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대통령 뒤에 숨는 참모들

좌동욱 증권부 차장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모두 참신한 시도였다. 과거처럼 딱딱한 정부 정책을 다루는 대신 서민의 고달픔과 애환을 경청하는 자리였다.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대목도 있었다. 예를 들어 “카카오택시에 대한 횡포는 매우 부도덕하다”는 윤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특정 기업을 ‘콕 찍어’ 겨냥한 듯한 인상을 줬다. “기업 대출에 비해 가계·소상공인 대출 부도율이 더 낮다”는 발언도 사실관계에 혼동을 일으키는 내용이다. 두 시간여 회의 발언이 담긴 34쪽 전문을 공개해 불필요한 논란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부서도 "尹 행사 과잉" 지적

대통령실 참모들은 이런 일이 발생하면 대개 “사전 원고엔 없던 즉석 발언”이라고 해명한다. 참모들이 책임질 일은 아니라는 취지다. 하지만 대통령이 주재하는 각종 회의를 세심히 살펴보면 국정 운영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비상경제민생회의를 보자. 지난해 7월부터 총 21차례 열렸는데, 회의 안건을 보면 대통령이 나설 사안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농업혁신 및 경영안정 대책, 2차전지 산업 경쟁력 강화 국가전략 회의,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등 과거엔 해당 부처 장관들이 처리하던 사안도 다수 포함됐다. 국가의 중차대 사안을 대통령이 직접 챙긴다는 당초 취지와도 거리가 있다.

비상경제민생회의뿐만이 아니다. 국정과제 점검회의, 거시금융 상황 점검회의, 각종 민생 현장 간담회 등 대통령 주재 회의가 잇따른다. 내부에서도 “대통령 행사가 과잉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정가에선 “이런 회의들이 양산되는 ‘인센티브’가 있다”고 말한다. 대통령이 모든 정책 과제를 직접 챙기면 참모들의 위상과 발언권이 세진다. 참모들이 회의 안건을 해당 부처로부터 미리 보고받고 취사선택할 수 있어서다.

이 과정에서 혹여나 문제가 생기면 장·차관이 책임을 진다. ‘만 5세 취학’ 정책 혼선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실, 미래 전략 집중해야

최근 진보와 보수 언론 가릴 것 없이 비판하는 공매도 금지 조치도 마찬가지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일 고위 당정협의회 직후 내년 6월 말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전후 사정을 취재해보니 당시 회의 직전까지도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금융위 간부들은 “대외 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한다. 공매도 금지가 관철된 것은 “1400만 개미 투자자의 표심을 살펴야 한다”는 대통령실 참모들의 정무적 판단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금융위가 반대 의견을 냈다는 사실도 쉬쉬한다.

윤 대통령은 대선 당시 “부처 위에 군림하며 권력을 독점하는 기존 대통령실을 바꾸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대통령실에 대해선 “범부처·범국가적 현안을 기획·조정·추진하고 미래 전략을 수립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약속했다. 조만간 대통령실 인사와 정부 개각이 순차적으로 단행된다고 한다. 이런 대선 공약들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찬찬히 따져볼 시점이다.