 위해 그는 사춘기 소년 64명을 두 집단으로 나눴다. 집단을 나눈 기준은 사소한 것들이었다. 화면에 표시된 점의 수를 실제보다 많다고 생각하는지 적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바실리 칸딘스키나 파울 클레의 그림 중 어느 쪽을 좋아하는지 등이었다.

타지펠은 학생들에게 돈을 쥐어주고 다른 학생들에게 돈을 나눠주도록 했다. 그 결과, 점의 개수를 많다고 생각한 소년들은 자신처럼 점의 개수를 많게 생각한 소년에게 더 많은 돈을 줬다. 칸딘스키를 선호한 소년들은 다른 칸딘스키 팬에게 더 후했다.나와 감각과 취향이 비슷한 타인을 선호하는 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집단에 대한 배제,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외부 집단에 대한 차별은 매우 쉽게 촉발될 수 있다"는 게 실험의 결론이었다.

요즘은 정치인부터 심지어 대량학살범까지 팬을 거느린다. 하지만 책 속 대부분의 팬덤 사례는 스포츠스타나 연예인 등 전통적 팬덤 중심으로 쓰여져 있다

또 책을 읽고 나서도 '누군가의 팬이 되기로 결심하는 마음'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는다. 하긴, 오죽하면 팬들은 누군가의 팬이 되는 사건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에 비유해 '덕통사고(덕후+교통사고)'라고 할까. 다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저는 OO의 팬이에요"라고 말하기 전 한 번쯤 그 의미를 곱씹게 될 것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